[자크앙리]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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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파괴주의
설정오류주의
Wrirten by. 玄月
작은 불빛마저 없는 어두운 뒷골목. 한 남자가 흥얼거리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보기 드문 샛노란 머리결과 여자만큼 진한 화장을 보면 그가 누구인지는 뒷골목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미친개 자크. 그가 뒷골목에 등장하는 순간 그의 주변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자신의 부와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일말의 자비도 없이 타인의 고통과 눈물을 뽑아내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은 뒷골목을 넘어 뒷골목을 드나드는 높으신 귀족나리들에게도 조용조용하게 퍼져있을 정도였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미친개처럼 세상의 어떤 상식과 법칙도 그에게는 아무런 제어장치가 되지 않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자크는 연신 제 손에 들린 약병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속에는 마약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보통 마약이 아닌 단 한 번만 주사하더라도 심장이 뛸 때마다 눈 앞에 별이 보이고 혈관을 타고 짜릿한 쾌감이 올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었다. 마약의 너무 강력한 속성에 국가에서는 약의 제조 및 거래를 금지했지만 미친개 자크에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마약쟁이에게 시험삼아 맞아본 약은 자크의 마음을 휘저었고 거액을 들여 약을 샀다. 벌써 몇 번이나 약을 사들였던 자크는 처벌보다는 이 약이 없어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정도로 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약을 산 건 기분좋은 일이지만 솔직히 값이 너무 비쌌다. 에바가 값을 알게된다면 등짝을 후려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만큼 큰 값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에 거래하던 마약쟁이보다는 하수인 놈이 만든 좀 더 싼 약을 샀지만 그래도 원체 값이 비싸다보니 거기서 거기였다. 차라리 제조법을 알아내서 내가 직접 만드는게 낫지. 자크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자크는 멈칫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밤이 늦은 만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급히 품을 뒤적이더니 작은 주사기를 하나 꺼내들었다. 기분도 안좋고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혼자 조용히 약기운을 음미하는데는 적격이었다. 주사기를 따라 올라오는 붉은 핏빛 약물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자크는 소독조차 하지 않고 제 팔뚝에 주사기를 꽂았다. 다 쓴 주사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자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깨졌다. 자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꽤 깨끗해보이는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고 제 옆에 약병을 두었다. 그리고 이제 온 몸을 휘감을 약이 줄 쾌락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왔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자크는 눈을 반짝였다. 이제 혈관을 타고 약이 몸 안에 퍼지겠......
"컥!!"
자크는 갑자기 밭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급히 제 목을 잡았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이 숨쉬기가 힘들었다. 침조차 삼킬수가 없어 입가에서 타액이 흘렀다. 심장박동소리가 귀에도 들릴정도로 크게 뛰고 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자크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처럼 적정량의 약물을 주사했는데 어째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거지? 설마 그 약쟁이가 가짜약을 판거야? 설마.... 약쟁이 주제에 날 속인건가? 이 개자..... 자크의 생각이 이어질 틈도 없이 잔떨림은 더욱 심해져 몸의 중심마저 잡을 수 없었다. 그에 자크는 쿵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몸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눈이 뒤집힌 자크의 시야에는 이제 검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아다. 이에 자크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난 죽는건가? 죽을 수 없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없어! 아직도 하고 싶은게 많은데... 아직.... 난 더... 살고 싶다고....
"이봐요!"
그 때, 누군가 자크를 흔들었다. 그는 자크를 똑바로 눕히더니 자크의 뺨을 때렸다. 그는 연신 정신차리라는 말을 외쳤고 그의 말과 동시에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남자의 외침과 달리 애석하게도 자크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
머리가 깨질 것같은 두통에 자크는 불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온몸이 두들겨맞은 것마냥 쿡쿡 쑤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자크는 제 시야에 들어오는 천장에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눈만 굴려 제 주변을 살펴보았다.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투명한 수액이 링게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입 안이 말라 쩍쩍 갈라지는 제 목소리가 듣기 싫어 자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힘겹게 상체를 들었다. 기본적인 가구만 있는 단촐한 방에 홀로 앉아있는게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모자와 자켓은 가지런히 접혀져 탁자 위에 놓여져 있었고 지팡이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였던 수액은 팔에 꽂혀있는 주사기를 통해 천천히 자크의 몸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자크는 눈알을 굴리며 기억을 잃기 전을 떠올렸다. 분명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했고 제 뺨을 때리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외쳤던 기억은 있었다. 그러나 눈이 뒤집혔기에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를 모르겠다. 자크는 안돌아가는 머리를 굴려 그 근방에 살고 있는 지인들을 생각해보았지만 제게 이런 친절을 베풀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크는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하긴 어떤 놈이 미친개를 구할 생각을 하겠어. 자크는 침대헤드에 제 몸을 기댔다. 그리고 머릿속에 열이 차올랐다. 이곳을 나가자마자 그 약쟁이를 요절내고 말겠어. 감히 내게 가짜를 팔아? 어쩐지 제 값에 안받더라했어. 자크는 이를 부득 갈았다. 어떻게 요절을 낼지 고민하는데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셨군요."
꽤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크는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갈색머리를 곱게 묶고 편안한 옷차람의 남자가 대야와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걸 탁자에 올려놓더니 익숙하게 의자를 빼내 침대 옆에 끌고와 앉았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넌 뭐야?"
"네?"
"넌 뭐냐고?"
날이선 자크의 목소리에 남자는 당황했는지 눈동자를 깜빡이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의사입니다. 저는 앙리 뒤프레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앙리라고 부르세요."
"의사?"
자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앙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밝은 갈색빛 머리를 곱게 묶고있었고 사람좋게 웃고 있는 모습은 꽤 미남형이었다. 의사치고는 몸이 날렵하고 훤칠해서 의사라기 보다는 어느 귀족집의 자제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앙리는 수액을 체크하며 말을 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나실뻔 했습니다. 사람이 없는데서 약물중독으로 쓰러지면 몸에 약물이 퍼져 해독하기가 힘든데 운이 좋으셨어요."
"그냥 냅두고 가지 왠 참견이야?"
자크의 날카로운 물음에 앙리는 물그러미 자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대 옆 서랍에서 혈압측정기를 꺼내들면서 대답했다.
"의사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지나가나요? 저는 차별없이 환자를 치료하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는데."
"아이고, 의인나셨네. 그런 쓸모없는 선서는 왜 하셨나 몰라?"
"의사가 되려면 해야해는 선서니까요. 그런데 저도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만..."
비아냥거리는 자크의 모습에도 앙리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슬슬 열이 받는 건 자크 쪽이었다. 이렇게 비꼬는데도 차분하기 그지 없는 앙리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비꼬면 열에 아홉은 성질을 내면서 판단력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자크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요리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러나 자크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데다가 오히려 자크가 밀릴정도로 태연하게 맞받아치는 앙리의 모습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자크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앙리는 자크의 눈 앞에 약병 하나를 들이밀었다.
"이 약, 어디서 나셨습니까?"
자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급히 앙리에게서 약병을 빼앗아 급히 제 등 뒤로 숨겼다. 그러나 앙리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숨기셔봤자 소용없습니다. 이미 그 약병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뭐야!"
자크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자크가 머리를 부여잡자 앙리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자크는 그 손을 쳐내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니가 뭔데 그 약을 없애!"
"어차피 국가에서 금지한 약물 아닙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제대로된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의 성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 약은 제가 다 써버렸습니다."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다 써버렸다고 답한 앙리의 모습에 자크는 이를 갈 뿐이었다. 어차피 가짜약이어서 쓸 수 없는데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제 목숨을 살리는데 다 써버렸다고 하니 뭐라할 수가 없었다. 그 약에 쏟아부은 비용이 아까웠지만 어차피 약쟁이를 족치고나면 다시 들어올 비용이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때 순간 앙리의 대답 중에서 뭔가가 자크의 머리를 치고 갔다. 자크는 앙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약의 성분을 알아냈다고?"
"네."
"어떻게?"
"어떻게.....라니요? 그냥 이리저리 약물실험을 하며 알아냈습니다."
오호라, 이것 봐라? 자크의 눈이 반짝였다. 새삼 의사놈이 다시 보였다. 이놈은 그냥 의사가 아니었다. 바로 돈이였다! 약의 성분을 알아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약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값도 비싼데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하던 찰나 이런 복덩어리가 굴러올 줄이야! 자크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제 안에 감춰둔 뱀의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이봐."
"네?"
"너, 나랑 동업 한 번 해볼래?"
"동업이라니요?"
앙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자크는 눈꼬리를 가늘게 휘며 말을 대답했다.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그저 넌 내가 원하는걸 만들어주면 되는거고 넌 그 댓가를 받는거고."
".....만들다니요?"
"물론 재료도 네가 말만 하면 내가 모두 대줄게. 넌 그저 만들기만 하면 해도 앉아서 떼돈을 버는 거지. 어때?"
자크는 앙리를 쳐다보았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좋은 조건이라 어느 누구도 이 제안을 거절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앙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제안하시는 약이란.... 지금 등 뒤에 숨기신 약을 의미하시는 겁니까?"
"아~ 잊어버려, 이건 가짜야. 이걸 만드는 게 아니고, 진짜배기는 따로 있으니까 그걸 만들어 달라는 거야."
"그러니까, 국가에서 허가하지 않은 불법 마약을 제게 만들어달라는 의미시잖습니까."
"맞아."
".....지금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차가운 대답에 자크는 그제서야 앙리의 표정을 제대로 보았다. 자크의 어떤 독설에도 미소를 보이던 앙리의 표정은 너무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그에 자크의 눈에서 이채가 맴돌았다. 어쭈, 이것 봐라? 그저 실실 웃을 줄만 아는 바보인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네.
"이봐, 현실을 생각하라고. 이런 곳에서 살면서 공부까지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높으신 귀족나리들 주치의도 아니고, 우리같은 천민들을 상대로 진료따위해봤자 무슨 돈을 벌겠어. 안그래?"
"물론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 벌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너도 그 양심이란 것이 찔려서 그래? 그런 양심같은거 잠깐 잊으면 되는거야. 한 번 잊는게 어려운 거지, 그 다음부터는 쉬워."
"죄송하지만, 그 양심과 도덕보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없습니다."
자크가 뭐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앙리가 빨랐다. 앙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크 앞에 그의 자켓과 모자를 두고 팔에 꽂혀있는 링게를 뽑고 문 옆에 섰다.
"그런 제안을 계속 하실거면 몸이 다 나으신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직설적인 축객령에 자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저게 내 말을 무시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귀하신 몸에 상처를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지팡이를 들고 움직이지 않는 얼굴근육을 움직여 억지미소를 지어보이며 앙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래, 그래. 뭐, 날 살려준 것도 있으니 며칠 시간을 줄게.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그러나 앙리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의 눈 앞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당장이라도 눈 앞에 닫힌 문을 발로 차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억누르며 격투장으로 돌아갔다. 격투장에 도착하자마자 자크는 에바에게 말도 없이 밤새 어딜 갔었냐고 등짝을 후려맞았고 아프다는 말은 핑계대지 말라는 에바의 고성에 묻혔다.
-
"주인님, 누가 왔습니다."
자크는 눈살을 찌푸리고 제 시종을 쳐다보았다. 안그래도 어젯밤 내내 에바에게 시달려 만사가 귀찮고 짜증나있던 찰나 갑자기 들이 닥친 불청객이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누구?"
"의사입니다. 그.... 이름이..... 앙리 뒤프레라는 뎁쇼."
"앙리 뒤프레?!"
예상치 못했던 이름에 자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이고르를 휙하고 지나쳤다. 그럼 그렇지, 제까짓 놈이 뻐팅겨봤자 얼마나 뻐팅기겠어. 격투장 입구에는 하인, 하녀들이 제 주인을 찾아온 호기로운 청년을 보느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러나 자크의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들리자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양 옆으로 몸을 피했다. 이런 곳은 처음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앙리의 모습이 보였다. 자크는 얼굴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그에게 다가갔다.
"어서와~ 어서와~ 그래, 잘 생각했어. 이렇게 빨리오리라곤 생각치도 못했는데. 상관없어. 나야 빨리 오면 좋지."
앙리는 제 앞에 나타나자마자 제 할 말만 늘어놓는 자크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앙리로써는 불쾌한 느낌을 주는 이곳을 당장이라도 이곳을 나가고 싶은 심정인데 이런 앙리의 모습이 제게 좋은 모습만 보이는 자크에게 이 모습이 보일리가 만무했다. 한참을 혼자 신나서 말하는 자크의 모습에 앙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뭔가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뭐?"
앙리는 들고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약병 하나를 꺼내 자크에게 내밀었다. 자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약통을 받아들었다.
"이거 약 아니야?"
"해독제입니다."
"해독제?"
"어제 쓰신 약은 왠만큼 해독됐지만 아직 미량의 독성이 남아있을 겁니다. 오늘 그걸 드리기 위해 온겁니다."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고 앙리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자크는 얼굴을 찌푸리고 거칠게 앙리의 팔을 잡아 끌었다.
"내가 생각해보라는 제안은?"
"어제 거절했잖습니까."
"내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잖아. 기한 주겠다고."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겁니다."
앙리는 흔들림없는 곧은 눈으로 자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 팔을 잡고 있는 자크의 손을 떼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격투장을 떠났다. 자크는 그저 가만히 앙리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하인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새끼는 죽여버린다."
자크의 서슬퍼런 명령에 하인들은 모두 움찔거리며 제자리에 섰다. 다른 하인들과 달리 이고르만이 자크의 지팡이를 들고 졸래졸래 그의 뒤에 섰다. 숨막히는 침묵만이 그들 사이를 맴돌았다. 하인들은 모두 제발 이곳을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순간 자크의 손이 움직였다. 이고르의 손에 들린 제 지팡이를 들고 휘리릭 돌아선 자크는 격투장 입구로 걸어갔다. 그제서야 하인들은 한 두명씩 소리없는 한숨을 쉬었다.
"아아악!!"
그 떄, 귓가를 파고드는 비명소리에 하인들은 화들짝 놀라 소리의 발원지를 쳐다보았다. 반쯤 눈이 뒤집힌 채 살기를 있는대로 내보이며 자크는 제 지팡이로 옆에 있는 아무 죄도 없는 하인을 미친듯이 패고 있었다. 무자비한 폭력에 하인들은 제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자크는 하인들이 뭔 반응을 보이던 상관없었다. 감히 의사주제에 나를 물먹여? 네까짓게 뭔데? 은인이면 다야? 하, 그딴 은인이란 호칭 따위 개나 줘버리지. 내가 그렇게 숙이고 들어갔으면 적당히 튕기고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될 것을. 도덕? 양심? 이 세상에 그딴 건 필요없어! 앙리의 거절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자크에게 화풀이 상대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였다. 단지 앙리와 비슷한 갈색빛 머리가 보이자 힘겹게 참아왔던 화가 폭팔하여 아무 죄없는 하인을 그저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인이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할정도로 두들겨 패고나서야 자크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크는 화사하게 웃으며 이고르를 바라보았다.
"이고르~ 이 더러운 거 치워."
"예에."
"아, 그리고 그 의사나부랭이 다시 오면 곧바로 내 방으로 데려오고. 착한 내가 한 번 더 기회주지, 뭐."
자크는 총총거리며 격투장 안으로 들어가고 이고르는 피투성이가 된 하인을 질질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인들은 그제서야 참고 있던 숨을 몰아 쉬었다.
-
자크는 며칠 째 앙리를 기다렸다. 그런 인재를 구하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또한 자크에게는 처리해야할 일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에게 약을 팔았던 마약쟁이를 찾아가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영문도 모른채 자크에게 두들겨맞고 억지로 약을 주사당한 마약쟁이는 고통 속에서 눈조차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데려간 하인들을 시켜 마약쟁이의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린 자크는 가벼운 마음으로 앙리를 기다렸다. 그렇게 거절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만큼 웃긴게 어딨겠어. 그 콧대높은 의사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 생각해줘야지. 하루이틀정도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니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왜 안오지? 그정도면 나도 많이 양보한건데. 다시 하루가 지나니 짜증 속에서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 제안이 어때서? 아니, 그 약을 만드는 게 어때서? 내가 제깟 놈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 그렇게나 숙여줬건만. 빌어먹을 의사놈. 얼굴은 계집처럼 생겨먹은 주제에 고집은 쇠고집이네. 또 다시 시간이 흐르고나니 자크에게 남아있는 건 오직 분노 뿐이었다. 이 새끼가 나를 물먹여? 분노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찰나 한 가지 생각이 자크의 머리를 치고 갔다. 어차피 내가 필요한 건 약의 제조법뿐, 그 새끼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약을 제조하는 건 내가 하면 그만이야. 그럼 이렇게 기다려줄 필요는 없지. 그 새끼를 끌고 오자. 실험하는데 몸뚱이는 필요없지. 분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패고나서 손만 움직이게 시켜서 약의 성분을 알아내게 하면 되지. 그 다음에는 필요없으니까..... 죽여버릴까? 순간 자크의 눈이 반짝였다. 아니.... 그렇게 쉽게 죽이기에는 아깝지... 내가 당한게 있는데 그렇게 쉽게 보내주기는 아쉽지... 어떻게 해버릴까... 제가 알아낸 제조법으로 만든 약을 주사시켜버릴까? 자크는 키득거렸다. 쾌락에 허우적거리면서 제 몸도 가누기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것도 재밌겠네. 그러다가 안아달라고 조르면 어쩌나? 한참을 키득거리던 자크의 눈이 욕망으로 짙게 물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보니 얼굴도 꽤 여리여리하게 생겼잖아. 몸도 나긋나긋해보이는게 가지고 놀기 좋아보이고. 그 좋은 목소리로 교성을 지르면 얼마나 야살스러울까. 제 몸을 휘감는 쾌락에 못이겨 바닥을 기다가 울먹이면서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제발 이 몸 좀 어떻게 해달라고 애원한다면... 자크는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딱딱해졌고 그의 상상에 정점을 찍는 순간 온몸이 짜릿했다. 자크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죽이는 건 보류하지. 일단 가지고 놀고나서 생각해봐야겠어. 당장이라도 앙리를 끌고와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에 자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고르~"
그의 부름에 충실한 시종은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자크의 앞에 섰다. 자크는 화사하게 웃으며 명령했다.
"오늘밤에 그 의사놈 데리러갈거야. 힘좋은 놈 두어명만 준비시켜."
이고르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방을 나갔다. 자크는 의자에 털썩 앉아 옆에 놓인 독한 럼주를 들어올렸다. 앙리 뒤프레... 내가 제안을 거절한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해주마. 앞으로 나와 함께할 재밌는 밤을 위하여 건배~ 자크는 럼주를 들이키고 칼날같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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ㄲㄴ님의 리퀘 '자크앙리로 자크에게마저 착한 앙리와 못된 생각하는 자크'로 연성해보았습니다만.....
나가죽어야될듯...ㅠㅠㅠㅠ
자크앙리가 연결고리가 워낙 없다보니까 넘 어려워요ㅠㅠㅠㅠ
뭐... 창의력부족을 탓해야지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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