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에 해당되는 글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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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5.06 [빅터앙리]도련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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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7.05.06 [빅터앙리]바 제네바
  6. 2015.01.26 [빅터앙리]손
  7. 2015.01.03 [자크앙리]마약
  8. 2014.12.08 [빅터크리처]마리오네뜨
  9. 2014.12.02 [빅터ts앙리] Secret
  10. 2014.12.02 [빅터ts앙리] Secret

Dear, Mrs. Frankenstein

 

 

 

사랑하는 누님,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누님에게 마지막으로 소식을 전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군요. 이 별장을 기억하십니까? 지금은 사냥 별장으로 쓰이지만 어릴 적 누님께선 저랑 자주 이 별장까지 승마 연습을 하러 오셨죠.
그래서 누님과의 추억이 가득한 이곳에서 이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가장 먼저 전해드릴 소식은 드디어 줄리아와 빅터가 결혼을 했습니다.
줄리아를 오랫 동안 기다리게 한 못된 녀석이라 반대할까 고민했지만 자식 이기는 아비는 없다고 줄리아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흐뭇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오래 전 누님께서 프랑켄슈타인 남작과 혼인을 올리시던 옛일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누님은 다른 영애들과는 많이 달랐죠. 의상과 디저트, 사교계와 춤에 관심이 많은 다른 영애들과 달리 누님께서는 유독 산학과 기계를 좋아하셨죠.
집에 새로운 시계가 오면 몰래 가져가 밤새도록 분해하고 조립하시고, 공책에는 어느 원리인지 알 수 없는 숫자와 도면들이 빼곡히 적혀져 있었죠. 사흘 밤낮으로 누님의 방에서 불이 꺼지지 않으면 이번에는 어떤 걸 만들고 계시는걸까 기대하곤 했었죠. 누님께서 웃으면서 어느 시계에서 빼낸 건지 모를 부품들로 만든 자동 인형을 선물로 주실 때면 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마냥 기뻐했었죠.
바늘을 잡는 다른 영애와 달리 누님의 손에는 항상 연장이 들려있었고, 얼굴에는 분 대신 기름때가 묻어있어 아버님은 그런 누님을 누가 데려가나 걱정하셨지만 저는 누님의 그런 특별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제들을 만날 바에는 저랑 같이 사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님께서 프랑켄슈타인 남작을 선택하셨을 때 기쁘면서도 내심 걱정했습니다.
남작을 처음 만난 연회장에서 열띈 토론을 하면서 미소를 띄던 누님의 모습은 제가 처음 보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모시러 가지 않았더라면 누님은 남작과 함께 기계와 인체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도록 하셨겠죠. 누님을 그렇게 웃게 해줄 수 있다면 누님의 특별한 모습을 이해해줄 좋은 반려가 되어줄거라는 생각과, 가진 것이라곤 작위랑 커다란 성이 전부인 남자가 누님을 고생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뒤엉켜 머릿속이 엉망이었죠. 하지만 누님은 그 사람만이 누님을 온전히 이해해준다고, 그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집을 부리셨죠. 생각해보니 줄리아의 고집이 도대체 누굴 닮은 건가 했는데 누님을 쏙 빼다박은 거였군요.
누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을 읽을 때 남작과 연구를 하는 것이 즐겁다며, 규중에서는 보기 힘든 연구 자료를 함께 보느라 어젯밤에도 함께 늦게까지 못잤다는 이야기를 보면 역시 누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확인하고 안도하곤 했습니다. 누님께서 바빠 편지를 보내지 못하실 때, 간간히 들리는 소문으로 남작은 의술로, 누님께서는 본적도 없는 기상천외한 농기구로 영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존경을 받는다는 이야기와, 누님을 닮은 귀여운 딸과 남작을 닮은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잘 지내시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버님도 나이가 들어 신의 곁으로 떠나시고 제가 슈테판 가문의 가주직을 물려받아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누님의 소식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 가득한 순간입니다. 바쁘더라도 누님께 편지라도 한 통 보냈더라면, 사람을 보내 영지의 상황을 살폈더라면 누님께서는 더 나은 치료를 받으셨을 것이고, 프랑켄슈타인 남작이 그리 허망하게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엘렌과 빅터는 더 나은 유년시절을 보냈을텐데 가문이 무엇이라고 혈육을 소홀히 한 게 제 죄입니다.
게다가 누님이 돌아가셨다는 슬픔에 눈이 멀어 정작 가장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도 또 다른 죄입니다. 특히 빅터를 처음 만났을 때, 줄리아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빅터의 얼굴 위로 누님에게 손을 내밀던 남작의 얼굴이 겹쳐 누님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내가 제 또다른 혈육을 노린다는 생각에 매몰차게 아이의 손을 걷어내버렸습니다. 놀란 엘렌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제서야 제 잘못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빅터는 이미 상처를 입은 얼굴이었습니다. 줄리아도 어찌 키워야할지 몰라 어리광을 받아주는게 전부인 부족한 아비인데 두 조카를 어찌 키워야할까, 누님을 닮아 영특한 아이들인데 어떻게 해야 그 빛나는 자질을 다듬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킬지 매일 고민이었습니다.
누님께서는 어린 제게 항상 넓은 세상을 보면서 큰 꿈을 키워야한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빅터를 작은 제네바가 아닌 유럽 제일 가는 기숙 학교로 보내 학구열을 충족시켜주고 큰 사람으로 성장시키려고 하였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 빅터를 향한 제네바 사람들의 시선은 제가 보기에도 너무나 섬뜩했습니다. 다들 악령에 씌였는지 미신을 믿고 누님과 남작을 그렇게 살해해놓고도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의 목줄을 죄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빅터가 남긴 여지가 너무나 컸습니다. 덮어버렸다간 아이들은 물론 우리 집안도 언제 어느 순간 그 광기에 휩싸일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빅터를 벌하였고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제네바의 광기로부터 최대한 멀리 보내고자 급하게 유학을 보냈습니다. 적어도 제네바에 있는 것보다는 외국에 오래 나가 있으면서 이 광기가 사그라들 때 돌아오는게 빅터에게 좋은 방법이라 믿었습니다. 줄리아가 약혼하자고 손을 내미는데 그럼 집 생각에 빅터의 마음이 약해져서 해외 생활이 너무 힘들어질까봐 매몰차게 줄리아의 손을 잡아당겼죠. 다행히도 엘렌이 제 마음을 이해한듯이 빅터를 대신 달래주고 배웅해주니 어린 엘렌에게 짐을 떠맡긴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고마웠습니다. 동생을 보내고 홀로 남은 엘렌을 줄리아와 차별없이 제 친딸처럼 키우고자 노력했지만 제가 보인 좋지 않은 인상들이 엘렌의 마음에 남아있어 저를 어려워하기에 최대한 짐을 주지 않으려고 엘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자 했습니다.
엘렌은 누님을 닮아 산학에 관심이 많더군요. 어린 누님께서 가고 싶어하시던 학교에도 보내고 싶었지만 불길한 걸 보는 듯한 사람들의 눈빛에 엘렌이 상처받을까 가정교사를 들여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영리한 엘렌은 명색이 제네바의 관리인 제가 산학이 약해 혼자서 머리 싸매고 있으면 슬쩍 다가와 가만히 수식을 보고 있으니 잠시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다 풀려있더군요. 게다가 철없는 줄리아에게 언니 역할도, 어수선한 집안에서는 관리인 역할도 해주며 슈테판 집안에 존재하지 않는 안주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니 제가 집안 걱정없이 제네바 시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건 모두 엘렌의 덕분입니다. 엘렌이 저를 어려워하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것까지 바라면 너무 큰 욕심이겠죠. 그나마 엘렌의 얼굴이 피는건 룽게의 편지가 오는 때였죠. 빅터가 학교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수석을 했다, 건강히 지낸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편지가 올 때면 엘렌은 그 편지를 몇 번이나 보곤 했었죠. 그리고 엘렌이 가장 행복해하던 때는 빅터가 전쟁터에서 돌아온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저 역시 빅터가 큰 공을 세워서 돌아온다는 말에 기뻤습니다. 이제 다 큰 어른이니 그 누구도 빅터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없을 것이고, 훈장까지 받았으니 사교계에 입성하는 귀족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처음 빅터가 들어오는데 순간 저는 오래 전 연회장에서 만났던 프랑켄슈타인 남작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습니다. 훤칠하고 늠름하게 성장한데다가 못보던 청년을 친구라고 데려오니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습니다. 그런데 정작 돌아와서 그런 무례를 보이니 처음에는 화가 났습니다. 빅터를 위해서 연회를 준비해준 엘렌과 줄리아의 정성도 몰라주는 것 같아 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감히 제가 자리에 있는데도 연회장 여기저기서 빅터의 유령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차라리 빅터가 빨리 자리를 뜬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친구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따로 찾지 않았습니다. 친구랑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줄어들 때쯤 저택으로 불러 같이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습니다.
처음에는 빅터가 한 잘못이니 빅터가 자수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님이라면 빅터가 한 잘못을 다른 사람이 뒤집어쓰게 두지 않았을테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헤센 가문이었습니다. 헤센 가문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했지만 용의자가 사형당하지 않는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며, 헤센 가문의 독자가 죽어 가문의 대가 끊겼으니 그 대를 끊어놓겠다고 날뛰니 겁이 났습니다. 빅터가 자수를 한다면 제가 손을 써서 빅터가 사형은 면해도 헤센 가문과의 관계는 완전히 박살날 것이고, 만일 헤센 가문이 영향력을 써서 빅터가 사형을 당하면 누님의 대가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엘렌과 줄리아가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빅터의 자수를 묵살시켰습니다. 헤센 가문에서 불만이 있긴 했지만 저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는걸 원치 않으니 수긍하고 넘어갔죠. 아직도 빅터의 외침이 귓가에 쟁쟁합니다. 친구는 무죄라며 자신이 살인자라고 애원하던 그 목소리가. 그 친구에게도 미안해서 재판관에게 죽을 때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는 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간수들에게도 마지막 가는 길에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고 편안하게 갈 수 있게 건들지 말라 했습니다. 그 친구를 다시 보면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사형장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엘렌과 줄리아에게도 사형장 근처에는 가지도 말라고 엄명을 내리고 어찌해야 그 친구가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시신을 빼내 묻어줄지 고민하던 찰나 그날밤에 죽은 이는 그 친구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빅터의 충직한 시종인 룽게마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밤새도록 보이지 않던 엘렌은 다음날 비와 눈물로 엉망이 된 상태로 룽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되물었지만 그저 울기만 할 뿐, 빅터가 어딨냐는 말에 총을 들고 나갔다고 겨우 답했었죠. 급히 성으로 향하니 룽게의 목덜미에는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 같은 커다란 상처가 있었습니다. 흉악한 짐승이 숲속에 있는데 빅터가 총 한 자루만 들고 나갔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사람을 풀었는데 빅터도 엘렌처럼 얼이 나가 그놈을 잡아야한다는 말만 중얼거리더군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저택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빅터는 총을 들고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버리더니 사나흘에 한번씩 돌아오더군요. 친구와 충신의 시신을 버려두고 그놈을 잡아야한다고 떠도는 빅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시간이 더 지쳐되기 전에 엘렌과 함께 두 영원의 안식처를 마련하였습니다. 룽게는 그 충심을 생각해서 슈테판 가문 소유의 땅에 묻었고 친구는 죄인이라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묻으면 무덤이 어떤 해꼬지를 당할지 모르니 사람들이 발걸음을 하지 않는 프랑켄슈타인 성 근처에 엘렌이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 사이에 빅터는 무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국경지대까지 떠돌아다녔습니다. 반쯤 체념한 저와 달리 줄리아와 엘렌은 끝까지 빅터를 믿어주었습니다. 틈틈히 빅터가 성으로 돌아오면 두 사람이 번갈아 찾아갔고 빅터는 차츰 정신을 차리고 룽게의 무덤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엘렌이 성에 친구의 무덤을 만들어놨다고 말해줘도 빅터는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성에는 얼씬도 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날의 슬픔은 빅터에게 누구보다 컸을테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빅터는 슈테판 저택에서 지내면서 제 일을 도와주고 줄리아와도 잘 지내면서 제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는 날, 저는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줄리아의 기다림이 결실을 맺었고 훌륭하게 자란 빅터가 이제 제 뒤를 이어 슈테판과 프랑켄슈타인 가문의 가주가 되어 제 몫을 다할테니까요.
오늘 이 편지를 쓰러 다른 이들에게 사냥을 하러 왔다 말하고 별장에 온 이유는 누님께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빅터는 줄리아와 혼인을 올렸으니 걱정할 것이 없고, 이제 남은 건 엘렌입니다.
또래 영애들은 벌써 혼인을 올려 첫째 아이들이 학교를 갈 나이지만 엘렌은 아직도 미혼이라 걱정하실 수 있지만 본인도 혼인을 올리고픈 마음이 없어 보여 저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이제까지 엘렌이 한 마음고생을 보답하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재산 일부를 증여할 생각합니다. 이 별장 안에 따로 보관한 재산문서들은 모두 엘렌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 재산은 모두 엘렌이 제 곁에서 절 도와주고 고생하면서 일궈낸 자산이니 누가 뭐라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재산으로 엘렌이 좋아하는 산학 공부를 계속해도 좋고, 아니면 산학 실력으로 경영을 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것도 좋죠. 남편이 없고 후원자인 제가 없더라도 빅터와 줄리아가 곁에서 좋은 벗이 되어줄테니 외롭지 않을 겁니다.
엘렌과 빅터는 이제 누님과 남작의 보살핌이 없어도 되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고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후일 제가 누님 곁에 가는 날, 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고 가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눈을 감으세요. 후일 뵙겠습니다.
-사랑하는 아우 올림-


****

"빅터.. 너는 정말 사랑받았구나..."

상처투성이의 거친 손이 편지를 팔락였다. 수 년의 세월을 응축해놓은 편지는 그 세월을 보여주듯 여러 장으로 이어졌지만 따스한 내용을 바라보는 눈은 서늘하기 그지 없었다. 편지가 들려있지 않은 손이 천천히 목을 더듬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울퉁불퉁하고 거친 촉감이 느껴지자 크리처는 큭하고 비릿한 웃음을 내뱉고 손 안의 편지가 와득 구겨졌다. 크리처의 눈이 천천히 움직여 책상 위의 또다른 서류 뭉치로 향하였다. 상자 안에 빼곡히 들어있는 문서에는 슈테판 가문의 재산들이 속속이 적혀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상자는 슈테판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상자를 준비해왔는지를 보여주듯이 낡은 티가 났었다. 오늘 밤은 모두가 행복해야할 밤이었다. 빅터는 줄리아와 혼인을 올렸고, 엘렌은 재산을 상속받아 자신의 자유를 찾을 것이고, 슈테판은 수년동안 지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 자신의 행복은 누가 찾아줄 것인가. 누가 자신을 이런 지옥 속에 던져놓았는가. 그 죄를 짓고도 용서받길 바란다면 그건 기만이었다. 이 행복의 열쇠들은 모두 빅터에게 절망을 선사해줄 좋은 선물들이 될 것이었다. 크리처는 손에 든 편지를 난로 속으로 던져넣었다. 화륵하고 불씨가 튀면서 화염은 편지를 삼켰고 검은 재가 되어가는 편지를 보던 크리처는 난롯가를 장식한 사냥용 단도를 손에 쥐고 뒤를 돌았다. 넘어진 책상 의자 옆에는 정신을 잃은 슈테판은 누워있었고, 그 곁에는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은 엘렌 프랑켄슈타인이 누워있었다. 크리처는 상자에서 재산 문서 두어장을 꺼내 엘렌의 손에 쥐어주었고 슈테판의 곁에 섰다. 3년 전 그 날, 고통없이 단번에 죽게 해준 보답을 해드릴 것이었다. 사랑하는 누님의 곁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하시기를. 크리처의 손에 들린 단도가 순식간에 내려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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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 도련님2



Written by. 玄月




사각사각.


유리로 만들어진 실험도구들이 간간히 짤그락거리면서 부딪치는 소리 외에는 실험실 안에는 종이를 채우는 볼펜 소리만이 실험실을 채웠다. 실험실 안에서 가장 볕이 잘드는 곳에 위치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앙리의 얼굴은 밝은 바깥과는 다르게 침침했다. 이게 왠 고생이람... 앙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학 수식 문제를 풀어나갔다. 실험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첫날. 빅터는 대뜸 앙리의 눈 앞에 두꺼운 책을 내밀었다. 실험을 하면서 화학의 기초도 모르면 곤란하지. 라며 빅터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앙리에게 화학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진도를 나가는 빅터에 앙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어보고 싶어도 이미 진도는 앙리를 냅두고 혼자 저멀리 나가있었기에 앙리 스스로 나머지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업이 끝나면 바로 그 다음날 시험을 보는데 문제는 빅터의 연구도 도와줘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놈의 도련님은 밤잠도 없는지 자정까지 연구를 진행했고 그때까지 붙들려있던 앙리는 결국 새벽에서야 시험공부를 할 수 있었다. 커닝이라도 해볼까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의심많고 예리한 도련님의 눈을 피해서 커닝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거짓말은 용서치 않겠다는 빅터의 경고와 쫓겨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생각에 그 방법은 접은지 오래되었다.


"도련님, 다 풀었습니다."

"그래? 제시간 안에는 풀었군."


멋대로 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가리면서 문제를 다 푼 앙리는 빅터에게 건내주었다. 앙리가 내준 자리에 앉은 빅터는 날카로운 눈으로 채점을 하기 시작했고 앙리는 침을 꿀꺽 삼겼다. 재시험만큼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에 앙리의 손에 땀이 베어나왔고 빅터의 눈동자는 빠른 속도로 답안지를 훑었다. 그리고 마지막 답안지까지 본 빅터가 시험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용케 다맞았군."

"정말요?"

"생각보다 늦게 내길래 몇 문제는 틀릴 줄 알았는데 제법이야."

"감사합니다."

"그럼 시험은 다 봤으니까 실험을 계속 하지."


빅터의 말에 앙리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은 쉬면 안되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벌써부터 실험도구를 가져오라는 빅터의 명령에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결국 앙리는 빅터의 명령대로 실험도구들을 가져왔고 셋팅을 하는 앙리를 보고 빅터는 앙리가 시험을 치는 동안 미리 섞어놓았던 시약들을 건내주면서 실험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입 안쪽 살을 지그시 깨물며 피곤을 참으면서 앙리는 시약들을 램프 위에 올려 가열시키기 시작했다. 시약들에 온도계를 넣어두고 멍하니 빅터가 말한 온도까지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데 넘실거리는 불꽃들을 보고있자니 눈이 스르르 감겼다. 며칠동안 밤을 새서 공부를 하다보니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툭하면 졸기 일쑤였다. 식사를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계획을 생각하려고 의자에 앉기만 해도 저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꾸벅거리고 있었다. 앙리는 감긴 눈을 비비고 눈에 부릅 힘을 주고 온도계를 보았지만 온도계 안에 든 빨간 수은은 올라갈 생각도 없는지 가만히 있자 앙리는 슬쩍 빅터를 보았다. 빅터는 실험일지를 적고 있는터라 이쪽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에 앙리는 슬쩍 책상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딱 5분만, 5분만 잠시 졸고 다시 평소처럼 생활하자... 그럼 괜찮을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앙리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갔다.




"앙리!!"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앙리는 퍼뜩 눈을 떴다. 들켰나하는 생각에 빅터에게 변명이라도 하려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앙리의 머리는 새하애졌다. 얼마나 졸았는지 시약의 온도들은 이미 빅터가 말한 온도들을 넘어 부글거리고 있었고 그 중 투명한 액체가 담긴 시약은 주변에 튀길만큼 바글바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넘칠 것 같은 액체에 앙리는 급히 주변에 있는 집게를 들어 시약컵을 잡아 내리려던 순간 가장 크게 부푼 물방울이 펑하고 터졌고 시약이 앙리의 손가락에 묻었다.


"앗, 뜨거!"


신경이 놀랄만큼 뜨거운 시약에 앙리의 손가락이 순간 집게를 놓쳐버렸고 시약컵은 챙그랑하고 날카로운 소음을 내면서 책상 위에서 깨져버렸다. 그리고 쏟아진 시약들이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앙리의 다른 한 손으로 흘렀다. 급히 손을 피했지만 이미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열감에 앙리가 신음을 흘리는데 불쑥 나타난 빅터의 손이 앙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급히 앙리를 끌고간 빅터는 앙리의 손 위로 찬물을 들이부었다.


"지금 제정신이야?! 실험도중에 졸다니!!"

"죄, 죄송합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잖아!"

"정말 죄송합니다..."


빅터의 호통에 앙리는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실험실에서 처음 일했을 때부터 빅터는 항상 위험하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이렇게 대형실수를 쳐버렸으니 앙리는 죽을 맛이었다. 혹시 실험을 망쳤다고 쫓겨나는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야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드는 앙리에 비해 빅터는 침착하게 앙리의 손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튄 시약이 물이었기에 망정이지, 위험한 시약이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뭐라 드릴 말씀이..."

"오늘 실험은 여기서 그만두지."


빅터는 램프의 불을 모두 끄고 책상에 쏟아진 물은 대충 수건으로 훔쳐 정리했다. 그 사이에 앙리는 아직 열감이 느껴지는 손에 바람을 불어 식혔다. 앙리는 당장 이 방을 나가고 싶어졌지만 빅터의 명령없이 함부로 나갈 수 없어 죄인이 된 심정으로 서있을 뿐이었다. 빅터는 실험실이 얼추 정리되자 앙리를 힐끔보더니 입을 열었다.


"따라와."

"네?"

"그런 모양새로 방에 돌아가겠다는건가?"


빅터가 턱짓으로 앙리의 손을 가리켰다. 겉은 아직 열이 올라 빨갛고 빅터가 급하게 물을 부어서인지 옷소매는 물론이고 팔꿈치 밑으로는 물을 머금어서 축축했다. 빅터는 앙리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방을 나갔고 앙리는 결국 빅터의 뒤를 따라갔다. 다행히 빅터를 따라가는 내내 사용인들은 물론이고 룽게마저 보이지 않아서 창피함을 모면하고 빅터가 문을 연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내 방."


앙리가 조용히 읊조린 말에 빅터가 대답하자 앙리는 흠칫했다. 빅터는 앙리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서랍을 열고 뭔가를 뒤적거리면서 찾기 시작했고 앙리는 눈을 굴리면서 빅터의 방을 살펴보았다. 창가에는 서재에 있는 것보다는 작은 책상과 서가들이 놓여져 있었고 벽 한쪽에는 자그마한 탁자와 편안한 카우치가 있었다. 카우치의 맞은편에는 앙리가 쓰는 침대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사이즈의 침대가 위치한 걸 본 앙리는 이 방이 손님맞이용 방이 아닌 빅터가 쓰는 사적인 방이란 걸 깨달았다.


"앙리, 이쪽으로."


빅터의 말에 앙리는 정신을 차리고 카우치로 향하였다. 앙리가 카우치에 조심스럽게 앉자 빅터는 그 앞에 약과 붕대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한 앙리는 대충 약을 바르고 붕대를 둘렀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빅터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나가고 싶은 생각에 손을 빠르게 움직였지만 한 손으로 매듭을 짓는건 무리였는지 붕대가 흐물흐물했다. 바짝 마르는 입술을 축이고 다시금 매듭을 짓기 위해 붕대의 한쪽은 손에 쥐고 다른 한쪽은 입으로 물어 당겼다. 붕대가 제대로 묶인걸 확인한 앙리는 방을 나가기 위해 일어섰지만 빅터의 말이 앙리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옷이 젖은 채로 나가려고?"

"제 방에서 갈아입겠습니다."

"갈아입을 옷이 있긴 했어? 항상 사용인들만 입고다니던 옷만 입던데."


쓸데없는데 예리하긴. 앙리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저택에 왔을 때 입은 옷을 입으면 됩니다. 저녁에 룽게씨께 사용인 옷을 부탁해보려고요."

"그러지말고 차라리 내 옷을 입는건 어때?"

"네?!"


이게 무슨 소린가싶어 앙리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빅터는 태연하게 옷장을 열면서 말했다.


"내 취향이 아닌 옷들이 몇 벌 있으니 일단 오늘은 이걸 입어."

"아닙니다, 도련님 옷을 제가 어떻게..."

"뭐 어때. 내가 괜찮다는데."


앙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팔에 옷을 걸어와 앙리의 앞에 내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옷들에 앙리는 살짝 마음이 동했다. 맨날 허름한 옷만 입고 살다가 처음으로 입어본 사용인들의 옷들도 따뜻하고 부드럽기 그지 없었는데 귀하신 도련님만 입는 옷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도둑질한 옷도 아니고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한 번쯤은 입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자, 일단 이 옷으로 입어봐."

"저.... 그럼... 오늘만..."


앙리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빅터의 옷을 품에 안았다. 보드라운 실크가 손에 감기는 느낌이 퍽 마음에 들었고 옷에도 향수를 뿌렸는지 좋은 향기가 앙리의 주변을 감싸안았다. 빅터가 알려준대로 파티션 뒤로 가서 앙리는 옷을 들어보았다. 얼핏 보았을 때도 좋다는 걸 느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까 불빛에 비춰진 옷들이 매끄러운 광택을 자랑하는게 보통 상등품이 아니었다. 내 팔자에 언제 이런 옷을 입어보겠나싶어 앙리는 젖은 제 옷을 벗어 파티션에 걸쳤다. 레이스셔츠를 입고 바지를 위에 입었다. 바지 밖으로 튀어나온 셔츠들을 쑤셔넣으면서 셔츠의 단정한 선을 살리고 베이지색의 조끼를 입었다. 허리선이 들어간 조끼였던터라 조끼는 몸에 딱 달라붙어서 저절로 각을 만들어주었다. 혹시 주름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연신 조끼의 밑단을 잡아내리고나서 갈색 라운드 수트를 걸쳤다. 수트 안으로 말려들어간 레이스를 빼내어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수트의 옷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앞뒤를 살피면서 눈에 확 띄는 흠이 없는지를 확인하고나서 앙리는 파티션 앞으로 나왔다.


"도련님, 갈아입었습니다."


실험일지를 읽고 있던 빅터가 고개를 들어 앙리를 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빤히 쳐다보는 빅터에 앙리의 얼굴에 가득했던 미소가 서서히 굳어갔다. 혹시 안어울리는건가, 아니면 어디 이상하게 입은 곳이 있나, 독설이라도 좋으니 아무 말이라도 좀 해줘, 이 도련님아... 앙리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에 스치는데 피식하고 빅터가 미소를 지었다. 예상치못한 빅터의 웃음에 앙리의 머릿속은 생각이 모두 날아가고 오직 한 가지만이 남았다. 잘생긴 사람은 작게 웃기만해도 멋지구나... 앙리는 멍하니 빅터의 미소를 바라보다가 아차하고 정신을 차리고 저 웃음에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할지 생각하려는데 빅터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꽤 어울리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빅터는 카우치에 기대어 앙리의 복장을 위아래 훝어보더니 뭔가가 생각났는지 서랍을 뒤지더니 하얀 레이스리본을 들고 앙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대뜸 앙리의 자켓을 벗겼다. 갑작스러운 빅터의 행동에 앙리가 놀라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곧장 목에 걸리는 리본에 앙리의 행동은 무산되었다. 


"도,도련님!"

"가만히."


빅터의 명령에 앙리는 움찔거리며 행동을 멈췄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게된터라 앙리는 그저 빅터가 묶어주고 있는 끈에 목을 맡길 뿐이었다. 턱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손만 보기에는 어지러워 슬쩍 빅터를 보았다. 눈을 낮게 내려깔고 있던터라 긴 속눈썹이 빅터의 예쁜 눈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기 힘든데 보석처럼 예쁜 눈을 또렷하게 보지 못해서 아까운 마음에 앙리는 빅터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빅터는 그 사이에 앙리의 리본을 몇 번 풀었다묶으면서 모양을 잡아갔고 단정하게 리본이 묶이자 빅터의 눈꼬리가 가볍게 휘어지더니 그대로 눈을 들어올렸다. 빅터의 파란 눈동자가 앙리의 갈색 눈동자와 맞닿는 순간 앙리는 놀라 급히 눈을 내려깔았다. 혹시 무례하게 굴었다고 혼나는건 아닐까하고 불안해있었지만 빅터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나왔다.


"앙리, 이렇게 입으니까 꼭 도련님 같군."

"네?"


앙리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고 빅터는 앙리를 데리고 전신거울의 앞에 세웠다. 앙리는 순간 거울에 비친 사람이 자신이 아닌줄 알았다. 머리색과 비슷한 갈색자켓을 입고 단정하게 선이 떨어지는 복장에다가 목에는 무도회를 가는 귀족들처럼 하얀 타이를 매고 있는 자신은 뒷골목의 사기꾼 앙리 뒤프레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다. 앙리가 신기하단듯이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빅터는 앙리의 뒤에서 거울 속 앙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사교파티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정도야."

"정말요?"

"처음보는 사람에게 나라고 해도 믿을 것 같군."

"그런 말씀 마세요. 저같은게 어찌 도련님처럼 보일 수 있겠습니까?"

"난 이런 말 함부로 하는 사람 아니야. 정말 귀족같아, 앙리."


계속되는 빅터의 칭찬에 앙리는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기분좋은 칭찬인지라 앙리는 들뜬 마음으로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하루만에 끝나는 장난이라고 할지라도 이 모습을 잊고 싶지 않았다. 손목에 달린 레이스를 나폴거리면서 제 모습을 훑어보다가 거울 속 빅터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빅터의 눈은 묘한 이채를 띈 채로 제 얼굴을 보고 있었다. 거울로 반사된 눈인데도 마치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같이 강렬한 눈빛에 앙리는 저도 모르게 슬쩍 눈을 내리고 거울에서 뒤돌아섰다.


"도련님 옷은 제 옷이 준비되면 곧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그럴 필요없어. 이건 이제 자네 꺼니까."

"네?! 하지만 이건..."

"아까 말했다시피 내 취향이 아니야. 게다가..."


 빅터는 앙리의 어깨를 잡아 돌려 전신거울을 보게했다. 그리고 귓가에 가까이 다가온 빅터가 속삭였다.


"이렇게 잘 어울리잖아, 앙리."


어깨를 잡고 있던 빅터의 손이 천천히 내려오면서 앙리의 팔을 쓰다듬었다. 빅터의 손길을 따라 느껴지는 열감과 귓가에서 느껴지는 빅터의 숨결에 앙리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앙리는 굳은 채로 빅터의 눈빛과 손길에 뜨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몸에 앙리는 그대로 뒤로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빅터의 부드러운 손이 붕대를 감은 앙리의 손을 가볍게 스치는걸 마지막으로 빅터는 앙리에게서 떨어졌다.


"오늘은 이쯤 하지."

".......알겠습니다."

"내일은 시험이 없을테니까 편한 마음으로 푹 자도록 해."

"감사합니다."

"그럼 나가 봐."


빅터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카우치에 앉아 아까 내려놓았던 실험일지를 들어올렸다.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걸 알면서도 앙리는 빅터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빅터의 방을 나가 제 방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앙리는 벽에 몸을 기대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고 얼굴은 열이 느껴질만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앙리는 제가 미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계획을 위해 들어온거야... 이정도에 이렇게 떨리면 어쩌자는거지... 앙리 뒤프레, 넌 누구보다 뛰어난 사기꾼이야... 자, 진정하자... 앙리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심호흡을 하면서 심장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붕대를 하지 않은 손으로 아까 빅터가 쓰다듬어 주었던 팔을 감싸안았다. 계획은 이미 조금씩 소리없이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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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 도련님 1



Written by. 玄月




어둠이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아침하늘을 푸르게 비추기 시작하는 새벽, 마차 한 대가 잠들어있던 거리를 깨우며 움직였다.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게 된터라 마부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 채찍질을 하였고 마차 안에 앉아있던 이는 의자에 파묻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차는 광장을 지나 귀족들이 모여사는 휘황찬란한 시내가로 들어섰고 그 중에서도 고풍스러운 외양을 자랑하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다 왔다는 마부의 말에 안에 졸던 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마차 밖을 나왔고 차가운 새벽공기에 얇은 코트를 여맨 남자는 앞에 보이는 저택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이른 새벽부터 저택 안에서는 아침이 시작되었는지 곳곳에 불이 켜져있었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비추었다. 현관 앞에 선 남자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벨을 울렸다. 이내 안쪽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큰 문이 열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실험보조자로 온 앙리 클레르발이라고 합니다."

"어서와요, 클레르발군. 이른 새벽부터 수고가 많아요."


바깥이 많이 춥다며 어서 들어오라는 말에 앙리는 재빨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저택 내부에 앙리는 움츠렸던 몸을 풀고 힐끔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겉만 그럴듯한 집에서 사는 이름 뿐인 귀족들과는 다르게 안쪽까지 고급스러운 물품으로 꾸며진 내부에 앙리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구경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앙리를 불렀다.


"클레르발씨, 머무를 방을 소개해드리죠."

"아, 죄송합니다. 저택이 너무 좋아서 실례를 했군요."

"아니예요. 앞으로 쭉 지내게 될 곳인데 마음에 들면 좋죠." 


자신을 이곳의 집사, 룽게라고 간단히 소개한 뒤에 룽게는 앙리를 방으로 안내해주겠다고 앞장섰고 저택 뒷편에 위치한 사용인들이 쓰는 방까지 가는 동안 룽게는 앙리의 일을 알려주었다. 앙리의 일은 집안일을 하는 다른 사용인들과 다르게 도련님의 실험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도련님이 실험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옆에서 케어해주는 일로 들어가서 쉬어도 좋다는 도련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낮이어도 개인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실험이라는 위험부담이 있는 일인만큼 봉급 역시 다른 사용인들보다 훨씬 좋았다. 이런 일보다 룽게가 더욱 강조한 건 다름아닌 '도련님'에 관한 것이었다.


"도련님은 두통이 있으셔서 예민하신 편이니까 주의해주세요. 그리고 도련님의 성격상 본인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그러니까 실험도구 외에는 되도록 안 건드리는 게 좋아요. 전에 있던 실험보조자가 실험도구 둔다고 도련님의 물건을 잠시 옆에 옮겨놨을 뿐인데도 어찌나 화를 내시던지 불쌍하게도 결국 쫓겨나게 되었죠. 실험시간만 조심히 잘 보낸다면 아마 그 외에는 앙리를 따로 부를 일은 없을 겁니다."


어느덧 앙리의 방앞에 도착한 룽게는 문을 열어주고 앙리에게 열쇠를 건내주었다. 방 안은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만 놓여진 깔끔한 구조였는데 무엇보다 혼자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앙리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짐 풀고 옷은 편한 걸로 갈아입고 나와요. 혹시 몰라서 여분의 옷은 옷장 안에 넣어두었으니까 필요하면 꺼내입고요."

"그럼 언제까지 나가면 될까요?"

"도련님은 새벽까지 실험실에 계셔서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시는 편이예요. 일어나실 때까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아침식사하고 천천히 준비해요."


앙리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자 룽게는 조금있다 데리러 올테니 편하게 있으란 말과 함께 방을 나갔다. 들고온 가방에는 짐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이 속옷들이랑 허름한 옷 한 벌이 다 였기에 가방 채로 옷장 안에 밀어넣고 룽게가 말한 여분의 옷을 꺼내 입었다. 사용인들이 입는 검은 자켓에 흰 셔츠일 뿐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옷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감에 역시 귀족은 귀족이란 걸 느끼면서 메이드가 가져다준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시계는 벌써 아침을 지나갔고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나하고 지루해질 찰나 노크소리가 들렸다. 


"앙리, 도련님을 뵈러 갈 시간입니다. 지금 막 아침식사를 끝내시고 서재에 가셨으니 그곳에서 인사드리죠."

"네."


앞장서는 룽게를 따라 앙리는 방을 나와 길고 긴 복도를 걸었다. 룽게는 가는 길 내내 주의사항을 반복해서 알려주었고 지나가는 사이에 한참 바쁘게 일하던 사용인들도 보이지 않을 때쯤 룽게는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룽게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창문에서 따스한 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왔고 하얀 대리석 바닥에 비춰진 햇살이 서재 안쪽 곳곳을 밝게 비추어주었다. 밝은 햇살에 니스칠한 나무 서가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눈길을 줄만큼 예뻤지만 그것보다 창문 앞에 위치한 검디검은 가죽의자가 앙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등을 보이고 있는 의자에 앙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앙리를 소개하는 룽게의 말에 앙리는 룽게에게 들었던대로 책상 앞에 서서 품에 넣어뒀던 추천서를 책상에 올려두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앙리 클레르발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가죽의자가 천천히 돌았다. 눈을 책상 위 추천서에 고정하고 있던 앙리는 살짝 눈을 들어 도련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앙리는 굉장히 놀랐다. 도련님이라고 하길래 15,16살 정도의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 앞에 있는 도련님은 제 또래, 아니, 오히려 자신보다 더 연상인 성인이었다. 약간 신경질적인 눈매가 매력으로 보일만큼 이목구비가 또렷했고, 딱 벌어진 어깨 덕분에 코트가 없는데도 상체가 각이 잡혀있었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준수한 외모의 도련님에 앙리가 잠시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는데 순간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자신을 삼킬 것 같은 강렬한 눈빛에 앙리는 화들짝 놀라 급히 눈을 내려깔았고 도련님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지 책상 위에 있는 추천서를 읽었다.


"룽게, 주의사항은 다 이야기해준건가?"

"물론입니다, 빅터 도련님."

"그럼 나머지는 단둘이 이야기 하지."


도련님의 명령에 룽게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빅터라... 앙리는 조그맣게 이름을 읊어보는데 빅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페르난도 백작님이 소개서를 잘써주셨군."

"백작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대학은 가지 못하고 고급교육까지는 받았다라... 그럼 나 대신 실험일지를 써줄 수도 있겠어."


고급교육이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앙리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자크, 이 망할 놈. 뜻도 모르고 글자만 겨우 읽을 줄 아는데... 이런 사기를 나한테 말도 없이 써놓으면 어쩌자는거냐. 앙리는 편지를 써준 동업자에게 속으로 이를 갈아주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런 전문적인 일에 관해서 제가 뭘 쓰기에는 아직 배움이 많이 부족합니다."

"기본기만 있으면 돼. 나도 엄청난 걸 바라는 건 아니야."


빅터는 종이와 펜을 앙리 앞에 내놓았다. 앙리가 머뭇거리자 빅터는 앙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서 잡으란 듯이 턱짓을 했고 앙리는 침을 삼키고 펜을 들자 빅터는 가죽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원소주기율표를 써보게."

"...예?"

"원소주기율표. 화학의 기초 중 기초니까 자네도 알겠지. 헷갈리고 기억이 안나면 아는 원소라도 써보게."


앙리는 쩍쩍 마르는 입술을 핥으며 종이를 보았다. 하지만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봤자 생판 처음 들어보는 원소주기율표가 보일 리가 만무했다. 앙리가 빅터를 힐끗 보았지만 앙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 급히 시선을 내렸다. 긴장때문에 손에서 땀이 베어나오는게 느껴졌다. 앙리가 천천히 종이에 펜을 올려다놓고 힘을 주는 순간 땀때문에 미끄러진 펜이 책상 위를 또르르 굴렀고 적막을 깨는 펜소리에 앙리는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네, 고급교육은 커녕 중급교육조차 받지 않았나보지?"

"...실은... 먹고 사는데 급급했던 터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부양해야하는 노모와 어린 동생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서 안그래도 가난한 집이 더욱 가난해져서 페르난도 백작님 밑에서 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글자만 겨우 깨쳐서 사는데에 큰 무리 없이 지냈지만... 실험 보조자로 간다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백작님께 고급교육을 받았다고 거짓을 고하고 추천서를 얻어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기서 쫓겨나면 저희 가족들은 모두 굶어죽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 고생이람... 앙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런 사태를 만든 동업자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짧은 시간만에 애절한 가족사를 꾸며낸 제 능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부양해야할 가족은 커녕 부모도 모두 죽어 없지만 어떻게든 이곳에 남아야 계획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정도의 스토리라면 다들 눈물을 훔치고 자신을 받아들여주었는데 머리가 따갑다고 느껴질만큼 날카롭게 자신을 보고 있는 도련님에게 이 스토리가 먹힐지 의문이 들었다. 톡톡하고 손끝으로 책상을 치는 소리만이 서재에 울렸고 이러다가 계획을 실행시키지도 못하고 쫓겨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앙리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려는 찰나 빅터가 일어났다. 


"돈이 필요하면 가져가도 상관없어. 이 방 어느 물건을 가져가서 팔아도 난 신경쓰지 않아."


큰 키에 햇빛이 가려져 그림자가 만들었다. 구두 소리가 앙리의 귓가에 다가왔지만 앙리는 그저 허리를 숙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가 없었다. 손질이 잘된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저 구두는 얼마짜리일까하고 생각하려던 순간 커다란 손이 다가와 턱밑을 감싸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앙리와 빅터의 눈에 서로의 모습이 새겨졌다. 앙리는 조심스럽게 침을 삼켰다. 훔쳐본 것만으로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빅터의 얼굴은 숨이 쉬어지지 않을만큼 잘생겼다. 살면서 저 사람만큼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있을까. 이제껏 여러 귀족들의 뒷통수를 많이 쳐봤지만 이 사람만큼 아우라에 압도되어 쉽사리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게 거짓을 고하는 것만큼은 용서치 않겠다."


손끝으로 앙리의 얼굴 근육이 굳어지는게 느껴져 빅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직 어리군. 하지만 아무리 어린 강아지라 할지라도 주의는 필요한 법이었다. 앙리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빅터가 말을 이었다.


"알았나, 클레르발?"

".... Yes, Young Master."


이채를 띠는 빅터의 눈동자에 홀린듯 앙리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만한 도련님과 수상쩍은 실험보조자,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묘한 기류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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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 ANDROID 



Written by. 玄月




['I-ROBOT ' 21C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인공지능과 인체로봇은 22C를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NW22' 칩의 개발로 인공지능은 3살 어린아이의 지능을 넘어 스스로 성장하여 가장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20대~30대의 절정기를 수십년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NW22'이 개발된지 50년 뒤, 사람처럼 움직일 수있는 로봇'I-ROBOT'이 만들어졌다. 'I-ROBOT'은 21C에 상영된 영화의 제목을 따온 것으로 S.E사가 개발한 인공관절과 고강도 금속으로 만들어진 피부를 가지고 NW사의 NW22시리즈 칩이 내장된 'I-ROBOT'은 걷기, 뛰기, 포옹 등과 같은 인간과 같은 행동이 가능할 수 있게 제작되었으며 NW사와 S.E사의 역사적인 합병으로 N.S사가 설립되고 난 이후 24C, 현재는 N.S사는 인간처럼 성장할 수 있는 로봇, 'ANDROID'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앙리는 읽던 책을 덮었다. 'ROBOT의 개발과 역사'라는 고리타분한 책을 앙리는 빅터의 서재에서 발견한 뒤로 벌써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앙리는 책을 들고 빅터의 서재로 향하였다. 빅터의 서재문을 연 순간 앙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어제 자신이 열심히 치웠지만 방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책부터, 방바닥 여기저기 뒹구는 나사들과 전선들이 여기가 사람사는 방인지, 로봇연구소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조만간 룽게를 불러서 함께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방 안에 들어가 책장에 책을 꽂았다. 책장에는 액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앙리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오만하게 보일정도로 자신만만한 빅터와 달리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제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간 꿈꿔왔던 꿈을 펼치기 위해 N.S사에 입사하였다. 안드로이드 개발팀으로 입사를 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학회에서 빅터를 만나게 되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로봇과 인체의 결합'이란 논문을 쓴 그 앙리 뒤프레가 맞냐고 여러 차례 확인한 빅터는 자신을 이끌고 제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죽은 사람의 모든 기억을 칩에 입력하여 안드로이드로 부활시키겠다는 꿈. 어떤 의미에서는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드는 꿈에 그 자리에서 정중히 그와의 공동연구를 거절했지만 그는 회사까지 찾아와 자신과 함께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끈질긴 그의 요청에 반쯤 포기해 부탁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 후 그와 함께 일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그가 다름아닌 자신이 일하는 N.S사의 후계자이며 NW시리즈의 개발자로 현재 ANDROID개발의 총책임자였다는 것이었다. 이 사진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왠지모를 빅터와의 신분적인 거리감을 느꼈을 때 찍은 것이었다. 앙리는 몸을 돌려 빅터의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는 또다른 액자가 놓여있었다. 그 사진에는 자신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있는 빅터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자신이 찍혀있었다. 빅터와 함께 연구를 하면서 이리저리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스킨쉽에 그만하라고 몇 번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빅터는 투덜거림은 한 귀로 흘려보내기 일쑤였고 자신 역시 이런 애정표현은 처음이어서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기억상으로 이 사진을 찍었을 때가 그런 스킨쉽이 가장 많았던 때였다. 그 때의 추억이 떠오르자 앙리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요즘따라 빅터의 스킨쉽이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스퀸쉽이 한달전이었으니 줄어들었다는 말보다는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는 거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져버렸다. 요즘 일이 많고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앙리는 빅터는 빅터의 방을 나왔다. 그 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며 하루종일 보고 싶었던 사람이 들어왔다.


"빅터, 다녀왔어?"

"잘있었어, 앙리?"


빅터는 미소를 지으며 앙리에게 다가왔다. 앙리가 그를 안기 위해 팔을 벌렸지만 빅터는 못봤는지 스쳐지나가며 자켓을 벗었다. 앙리는 무안해진 팔을 다시 모으며 자켓을 받아들며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어쩌다보니 일찍 퇴근했어."

"그럼 저녁은?"

"저녁은 줄리아랑 먹었어. 너는?"

"나는 오늘 저녁 생각이 없어서."

"다쳤던 사람이 잘먹어야지."

"내일은 꼭 챙겨먹을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앙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빅터는 가볍게 싱긋하고 웃고는 씻는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앙리는 빅터의 자켓과 가방을 정리하고 주방을 둘러보았다. 요즘따라 빅터는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바쁘니까 커피만 한 잔하고 휘리릭 나갔지만 저녁은 일이 있지 않으면 함께 했는데 요즘은 빅터가 항상 밖에서 식사를 해서 주방을 쓸 일도, 같이 마주앉아 식사하는 것도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자신 역시 식사를 거의 안했다. 정확히는 못하겠다고 해야하나. 하루에 죽 한끼하면 많이 먹은 거였다. 입맛이 없는 것도 있지만 그 이상 먹으면 먹은 것을 다 토해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빅터에게 줄만한 것이 뭐 없나하고 냉장고를 뒤적거리는데 벌써 다 씻고 나온 빅터가 앙리의 뒤에서 말했다.


"뭐하는거야, 앙리?"

"자네가 먹을만한 간단한 간식거리가 없나 싶어서."

"간식거리는 무슨, 내가 앤가?"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같이 뭘 먹은 적이 없잖아."

"간식은 됐어. 먹는다면 차라리 이걸 마시지."


빅터는 냉장고 한 켠에 놓인 술을 꺼내들었다. 앙리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벌써부터 술을 마시려고? 그것도 안주도 없이?"

"조금만 마실게. 오늘 숙부님이랑 한바탕해서 좀 마셔야될 것 같아."


빅터는 식탁에 앉아 잔을 꺼내들었다.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입안에 가득찬 잔소리를 삼키고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빅터가 잔에 가득찬 맑은 액체를 한모금 마신 뒤에야 앙리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또 왜 싸웠나?"

"뭐 뻔하지. 언제 NW사를 제대로 이어받을건지 그걸로 한바탕 했지. 엘렌한테 넘기라고 하니까 엘렌에게는 이미 지분의 반을 넘겨줬으니 나머지 반은 나보고 이어받으라잖아."

"회장님으로써는 당연하지. 조카남매가 같이 회사를 운영하는 걸 보고 싶어하셨잖나."

"내가 잘도 경영을 하겠다. 그냥 엘렌이 NW쪽을, 줄리아가 S.E쪽을 온전히 물려받아서 둘이 같이 운영하면 잘할텐데 왜 나를 끼어넣으려고 하시는지."

"맨날 있는 싸움이잖아. 새삼스럽게 술을 마시면서 풀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자네가 못봐서 그래. 요즘 싸움의 마무리는 뭐 하나가 깨져야한다니까. 예전에 담배를 피우실 때는 재떨이가 날아오더니만 요즘은 금연하신다고 재떨이를 치우셔서 컵을 던지시지 않나. 재떨이잡는게 겨우 익숙해졌는데 요즘은 컵으로 바뀌어서 힘들어. 컵손잡이 때문에 잡기가 힘들단 말이야."

"아직 정정하시니까 그렇게 던지실 수 있는거지. 어떤 의미로 회장님이 아직 건강하시다는 걸 보여주는거 아니겠나."

"농담하지마, 앙리. 요즘 그래서 숙부님 사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살떨린단 말이야. 진짜 조만간 칼을 던지셔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빅터의 투덜거림에 앙리는 키득거렸다. 빅터의 숙부이자 N.S사의 총수이신 슈테판 회장은 겉으로는 투덜거리고 망할놈의 조카라고 욕을 하셔도 속으로 빅터와 엘렌 남매를 딸인 줄리아만큼이나 아끼셨다. 빅터 역시 그걸 느끼기에 숙부님이랑 투닥거릴 때에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경향이 있었다. 엘렌이랑 줄리아는 슈테판 회장의 양날개로 현재 활동 중이었다. 엘렌은 대외협력 및 마케팅을, 줄리아는 I-ROBOT의 디자인 쪽으로 일을 하며 슈테판 회장을 돕고 있었다. 빅터는 NW시리즈의 개발자로 슈테판 회장이 총수의 자리를 가장 물려주고 싶어하지만 빅터 본인은 그걸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어 툭하면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싸우기 일쑤였다.


"자네이야기 들어보니까 엘렌이랑 줄리아랑 마지막으로 만나고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네. 조만간 두 사람이랑 만날 약속을 한 번 잡아야겠어."

"당분간은 안 돼, 앙리."

"왜?"

"자네가 크게 다치고 퇴원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밖에 나갈려고 하나?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로봇시리즈를 개발하게 되면서 두 사람 모두 바뻐. 나중에 내가 약속잡아줄테니까 당분간은 연락하지마, 응?"

"....알았어, 빅터."


빅터 말로는 한 달 전, 밤늦게 퇴근하던 앙리를 차가 보지 못하고 그대로 치고 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너무 크게 다친터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선고까지 들었고 빅터는 세상을 잃은 듯한 느낌으로 앙리가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달전, 앙리는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빅터의 집에서 수액을 맞고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상처는 수술로 흉조차 남지 않게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눈을 뜬 앙리를 보자 빅터는 이제서야 일어났냐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의 사고가 빅터에게는 큰 충격이 되어 앙리는 집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겉으로 괜찮아보여도 아직 덜 회복되었을 수 있으니 안정기가 될 때까지는 집밖에 나갈 생각도 말라고 말하는 빅터에 앙리는 알겠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달째 앙리는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긴채 집에만 있었다. 빅터 다음으로 친했던 엘렌과 줄리아, 그리고 룽게를 오랫동안 보지 못해 마음에 걸려했었다. 시무룩한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말을 이었다.


"내가 최대한 빨리 약속잡아줄게, 앙리. 너무 섭섭해하지마, 응?"

"안 섭섭해, 빅터.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너무 걱정되서 그런거니까. 이해하지?"

"물론이야, 빅터."

"그럼 이제 들어가서 자자. 내일은 휴일이니까 푹 자자고."


빅터와 앙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빅터는 잘자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고 앙리 역시 제 방 침대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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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이것만 약속해줘.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앙리...."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앙리, 다시 생각해봐."

"어차피 널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행복한 인생도 없었을거야."

"앙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러니..."

"빅터... 너와 함께 새 세상을 상상할 수만 있어도 난 행복해."

"앙리, 제발 사실대로 말해줘, 제발!"


빅터가 울고 있었다.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왜 그렇게 울고 있는거야, 빅터?




앙리는 찜찜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요즘따라 잠자리가 불편했다. 어젯밤 꿈에도 빅터가 울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매일밤마다 이상한 장면들이 보였다. 빅터의 후배 윌터의 머리를 든 장의사의 모습, 피묻은 플라스크 조각을 들고 있는 빅터, 창살을 사이에 두고 울고 있는 빅터, 그리고 사형대. 끔찍한 악몽들이 매일같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었다. 그와중에 스토리까지 이어지니 이런 악몽은 또 처음이었다. 이렇게 불쾌한 악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고민하려던 찰나 앙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아무 의미없는 꿈이리라. 단지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런 것 뿐이야. 앙리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을 깰 겸 부엌으로 나가 컵을 꺼내 물을 들이켰다. 시원한 물의 청량감에 머리가 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빅터의 방문이 열리고 기분이 안좋은지 미간을 찌푸린채 빅터가 나왔다.


"어라, 빅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앙리는 깜짝 놀라 시계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빅터에 앙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빅터는 앙리에게서 물병을 받아내 새 컵을 꺼내 물을 들이키고 대답했다.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엘렌이 안오면 가만 안둔다길래 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아침 먹을래? 어제 저녁도 일찍 먹었잖아."

"아침... 뭐, 먹고 가지. 난 회의 자료 좀 챙기고 있을게."


빅터는 몽롱한 상태에서 대답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앙리는 들뜬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빅터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에 평소에는 입도 안대는 빵과 베이컨 등을 꺼냈다. 커피를 내리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듬뿍 넣어 샐러드를 만들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팬에서 노릇하게 구운 베이컨과 계란을 각자 접시에 담아 올리고 냉장고에서 과일잼을 꺼내 올리자 때마침 빵이 토스트에서 툭하고 튀어올라왔다. 오랜만의 빅터와의 식사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앙리는 의자에 앉아 빅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방에서 나온 빅터가 아직 졸린건지 하품을 하며 빅터는 테이블 앞에 앉았고 앙리는 그의 샐러드 접시에 샐러드를 듬뿍 올려주고 입을 열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 

"너무 많이 담는거 아니야?"

"오늘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니까 든든하게 먹어야지."

"이렇게 일찍 가는 거 싫은데..."

"투정부리지 말고."


딱잘라 말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뚱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먹었다. 테이블 위에는 나이프로 썰고 음식물을 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런 귀한 시간을 이렇게 소비한다는게 앙리는 영 내키지 않았다. 무슨 말을 꺼내는 게 좋을까하고 고민하는데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을 툭 내뱉었다.


"나 어젯밤에 꿈을 꿨어."

"...꿈?"


앙리는 제 혀를 깨물고 싶었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주제에서 이걸.... 앙리는 슬쩍 빅터를 보았다. 커피잔을 든 손을 멈추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빅터의 모습에 다른 주제로 빠져나가기는 글렀다는 걸 직감했다.


"그게... 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니면 꺼내지도 않았겠지. 무슨 꿈인데?"

"그냥 악몽을 좀..."

"악몽?"

"무슨 감옥같은데에 갇혀있었는데 창살을 사이에 두고 자네랑 나랑 손잡고 있었어. 자네는 울고있고 나는 그런 자네를 달래고 있고... 자네는 사실을 말하라고 하고, 난 괜찮다고하는데... 진짜 이상한 꾸...."


챙그랑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테이블 위로 울렸다. 앙리는 깜짝 놀라 말을 멈추었다. 테이블에는 커피잔이 뒹굴았고 안에 들어있던 커피가 쏟아져 있었다. 


"빅터, 괜찮아? 커피에 데인거 아니야?"

"괜찮아... 손이 미끄러워져서..."

"데이지는 않았어?"

"테이블에만 쏟았어. 놀라게해서 미안."


빅터는 급히 테이블을 닦아냈고 앙리는 깨진 유리조각을 치웠다. 문득 손에 들린 조각을 보니 깨진 컵은 다름아닌 빅터와 동거하게되면서 처음 산 머그컵이었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 괜스레 씁쓸해졌다. 그러나 앙리는 그런 마음을 다독이고 입을 열었다.


"여긴 내가 정리할게."

"아니야, 내가 정리할게."

"괜찮아. 자네는 이제 갈 준비해야지."

"그래도..."

"나도 정리하고 잠시 나갔다와야겠군."


순간 빅터의 손이 굳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앙리를 바라보았다.


"나가다니?"

"서점에 가보려고. 새로 나온 신간책 있는지 보고 나간김에 깨진 컵도 사오려고. 집에 있는 책들은 이미 다 읽어서..."

"안돼."


딱잘라서 말하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차근차근 대답했다.


"어디 멀리 가는거 아니잖아, 빅터. 바로 집 앞 서점에만 갔다올게."

"그 서점, 자네가 입원했을 때 없어졌어. 갈려면 시내까지 깊이 들어가야해. 가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하려고."

"잠깐만 다녀올게. 이렇게 집에만 있어서 제대로 걸어본지 오래란 말이야. 잠깐 나갔다오면서 다리운동도 하고... 운동하면서 회복하면 내 몸도 빨리 나을거 아니야."

"그래도 안돼."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크게 다쳤다지만 사람을 나가지도 못하게 막고. 보호하는것도 정도가 있지, 이정도면 과보호였다. 빅터는 원래 티는 안내지만 자신을 싸고 도는 경향이 있었지만 사고 이후 그 경향이 좀 심해졌다. 앙리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오랜만에 아침을 함께 보내는데 이런 작은 일로 빅터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책정도야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그만이었다. 집에 있는 유일한 PC는 빅터의 방에 있는 작은 노트북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마저 빅터가 안에 중요한 파일들이 있다면서 작동칩을 가지고 있어 PC를 쓸 수가 없었다. 그에 앙리는 빅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럼 오늘만이라도 자네 노트북 쓸 수 있게 해줘. 인터넷으로 주문할게."

"그것도 안돼."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답답한 마음에 결국 앙리는 언성을 높였다. 언성을 높인 앙리와 달리 빅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은 책이 뭔데? 내가 들어오는 길에 사서 올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왜 이렇게 나를 싸고 도는 건가? 내가 아무리 큰 사고를 당했다지만 한달동안 집에 갇혀 살아야될 이유는 없어!"

"갇혀 살다니. 말이 심하잖아, 앙리."

"자네 행동은 어떻고? 엘렌들이랑 연락하지 마라, 집에서 나가지도 마라, 인터넷도 하지 마라. 외부와 단절된 채로 이건 감금이나 다름없잖아!"

"그만해, 앙리."

"내게 뭐 숨기는 거라도 있는거야? 그게 아니면 왜 이러는거야?"

"그만해."

"자네가 독선적인 경향이 있는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잖아. 내 어디가 불안해서 이러는거야? 정말 내가 다칠까봐 불안한거야, 아님 내가 꿈에서 본 것 처럼 살인이라도 할 것 같아서 불안한...."

"그만해, 앙리 뒤프레!!"


빅터는 고함을 치며 앙리를 노려보았다. 한참 그를 바라보더니 빅터는 한숨을 쉬고 이마를 짚으며 돌아섰다.


"그만하자, 앙리.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빅터, 난 아직 자네의 대답을 듣지 못했어!"

"그만해, 앙리. 날 화나게 만들지 마. 난 이제 나갈 준비해야겠어."


빅터는 날카롭게 대답하며 그대로 뒤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앙리는 다리의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 많이 남은 아침식사가 식어가고 있었지만 앙리는 먹고 싶지 않았다. 몰아치는 섭섭한 마음에 앙리는 입술만 깨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걸까. 왜 저렇게 빅터는 자신을 안에 놔두고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은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면 무엇이 두려워 이러는 것일까... 고민하던 앙리는 욕실을 살폈다. 안에서는 샤워기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이에 앙리는 빅터의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빅터가 챙겨둔 서류가방이 있었다. 앙리는 서류가방을 뒤적거렸다. 뒤를 연신 확인하며 서류가방을 뒤지던 앙리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앙리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아닌 PC 작동칩이었다. 앙리는 작동칩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빅터가 없어진 걸 알게된다면 필시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순간 앙리의 눈에 서재 구석에 있는 시계가 보였다. 책상에 굴러다니는 드라이버로 시계의 뒷편을 뜯어내고 안에 있는 작동칩을 꺼내 빅터의 가방안에 넣었다. 그리고 가방과 시계를 원래 있던 자리에 놔두고 급히 방을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꺼내 펼쳤다. 책을 펼치자마자 빅터가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빅터는 앙리를 물그러미 쳐다보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앙리의 눈은 책을 보고 있었지만 온 신경이 빅터의 서재로 쏠렸다. 뭔가 달라진 것을 눈치채지는 않을까...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빅터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나왔다. 빅터는 현관으로 향하며 앙리에게 말했다.


"갔다올게, 앙리. 그리고 절대 밖으로 나가지마."

"알았어, 빅터."


순순히 대답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를 바라보았다. 앙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거짓웃음을 지으려니 입꼬리가 떨리는 것 같았지만 앙리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대답했다.


"안 나갈거야, 빅터.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아까전에 소리친 건 미안해, 앙리. 정말 걱정되서 그런거야."

"나도 알아."

"신간책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신간 의학 서적으로 사올까?"

"뭐... 의학이나, AI관련 정보 신간 있으면 사줘."

"알았어. 그럼 갔다올게."


빅터는 앙리에게 웃으며 집을 나섰다. 앙리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다 문이 닫히고나서 소리없이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앙리는 비틀거리며 소파에 앉아 축 늘어졌다.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앙리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앙리는 천천히 일어나 빅터의 방으로 향하였다. 서재는 빅터의 서류가방이 없어지고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앙리는 PC의 앞에 앉아 작동칩을 넣었다. 전원을 켜고 앙리는 마우스를 잡아 인터넷을 켰다. 너무 오랜만에 잡아서인지 마치 살아서 처음으로 PC를 써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앙리는 가볍게 웃었다. 검색창에 앙리는 더듬더듬 키워드를 쳤다. [VICTOR FRANKENSTEIN]. 빅터의 프로필 밑에 있는 뉴스 기사들을 천천히 훝어보았다. '새로운 NW시리즈의 개발', 'ANDROID의 개발 현황', 'N.S사의 총수자리를 거부하는 후계자', '칩거중인 N.S사의 후계자'.... 다 빅터가 이야기해주었던 것들과 관련된 기사들 뿐이었다. 딱히 크게 이상한 점이 없었다. 그외에 [ELLEN FRANKENSTEIN], [JULIA STEPHAN] 등 빅터의 관련 인물들에 대해 쳐보았지만 이렇다할 것들이 없었다. 그 때 앙리는 문득 떠오르는 키워드를 천천히 입력했다. [HENRY DUPRE]. 앙리는 떠오르는 키워드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HENRY DUPRE, 23xx. x. x.~ 23xx. x. x.] 앙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뭔가... 왜 사망일이 입력되어 있는거지... 앙리는 사망일로 적혀진 날짜를 계산했다. 불과 지금으로부터 1년전이었다. 이에 앙리는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1년전에 죽었다고 되어있는 것인가? 앙리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려 밑에 있는 뉴스기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앙리는 뉴스 기사들을 보고 떨리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앙리는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수많은 뉴스기사 중 하나를 클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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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는 뻐근한 어깨를 주므르며 빌라 안에 들어섰다. 오늘 역시 힘든 하루였다. 아침회의는 역시나 N.S사의 후계 문제에 대한 회의였고 숙부님을 필두로 모두가 그에게 후계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압박했지만 그는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숙부님은 그게 꽤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엄청난 양의 서류를 주었지만 빅터는 오늘만큼은 그 서류를 나몰라라하고 퇴근해버렸다. 그의 손에는 새로나온 신간들이 가득했다. 앙리에게 아침부터 화를 낸 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려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꽤 많은 양을 책을 고르게 되었다. 빅터는 책들을 받고 미소를 지을 앙리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얼른 앙리에게 선물을 건네주고싶어 빅터는 빠르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서며 큰소리로 앙리를 불렀다.


"앙리!"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고 조용한 집안에 빅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이렇게 집안이 조용한거지. 혹시 자나... 빅터는 거실을 보았다. 거실에는 앙리가 멍하니 앉아있었다. 넋이 나간 듯이 멍하게 앉아있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픽하고 웃었다. 저렇게 무방비한 상태의 앙리는 실로 오랜만이어서 빅터는 그저 웃으며 앙리에게 다가갔다.


"앙리, 다녀왔어."


멍하니 있던 앙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빅터를 바라보았다. 앙리의 얼굴을 보는데 빅터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앙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에 빅터는 가방과 책들을 내려놓고 앙리를 바라보았다.


"앙리, 왜그래? 무슨 일있어?"


앙리는 빅터를 바라보다 그의 셔츠자락을 잡았다. 빅터는 움찔했지만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앙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빅터..."

"왜?"

"난.... 누구야?"


순간 빅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빅터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누구긴... 자네는 내 친구 앙리 뒤프레지."

"거짓말..."


앙리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빅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빅터 프랑켄슈타인. 난 누구야?"

"앙리, 오늘따라 왜 그래? 자네는 내 친구 앙리 뒤...."

"거짓말 하지마!!"


앙리는 빽하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앙리 뒤프레는 죽었잖아... 그것도 1년 전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앙리는 소파 옆에 숨겨두었던 PC를 꺼내 그의 앞에 던졌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PC 모니터에는 뉴스 기사들이 떠있었다. '앙리 뒤프레, 연구를 위해 20명 살해.', '살해된 이들 모두 머리가 잘려.', '협회 공식 선언, 앙리 뒤프레 영구 제명.', '앙리 뒤프레 사형 선언' 앙리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PC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게 뭐야? 난 여기있는데 앙리 뒤프레는 죽었어. 그것도 20명을 살해한 살인마로 사형선언을 받고 1년 전에 죽었어! 난 뭐야? 난 죽은 앙리 뒤프레의 망령이야? 내 정체가 도대체 뭐냐고!"


빅터는 천천히 떨어진 PC를 들어올려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무감각한 눈으로 기사들을 보던 빅터는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쯧하고 혀를 찼다.


"벌써 세 번째군."

"뭐?"

"네가 이런 질문을 한 횟수이자 널 리셋한 횟수야."


빅터는 PC를 휙하고 던졌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이 목 뒤를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밖으로 나가고나서 나한테 묻더군. 자신은 뭐냐고. 그래서 리셋해버렸어. 두 번째는 앙리 뒤프레의 주변인물들과 연락을 하고나서 자신이 무엇인지 물었어. 그때 역시 리셋해버렸지."

"그게... 그게 무슨..."


앙리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빅터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해서 세 번째 앙리 뒤프레. 네가 태어난거야. 근데 이번에는 아예 그런 쓸데 없는 행동이랑 쓸모없는 질문같은거 하지 못하게하려고 아예 메모리칩을 포맷시켜버렸어. 포맷을 했는데도 네가 제일 빨리 물어보는구나. 꿈을 꾸고 너 자신에 대해 스스로 호기심을 가질 줄이야."


말을 끊낸 빅터는 앙리를 쳐다보았다. 빅터와 눈을 맞춘 순간 앙리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평소의 빅터의 눈이 아니었다. 비록 예전처럼은 아니었지만 그는 애정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곤 했지만 지금의 눈은 아니었다. 아무런 애정도 없이 마치 타인을 보는 듯이 매마르고 차가운 눈빛에 앙리는 몸이 덜덜 떨렸다. 빅터는 그런 눈으로 앙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회에서 앙리 뒤프레는 20명이나 살해한 미친 살인마지만 아니야. 그건 잘못된 사실이야. 20명이나 죽인 건 장의사 프란츠놈이었어. 내 연구를 위해서는 죽은지 얼마안된 사람의 시신이 필요했어. 그래서 장의사에게 죽은지 얼마안된 사람의 시신을 가져오면 후하게 쳐주겠다고 했지. 그런데 설마 살인을 할줄이야... 내가 제시하는 돈에 눈이 멀어 그자는 사람들을 죽이고 돈을 받았지. 바보같이 난 그 사실을 몰랐는데 마지막 20번째 희생자로 윌터의 머리를 내밀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되었어. 이놈이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내게 돈을 받아냈구나. 나는 그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서 실험관으로 내려쳐 죽였어. 그 때 옆에 있던 앙리가 날 기절시키고 내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거야. 앙리에게 자수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고 결국 나대신 사형을 선고받고 죽었어."


끔찍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빅터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저렇게 태연하게 이야기 할 수가 있을까. 앙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지?"

"내가 말했잖아. 이게 '세 번째'라고. 세 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느낌이 들겠어?"


빅터는 코웃음을 치고 대답했다. 그에 앙리는 참을 수가 없어 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빅터는 태연하게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앙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궁금했겠지? 요즘따라 왜 스킨쉽을 하지 않는지?"


앙리는 움찔했다.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을 꿰뚫은 빅터의 질문에 앙리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헛웃음을 내며 대답했다.


"넌 진짜가 아니잖아. 진짜도 아닌게 어디서 진짜 앙리 행세를 하고 내게 사랑을 받으려고 들어?"

"그럼..... 그럼 난 뭐야..."


앙리는 빅터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사랑했던 그의 냉소적인 모습을 도저히 볼 용기가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빅터는 천천히 앙리의 턱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한마디씩 또박또박 대답했다.


"내가 만든 ANDROID. 내가 사랑한 앙리와 나의 연구결과물."


순간 앙리의 머릿속에 쿵하고 뭔가 치는 것만 같았다. 빅터의 멱살을 잡은 앙리의 손이 덜덜 떨렸다. 가장 알고 싶었던 진실이었지만 더 이상 들었다가는 머릿속이 폭발할 것 같았다. 쉽게 말하면 과부하가 될 것 같았다. 갑자기 휘몰아치듯 다가오는 현실에 앙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빅터는 앙리의 손을 떼내며 대답했다.


"난 앙리가 죽은 후에 그를 되살릴 방법을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이제까지 연구했던 죽은 사람의 모든 기억을 칩에 입력하여 안드로이드로 부활시키는 연구를 시행했지. 강한 전력으로 죽은 앙리의 뇌에 있는 기억을 전력으로 전환시키고 PC로 연결하여 그대로 칩에 넣었어. 그리고 앙리가 미리 만들어놓은 특수 I-ROBOT이자 초기 ANDROID에 삽입했지. 물론 그대로 삽입했다가는 앙리가 자신이 살인마로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기억할 것 같아서 조금 조작했지. 연구실에서 퇴근하다가 큰 사고를 당해 쓰러졌다. 상처는 요즘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다 치료했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그럼 꽤 그럴듯하잖아. 그렇게해서 네 전 모델들과 네가 이렇게 존재하게 된거지." 


말이 끝나자마자 빅터는 앙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앙리가 피할 틈도 없이 빅터의 입술이 앙리의 입술과 맞닿았다. 앙리는 화들짝 놀라 발버둥쳤지만 앙리의 턱을 붙잡은 빅터는 억지로 앙리의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빅터의 혀가 들어왔다. 치열을 훝고 도망치는 혀를 감아올리며 빅터의 키스에 앙리는 자신도 모르게 옅은 신음을 흘렸다. 창조주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첫키스는 씁쓸하면서 달콤했다. 그의 키스에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이 풀리고 서서히 눈이 감겼다. 앙리는 칩에 저장된 앙리의 기억으로 인해서인지 아님 제 본능에 인해서인지 모를 열망을 느끼며 빅터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 순간,


달칵.


앙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 커졌다.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빅터는 태연하게 앙리에게서 떨어져 방금전까지 키스하던 입술을 불쾌하단듯이 훔쳤다. 설명을 원하는 앙리의 눈을 바라본 빅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ANDROID를 만들면서 저주받은 사랑이 앙리를 망쳤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앙리를 잃었다는걸 결코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내가 해놓은 장치가 하나 있지. 키스를 하면 리셋버튼이 작동되는 것. 그리고 지금 키스로 네 리셋이 시작된거야."


빅터의 설명에 앙리의 눈동자가 미친듯이 흔들렸다. 안드로이드가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 앙리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을터였다. 앙리는 너무 놀라고 슬퍼 제대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빅터를 붙들던 한쪽 팔이 덜컹하고 힘을 잃고 떨어졌다. 다가오는 최후에 앙리는 창조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왜......"


이유라도 듣고 싶었다. 왜 자신이 이렇게 없어져야 하는지. 제대로된 질문이 아니었지만 그 속뜻을 간파한 빅터는 앙리와 눈을 맞추고 대답했다.


"앙리가 아닌 안드로이드는 필요없어. 이제 작별이야, 크리처(CREATURE)."


빅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앙리를 본따 만든 부드러운 갈색빛 눈동자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저 초기화모드 안드로이드에 지나지않는 크리처의 육신은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모두 잃고 쿵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쳤다. 빅터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크리처를 내려다보았다. 한참동안 크리처를 보던 빅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육신을 끌어안았다. 빅터는 크리처를 안은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너머로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았다. 그 때 한줄기의 노을이 빅터의 집으로 들어왔다. 붉은 노을색을 머금은 빛방울이 빅터의 볼을 타고 흐르며 반짝였다.




[빅터크리처] CODE NAME 'HENRY DU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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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바 제네바


Written by. 玄月




밤을 넘어 깊은 새벽이 된 시간. 구석진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 바 제네바에서 앙리는 혼자 남아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스터는 개인적인 일로 앙리에게 가게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비웠고 금요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일찍 가게를 떠났다. 앙리는 의자와 테이블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잔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앙리는 가게에서 일하는 시간 중에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때는 유일하게 이 때 뿐이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시작하게된 바텐더 아르바이트는 벌써 3년이 넘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냈지만 생활비는 혼자 힘으로 벌어야했기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다가 오게 된 곳이 바 제네바였다. 페이가 꽤 세길래 힘들고 고된 일인가 싶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마스터는 가끔 속을 알 수 없는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긴 했지만 좋은 사람이고 칵테일을 만드는 건 마치 시약만드는 법과 비슷해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잔뜩 취한 손님이나 질 안좋은 손님이 오면 마스터가 제재를 가했기에 난감한 상황을 만드는 손님들도 별로 없었다. 앙리는 잔을 정리하다 문득 바 앞에 있는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오늘 그 손님이 오지를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금요일 자정이 지나고 손님들이 어느정도 빠져나간 시간이 되면 그가 찾아왔다. 기다란 코트를 벗어 옆에 있는 의자에 대충 걸쳐놓고 칵테일을 주문했다. 칵테일을 만들고 있으면 그는  넥타이를 끌어내고 깔끔하게 입은 셔츠단추 두어개를 풀고 칵테일을 만드는 자신을 지켜보았다. 주문하는 칵테일은 손님의 기분에 따라 달랐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보드카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주문했었다. 만들어진 칵테일을 내놓으면 그는 칵테일의 색과 향을 위심히 관찰하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고는 했다. 술에 대한 지식도 많고 입맛도 까다로운 손님이었기에 처음에는 주문을 받을 때 많이 긴장했었다. 잘못 만들면 잔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 다른 손님들에게까지 인정받을정도로 실력이 늘어난 것도 그의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이야기하면 재미있었다. 직업이 의학쪽으로 관련이 있는건지 생명과 의술에 관하여 토론하면 나도 모르게 그의 말에 빠져들어 시간가는 줄을 모를정도였다. 가끔 공학 쪽이야기가 나오면 이해하느라 애를 먹긴 하지만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은 들리지 않는 걸보면 많이 바쁜 모양이었다. 이런 적이 없었던 사람인지라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앙리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잔까지 정리를 마친 앙리는 옷을 갈아입고 가게 열쇠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문에 걸려있는 'OPEN'팻말을 돌리려던 순간 벌컥하고 문이 열렸다.

"이런... 내가 너무 늦은 모양이군."

익숙한 체격과 익숙한 목소리. 앙리를 번쩍 고개를 들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였다. 그에 앙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따라 늦으셨네요."
"지금 주문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겠지?"

앙리는 시계를 보았다. 문을 닫아야하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단골손님에게 서비스로 추가주문 받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앙리는 문가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단골손님 한 분 주문받기에는 괜찮습니다."

앙리의 대답에 빅터는 미소를 지으며 가게에 들어섰다. 앙리는 행여 다른 불청객이 올까 문을 닫고 CLOSE로 팻말을 바꾸고 바를 제외한 나머지 불을 모두 껐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 앞치마를 입으며 말했다.

"원래 옷을 갈아입고 칵테일을 만들어야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가볍게 앞치마만 하겠습니다."
"늦은 내 잘못이니까 신경쓰지 말게."
"주문은 뭘로 해드릴까요?"

빅터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바를 쳤다. 그리고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마티니로 부탁하지."
"예?"

앙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 모습에 빅터을 보며 다시 말했다.

"마티니, 어렵겠나?"

마티니는 간단한 레시피이지만 누가 만들고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칵테일이었다. 가게마다 고유의 마티니를 가지고 있고 바 제네바에도 바 제네바의 마티니가 있었다. 앙리는 마티니 주문이 들어오면 항상 마스터에게 부탁했고 연습으로 몇 번 만들어본게 전부였다. 앙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빅터를 바라보고 대답했다.

"바 제네바의 마티니가 아니어도 괜찮으신가요?"
"상관없네."
"그럼 마티니로 드리겠습니다."

앙리는 진열장에서 술을 골랐다. 생각해보니 빅터에게서 진을 베이스로 하는 주문은 처음받아보는 것이었다. 더욱더 긴장한 앙리는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드라이 진과 드라이 베르무트를 정확한 양에 맞춰 넣고 쉐이킹하고 칵테일잔에 따른 뒤 그린 올리브를 넣었다. 간단해 보이는 레시피와 제조법이었지만 술의 비율과 쉐이킹 몇 번으로도 맛이 바뀌는 마티니인만큼 앙리는 긴장된 상태로 잔을 내놓았다.

"마티니입니다."

빅터는 차분히 잔을 들어 마티니를 보았다. 날카로운 빅터의 눈에 앙리는 절로 손에 땀이 찼다. 그리고 빅터가 마티니를 한 모금 들이켰다. 바에서는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 순간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웃었다? 잘했다면 잘했다는 칭찬, 못했으면 못했다는 잔소리 대신 처음보는 빅터의 반응에 어리둥절해진 앙리는 눈만 멀뚱하게 떴다. 마티니와 앙리를 번갈아보던 빅터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딱 자네같군."
"무슨 말씀 이신지?"
"클래식 마티니. 달지도, 쓰지도 않은 마티니 레시피의 정석, 그대로의 맛이야. 정도가 아니면 가지 않는 자네와 같은 맛이로군."

빅터는 말에 앙리는 더욱 혼돈스러웠다. 그래서 잘만들었다는 건가, 못만들었다는 건가. 감이 잡히지 않아 앙리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빅터는 남은 마티니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빈 잔을 앙리에게 건내며 말을 이었다.

"마티니가 바의 얼굴이라는건 자네도 알지?"
"물론입니다."
"조그마한 배율의 차이로 판가름나는 마티니를 자네는 딱 정석으로 만들어냈어. 자네의 이미지와 똑같아. 길이 아니다싶으면 절대로 다른 곳으로 가지않는 그 고집. 자네랑 이야기할 때마다 느낀 거였지만 자네의 그 모습이 술에까지 들어있는군. 자네도 제법이야. 고작 3년밖에 안됐으면서 술에 자기 자신을 넣을 줄도 알고."

빅터의 칭찬에 앙리는 환하게 웃었다. 그런 앙리의 모습을 보며 빅터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앙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빅터가 입을 열었다.

"추가 주문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그럼 마티니 한 잔 더 부탁하지."

빅터의 추가 주문에 앙리는 기쁜 마음으로 마티니의 배율을 맞췄다. 마치 합격을 받은 듯한 시험생의 마음같았다. 엄격한 교수님 앞에서 이론을 증명한 것 같은 짜릿한 기분에 앙리는 한껏 들떴다.

"아, 그리고."

빅터의 말에 앙리는 술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빅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티니 만들고나서 어스퀘이크도 부탁하지."
"어스퀘이크말인가요?"

빅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는 일단 마티니를 한 잔 만들어 빅터에게 건내고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어스퀘이크라... 빅터는 평소에 주문을 할 때면 무조건 한 잔씩만 주문했다. 칵테일을 다 마시지 않고 다른 칵테일을 마시는 건  칵테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평소에 하지 않은 방식이었는데 오늘따라 이상했다. 한 번도 주문하지 않은 진베이스 칵테일에 한 번에 두 잔씩 주문하고, 게다가 평소보다 훨씬 늦은 방문시간까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단 받은 주문부터 내야했다. 이 역시 진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었다. 드라이 진과 위스키, 압센트를 넣고 쉐이킹하여 만들어진 어스퀘이크를 빅터의 앞에 내밀었다.

"어스퀘이크 나왔습니다."
"고맙군."
"원래, 한 번에 두 잔씩 주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헌데 오늘은 왜?"
"내가 마시려는 게 아닌데?"
"예?"
"이건 내가 자네에게 사는 거니까."

빅터는 앙리가 내민 잔을 다시 앙리에게 주었다. 앙리는 그 잔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걸... 사신다고요?"
"응."
"저에게....?"
"그렇네. 무슨 문제라도?"
"어... 그게...."

어스퀘이크는 47도나 되는 무시무시한 도수를 자랑하는 술이었다. 술이 약한 사람이 먹으면 눈 앞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릴 정도라서 어스퀘이크(Earthquake)라고 불릴정도면 말다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겠지만 바텐더로 일하는 앙리의 주량은 혀를 찰정도로 작았다. 마스터에게서 칵테일을 배울 때 그렇게 주량이 작아서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들을 정도였다. 가끔 이렇게 손님들이 자신들이 사는 거라면서 칵테일을 건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영업중이라던가 마스터가 보고있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잔은 안드냐는 듯이 쳐다보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앙리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영업 시간에는...."
"어차피 정식 영업시간 아니지 않나?"
"마시면 마스터께 혼이...."
"마스터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줬다고 하면 그러려니 할테니까."

빅터가 잔을 들어올렸다. 앙리는 정말 이 상황을 어떻게 피해가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움직이지 않는 손을 억지로 움직여 잔을 들어올렸다. 그제서야 빅터는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올려 마티니를 마셨다. 빅터가 칵테일을 마실 때 슬쩍 버리려던 앙리의 계획은 마티니를 마시면서도 계속 앙리에게 꽂혀있는 빅터의 눈길에 무산이 되어버렸다. 마티니를 반쯤 마신 빅터가 말했다.

"안 마실텐가? 그럼 내가 꽤 민망해지는데..."

마시라는 무언의 압박에 앙리는 미칠 것 같았다. 독배를 든 느낌이 이런 것일까. 앙리는 자신을 향해 있는 빅터의 눈빛에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었다. 결국 앙리는 눈을 질끈 감고 술을 들이켰다. 식도를 태우는 강한 도수와 알코올에 앙리는 눈이 번쩍 뜨였다. 하필 어스퀘이크 양은 많기는 왜 이리 많은 건지.... 앙리는 꾸역꾸역 술을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마자막 한 모금까지 마시고 앙리는 천천히 잔을 내렸다. 입 안이 타는 것 같고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다행히 구토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취기가 확 돌았다. 얼굴에서 열이 화끈하고 느껴졌고 몸에서 천천히 힘이 빠졌다. 그러나 앞에는 빅터가 있었다. 손님 앞에 추태를 보일 수없다는 일념에 앙리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폈다.

"앙리, 괜찮나?"

걱정스럽게 묻는 빅터의 말에 앙리는 괜찮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한 쪽 다리의 힘이 풀썩 빠져버렸다. 간신히 바를 잡아 넘어질뻔한 위기를 이겨냈지만 서서히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앙리, 자네 취했는가보군."

빅터가 앙리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듬직한 빅터의 품에 앙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기댔다.

"죄....송....합니다.....이..렇...게 추태를...."
"쉬이... 괜찮아, 앙리. 이제 집에 가야지."

아, 맞다, 집.... 앙리는 끊어지려는 정신줄을 붙잡으려고 했다. 바를 다시 정리하고, 불도 끄고 문도 잠궈야하는데... 하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게다가 빅터의 품이 너무나 따뜻했다. 이대로 기대어서 잠들고 싶었다. 그 때 앙리의 폰이 울렸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 전화하는 사람이라면 마스터일 것이었다. 앙리는 눈을 꿈뻑거리면서 폰을 찾았다. 그러나 앙리의 폰은 이미 빅터의 손에 넘어간지 오래였다.

"여보세요."

빅터가 받으면 마스터가 놀랄텐데... 천천히 감기는 눈에 앙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받기 힘들정도로 술기운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간간히 마스터와 빅터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왜....전화 받아...]
"......취했어."
[야 임마! 애한테.....]
"뒷정리는 내가......"
[.......뭐하는 짓거리......]
"오늘만 빌릴게........ 형."
[미친 놈아! 그만......]

형이라니.... 누구를 말하는거지? 맑은 소리와 함께 전화가 꺼졌다. 그러나 다시 울리는 폰에 빅터는 받지도 않고 아예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앙리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조각이 되기에는 너무 부분부분 떠다녔다. 앙리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 모습을 본 빅터는 깊게 미소를 지었다.

"깼나, 앙리?"
"누..구....."
"아, 마스터."
"정리....마무리....."

어눌하게 말하는 앙리의 모습이 귀여워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제 딴에 뒷마무리를 지어야한다고 팔을 허우적거리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빅터는 앙리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졸리면 자, 앙리."
".....집에...."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고 가자, 응?"
"우리....집?"
"그래, 우리집....."
"안 돼... 폐..... 끼치면...."
"괜찮아, 앙리. 우리 집에서 자자, 응?"
"안되는데..."
"괜찮아."
"안 돼..."
"부담갖지 마, 앙리."

귓가에 나긋나긋하게 속삭이는 빅터의 설득에 앙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빅터는 깊게 미소를 짓고 앙리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3년이나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큰 형이 운영하는 바를 갔더니 처음보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한껏 긴장해서 칵테일을 내놓는데 나름 열심히 하려는 것도 보이고 손재주도 있어보여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형은 그 모습을 보더니 답지 않게 왜 그렇게 잘해주냐 물었고 그에 그저 호기심이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단순했던 감정은 호기심을 넘어갔다. 대화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차분함과 따스함, 그리고 환하게 웃는 미소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마다 그를 보기 위해 찾아갔다. 그는 그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이목을 끄는 사람이었고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한 사람이었다. 종종 질나쁜 놈들이 속셈이 보이는 레이디킬러 칵테일을 시켜 앙리에게 전해주는 일이 있었다. 그 때마다 형을 찔러 그 술잔을 막았고 형에게 알바생 간수 잘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형은 그저 그런갑다하면서 넘어갔겠지만 난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행여 누가 그를 채가면 어떻게 하나, 그가 누굴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일주일이 근심과 걱정이었고 금요일에 앙리가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어주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가 혼자 있는게 불안하다면 혼자가 아니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내가 그의 옆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을 노렸다. 형이 자리를 비우고 앙리 혼자 가게를 봐야하는 오늘을. 일부러 손님이 없을 폐장시간에 맞춰가 그에게 도수 강한 술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술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그는 이제 제 손에 들어왔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제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빅터는 천천히 앙리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때 앙리가 빅터의 품을 파고들었다. 빅터의 심장이 두근거렸고 빅터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앙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빅터는 앙리를 부축했다. 그리고 짐과 열쇠를 챙겨 앙리를 차로 데려갔다. 안전벨트까지 매어주고 나서 빅터는 바 제네바의 문을 잠그고 운전석에 올라앉았다. 옆에 얌전히 자고 있는 앙리의 모습을 바라보던 빅터는 앙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차를 몰았다 . 자신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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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메이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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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손

프랑켄 2015. 1. 26. 22:17
[빅터앙리]손
 
 
Written by. 玄月
 
 
 
추위를 머금은 바람이 부는 겨울날. 새하얀 눈은 백성들의 짚지붕은 물론 높디높은 궁궐의 기와지붕까지 덮었다. 구중궁궐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자전 역시 기와지붕부터 정자까지 모두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않고 조용한 세자전 안에 누군가 발을 들였다. 연노란색의 의관에 눈처럼 하얀 앞치마를 한 청년이 손에 쟁반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행여 쟁반 위에 눈이나 이물질이 들어갈까 하얀 천까지 올려놓고 조심조심 세자전에 올라갔다. 그는 세자전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콜록거리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고 기침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방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저하, 소신 앙리이옵니다."

들라. 낮은 목소리에 앙리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빅터는 여전히 기침을 하며 상체를 들었다. 그러자 앙리는 화들짝 놀라 쟁반을 탁자에 두고 빅터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저하! 몸도 안좋으신 분이! 어서 누우십쇼."
"이정도는 괜찮네."
"괜찮으시긴요! 얼굴이 사색이 되신채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믿을 것 같습니까?"
"계속 누워있다간 내가 시체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앉아있겠네."

쓴웃음을 짓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앙리는 한숨을 푹 쉬고 대답했다.

"그럼... 조금만 이십니다?"
"알겠네, 알겠어."

앙리는 걱정스럽게 빅터를 바라보다 탁자 위로 눈을 돌렸다. 쟁반 위에 있는 하얀 천을 걷어내자 약사발이 보였다. 솜씨좋게 우린 탕약은 미세한 약재 찌끄러기 하나 없을 정도로 정갈하게 걸러져 하얀 사발 안에 담겨져 있었다. 앙리는 조심스럽게 약사발을 빅터에게 건냈다.

"탕약입니다. 식기 전에 드십쇼."
"필요없다니까 왜또..."
"아직도 기침을 그리 심하게 하시면서 필요없으시다니요. 어서 드십쇼."

단호한 표정으로 약사발을 내미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약사발을 받아들였다. 천천히 탕약을 들이키려는 순간 혀끝에 닿는 쓴 맛에 빅터는 얼굴을 찡그리고 급히사발을 내려놓았다.

"너무 쓰잖나."
"쓴 약이 몸에 더 좋은 겁니다, 세자 저하."
"그래도 이건 좀..."
"어린아이도 아니시면서 먹는 것 가지고 투정부리시는 거 아닙니다."

빅터의 투정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결국 앙리가 보는 눈앞에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약을 들이켰다. 그제서야 앙리는 환하게 웃으며 빅터에게서 사발을 받았다. 입 안에 맴도는 쓴 맛에 한껏 인상을 찌푸린 빅터의 입에 작은 다과를 넣어주고 나서야 앙리는 의자를 끌고 와 빅터의 옆에 편안하게 앉았다.

"잘 하셨습니다."
"이런 일로 칭찬하지 마. 오히려 기분 나빠."
"의관으로서 드리는 칭찬입니다."
"그게 더 기분 나빠."

투털거리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고아보여 빅터는 멍하니 앙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잠시의 평화는 빅터의 기침소리에 깨져버렸다. 또다시 콜록거리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저하!"
"난...괜찮아, 쿨럭!"
"어서 누우십쇼!"
"괜찮다고..."

빅터는 뭐라 변명해보려고 했지만 보기 드물게 화난 표정인 앙리의 모습에 하던 말조차 못이어하고 결국 침대 위에 다시 누웠다. 그제서야 앙리는 표정을 풀고 걱정스럽게 이불을 빅터의 목까지 끌어당겨 올려주고 말했다.

 


"이번 감기가 왜 이리 심하신지... 이러다 옥체가 더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지, 뭐."
"제 의술의 실력이 미약해서 저하께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자네가 있으니까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있는거지. 자네라도 없었으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걸세."
빅터가 키득거리며 말했지만 앙리는 여전히 표정을 피지 못했다. 빅터를 바라보던 앙리는 결국 쟁반을 챙겼다.

"어디 가나?"
"좀 더 효력이 좋은 약을 챙겨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가지마, 앙리."

빅터는 급히 상체를 들고 앙리의 손목을 잡았다. 빅터는 앙리의 손을 잡고 깜짝 놀랐다. 손이 너무나 차가웠다. 이에 빅터는 제가 아픈 것도 잊고 상체를 들었다.

"자네 손이 왜 이리 차갑나?"
"아, 별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사람 손이 이렇게 차가운데!"
"정말 별 거 아닙니다. 놔주십쇼. 옥체가 더 안좋아지시기 전에 약을 챙겨오겠습니다."
"의관이라는 사람이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못챙기는데 누굴 챙겨!"

씩씩거리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어찌할 바를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앙리의 손을 잡고있는 빅터의 눈에 탁자 위에 놓여있는 쟁반과 약사발이 보였다. 차가운 손과 약사발. 그에 빅터의 눈이 반짝였다. 빅터는 앙리의 손을 억지로 끌어 침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약따위 필요 없네, 앙리. 그냥 내 옆에 있어주게."
"저하..."
"보나마나 내가 아까 마신 약을 다린다고 손이 이 모양이 되었겠지. 사람들 눈이 있으니 약방 안에서도 못하고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찬바람 맞아가면서 약을 다린거 아닌가."

빅터의 말에 앙리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작은 것 하나만 보여도 큰 그림을 그리는 빅터의 능력에 다시 놀라면서 한편으로 이런 것 하나 제대로 숨기지 못한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빅터는 그런 앙리의 모습을 바라보다 앙리의 다른 한 손까지 잡아올려 제 뺨에 대었다.

"저하!"

앙리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려 했지만 빅터는 더욱 힘을 주고 앙리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 따뜻한 온기에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저하, 어서 놔주십쇼! 찬기에 몸 상하시면 어쩌시려고!"
"그냥 열내릴려고 물수건 대신 자네 손 올렸다고 생각해."
"이렇게 열을 내리는 법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무엇보다 일개 의관이 감히 저하의 옥체에 손을..."
"누가 일개 의관인가?"
"예?"
"자네는 내 직속 의관일세. 한 나라의 세자의 의관을 어느 누가 일개라고 표현하나? 게다가 의관이 모시는 사람의 열을 내릴려고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손을 얼려와서 직접 열을 내려주는데 나라에서 충신 칭호를 내려도 모자를 판국인데 누가 왕족의 몸에 손을 댔다고 손가락질하겠나." 

황송하여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조차 못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빅터는 말을 이었다.

"난 자네가 내 옆에만 있어도 병이 낫는 것 같아.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주게."
"저하..."
"대답은?"
"명...받들겠습니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그제서야 앙리의 손을 놔주었다. 빅터는 침상에 기대 앙리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게."
"예. 오늘은 내의원에서 특별히 어의대감이 오셔서 수업해주셨습니다. 오늘 어의대감이 수업해주신 내용은..."

그렇게 오늘도  봄을 닮은 앙리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조용한 세자전에 온기를 주며 울려퍼졌다.




-------




소쩍새가 우는 봄날의 밤. 앙리는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필사하고 있었다. 이곳은 대국인만큼 서가의 규모도 훨씬 크고 희귀한 책 또한 많이 있었다. 기나긴 시간을 하랄없이 보내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 앙리는 서가에서 여러 권의 책을 빌려와 천천히 읽고 필사해갔다. 방 한켠에 쌓여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후일에 돌아가면 유용하게 쓰일 내용들이 많아 앙리는 볼 때마다 뿌듯해지는 한편 마음이 서늘해졌다. 또다시 심장을 옥죄이는 생각에 앙리는 잠시 붓을 내려놓았다. 언제쯤이면 돌아갈 수 있을까... 그 분을 믿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약속을 반드실 지키실 분이었지만 단지 그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앙리는 손을 들어 천천히 제 입술을 쓸었다. 복사꽃나무 아래에서 언젠가 반드시 만날거라고 서로의 입술로 주고받은 언약. 그 언약 하나만이 자신이 이곳에서 제정신으로 버티고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앙리가 한참 과거를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문이 쾅하고 열리면서 앙리의 회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뭘하고 있었나, 앙리?"

문으로 시선을 돌리니 문에 기대어있는 빅터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약간 흐트러진 옷차림에 앙리는 의문이 들었지만 제 얼굴 위에 유리가면을 씌우고 허리숙여 인사했다.

앙리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향을 맡기만해도 취할 것 같은 독한 술냄새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앙리는 제 얼굴 위에 유리가면을 씌우고 허리숙여 인사했다.

"필사 중이었습니다, 폐하."

앙리의 말을 들은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는 천천히 탁자로 다가오더니 책과 필사한 것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또 필사 중이신가? 꽤나 열심히 하는군. 이런 걸해서 뭐에 쓸려고 하나?"
"의관인만큼 새로운 의학지식을 익히기 위해 필사 중이었습니다."
"의관이라..."

빅터는 앙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앙리는 움찔하고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앙리의 발걸음은 다리에 닿는 침상에 멈췄다. 그와 동시에 빅터는 눈을 빛내며 앙리의 양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앙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빅터는 앙리와 눈을 맞추며 빅터는 말을 이었다.

"과거에는 의관일지 몰라도 지금은 내 비()지."

팔을 잡고 있는 빅터의 악력이 세지자 앙리는 옅게 고통어린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빅터는 아랑곳하지않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소국에서나 의관이었어. 그것도 일개 소국의 태자의 개인 의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대국의 비지. 그것도 황제가 총애하며 마음만 먹는다면 귀비까지도 될 수 있는 그런 비란 말이야."

형형하게 빛나는 빅터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앙리는 손을 들어 빅터의 가슴을 밀며 말했다.

"그만하십쇼. 지금 취하셨습니다."
"하, 또 거부하는건가!"

빅터는 제 가슴에 올려진 앙리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앙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손으로 내게 교태어린 손짓만 한다면 자넨 뭐든 가질 수 있어. 높은 직책과 금은보화는 물론, 소국에서 탐내는 땅마저 자네의 소유가 될 수 있어."


빅터는 앙리의 손을 가져가 앙리의 손바닥에 새겨진 손금을 혀로 핥았다. 예상치 못한 빅터의 행동에 앙리는 깜짝 놀라 팔을 빼려고 했지만 빅터는 손을 잡고 있는 힘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손바닥은 항상 날 밀어내는데만 쓰고."


그리고 그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그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 손가락은 절대 날 잡지 않아. 허구헌 날 붓이나 침이나 잡고 있고 잠자리에서조차 날 잡지 않고 이불보만 쥐고 있는 미운 손가락이란 말이야.”

 

빅터는 앙리의 손에 깍지를 끼고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 손은 단 한 번도 스스로 날 잡아본 적이 없어. 항상 이렇게 내가 먼저 쥐어야만 잡히는 손이지. 내가 한 번 손짓만 하면 모두가 내 발밑에 원하는 걸 바쳤는데 자네는 절대 안 그래. 내가 끊임없이 나를 봐달라고 한 번이라도 손길을 내달라고 애원하고 윽박질러도 절대 주지 않아.

 

앙리는 밀어내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울 것 같은 그의 표정에 앙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빅터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를 아득하고 갈고는 앙리의 턱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 눈 역시 날 바라보고 있지 않아. 항상 땅바닥이나 아니면 창 밖 너머를 바라보기만 해.”

 

빅터는 대뜸 앙리를 침상 위로 밀어버렸다. 힘없이 밀린 앙리가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자 빅터는 그의 상체를 타올랐다. 그리고 앙리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억센 힘에 옷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찢어지자 앙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앙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빅터를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마십쇼, 폐하!”

그래, 이래야만 자네는 날 똑바로 쳐다봐. 결국 날 이렇게 만든 건 자네야, 앙리. 자네가 날 이렇게 몰아세운거야.”

 

앙리는 항변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건 빅터의 강압적인 입맞춤뿐이었다. 빅터를 밀어내려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힘에 빅터는 밀릴 생각도 없었고 그에 앙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창밖에서 소쩍새의 울음소리 들려왔다. 소국에서 행복했던 시절, 그 분께서 소쩍새의 전설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다른 이에게 시집보내고 상사병에 죽은 청년이 소쩍새가 되었노라고. 그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제 울음소리 같이 느껴져 앙리는 결국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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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 ㄹㅋ님의 리퀘

 

             +

 

트친 ㅂㄹ 님과 ㅇㄴ 님이 요즘 공동으로 연성하시는 썰 베이스로 연성해보았습니다.~~ㅋㅋㅋ

 

 

구도는  윗글은 ㄹ빅ㅇ앙, 밑에 글이 ㄱ빅ㅇ앙~

 

ㅂㄹ님이랑 ㅇㄴ님 완전 영업킹이셔요ㄷㄷㄷㄷㄷ

두분의 열정적인 영업에 본의아니게 덕통사고88ㅁ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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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rten by. 玄月

 

 


작은 불빛마저 없는 어두운 뒷골목. 한 남자가 흥얼거리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보기 드문 샛노란 머리결과 여자만큼 진한 화장을 보면 그가 누구인지는 뒷골목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미친개 자크. 그가 뒷골목에 등장하는 순간 그의 주변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자신의 부와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일말의 자비도 없이 타인의 고통과 눈물을 뽑아내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은 뒷골목을 넘어 뒷골목을 드나드는 높으신 귀족나리들에게도 조용조용하게 퍼져있을 정도였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미친개처럼 세상의 어떤 상식과 법칙도 그에게는 아무런 제어장치가 되지 않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자크는 연신 제 손에 들린 약병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속에는 마약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보통 마약이 아닌 단 한 번만 주사하더라도 심장이 뛸 때마다 눈 앞에 별이 보이고 혈관을 타고 짜릿한 쾌감이 올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었다. 마약의 너무 강력한 속성에 국가에서는 약의 제조 및 거래를 금지했지만 미친개 자크에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마약쟁이에게 시험삼아 맞아본 약은 자크의 마음을 휘저었고 거액을 들여 약을 샀다. 벌써 몇 번이나 약을 사들였던 자크는 처벌보다는 이 약이 없어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정도로 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약을 산 건 기분좋은 일이지만 솔직히 값이 너무 비쌌다. 에바가 값을 알게된다면 등짝을 후려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만큼 큰 값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에 거래하던 마약쟁이보다는 하수인 놈이 만든 좀 더 싼 약을 샀지만 그래도 원체 값이 비싸다보니 거기서 거기였다. 차라리 제조법을 알아내서 내가 직접 만드는게 낫지. 자크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자크는 멈칫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밤이 늦은 만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급히 품을 뒤적이더니 작은 주사기를 하나 꺼내들었다. 기분도 안좋고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혼자 조용히 약기운을 음미하는데는 적격이었다. 주사기를 따라 올라오는 붉은 핏빛 약물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자크는 소독조차 하지 않고 제 팔뚝에 주사기를 꽂았다. 다 쓴 주사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자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깨졌다. 자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꽤 깨끗해보이는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고 제 옆에 약병을 두었다. 그리고 이제 온 몸을 휘감을 약이 줄 쾌락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왔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자크는 눈을 반짝였다. 이제 혈관을 타고 약이 몸 안에 퍼지겠......

"컥!!"

자크는 갑자기 밭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급히 제 목을 잡았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이 숨쉬기가 힘들었다. 침조차 삼킬수가 없어 입가에서 타액이 흘렀다. 심장박동소리가 귀에도 들릴정도로 크게 뛰고 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자크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처럼 적정량의 약물을 주사했는데 어째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거지? 설마 그 약쟁이가 가짜약을 판거야? 설마.... 약쟁이 주제에 날 속인건가? 이 개자..... 자크의 생각이 이어질 틈도 없이 잔떨림은 더욱 심해져 몸의 중심마저 잡을 수 없었다. 그에 자크는 쿵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몸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눈이 뒤집힌 자크의 시야에는 이제 검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아다. 이에 자크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난 죽는건가? 죽을 수 없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없어! 아직도 하고 싶은게 많은데... 아직.... 난 더... 살고 싶다고....

"이봐요!"

그 때, 누군가 자크를 흔들었다. 그는 자크를 똑바로 눕히더니 자크의 뺨을 때렸다. 그는 연신 정신차리라는 말을 외쳤고 그의 말과 동시에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남자의 외침과 달리 애석하게도 자크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


머리가 깨질 것같은 두통에 자크는 불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온몸이 두들겨맞은 것마냥 쿡쿡 쑤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자크는 제 시야에 들어오는 천장에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눈만 굴려 제 주변을 살펴보았다.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투명한 수액이 링게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입 안이 말라 쩍쩍 갈라지는 제 목소리가 듣기 싫어 자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힘겹게 상체를 들었다. 기본적인 가구만 있는 단촐한 방에 홀로 앉아있는게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모자와 자켓은 가지런히 접혀져 탁자 위에 놓여져 있었고 지팡이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였던 수액은 팔에 꽂혀있는 주사기를 통해 천천히 자크의 몸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자크는 눈알을 굴리며 기억을 잃기 전을 떠올렸다. 분명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했고 제 뺨을 때리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외쳤던 기억은 있었다. 그러나 눈이 뒤집혔기에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를 모르겠다. 자크는 안돌아가는 머리를 굴려 그 근방에 살고 있는 지인들을 생각해보았지만 제게 이런 친절을 베풀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크는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하긴 어떤 놈이 미친개를 구할 생각을 하겠어. 자크는 침대헤드에 제 몸을 기댔다. 그리고 머릿속에 열이 차올랐다. 이곳을 나가자마자 그 약쟁이를 요절내고 말겠어. 감히 내게 가짜를 팔아? 어쩐지 제 값에 안받더라했어. 자크는 이를 부득 갈았다. 어떻게 요절을 낼지 고민하는데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셨군요."

꽤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크는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갈색머리를 곱게 묶고 편안한 옷차람의 남자가 대야와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걸 탁자에 올려놓더니 익숙하게 의자를 빼내 침대 옆에 끌고와 앉았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넌 뭐야?"
"네?"
"넌 뭐냐고?"

날이선 자크의 목소리에 남자는 당황했는지 눈동자를 깜빡이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의사입니다. 저는 앙리 뒤프레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앙리라고 부르세요."
"의사?"

자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앙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밝은 갈색빛 머리를 곱게 묶고있었고 사람좋게 웃고 있는 모습은 꽤 미남형이었다. 의사치고는 몸이 날렵하고 훤칠해서 의사라기 보다는 어느 귀족집의 자제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앙리는 수액을 체크하며 말을 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나실뻔 했습니다. 사람이 없는데서 약물중독으로 쓰러지면 몸에 약물이 퍼져 해독하기가 힘든데 운이 좋으셨어요."
"그냥 냅두고 가지 왠 참견이야?"

자크의 날카로운 물음에 앙리는 물그러미 자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대 옆 서랍에서 혈압측정기를 꺼내들면서 대답했다.

"의사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지나가나요? 저는 차별없이 환자를 치료하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는데."
"아이고, 의인나셨네. 그런 쓸모없는 선서는 왜 하셨나 몰라?"
"의사가 되려면 해야해는 선서니까요. 그런데 저도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만..."

비아냥거리는 자크의 모습에도 앙리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슬슬 열이 받는 건 자크 쪽이었다. 이렇게 비꼬는데도 차분하기 그지 없는 앙리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비꼬면 열에 아홉은 성질을 내면서 판단력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자크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요리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러나 자크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데다가 오히려 자크가 밀릴정도로 태연하게 맞받아치는 앙리의 모습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자크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앙리는 자크의 눈 앞에 약병 하나를 들이밀었다.

"이 약, 어디서 나셨습니까?"

자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급히 앙리에게서 약병을 빼앗아 급히 제 등 뒤로 숨겼다. 그러나 앙리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숨기셔봤자 소용없습니다. 이미 그 약병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뭐야!"

자크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자크가 머리를 부여잡자 앙리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자크는 그 손을 쳐내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니가 뭔데 그 약을 없애!"
"어차피 국가에서 금지한 약물 아닙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제대로된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의 성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 약은 제가 다 써버렸습니다."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다 써버렸다고 답한 앙리의 모습에 자크는 이를 갈 뿐이었다. 어차피 가짜약이어서 쓸 수 없는데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제 목숨을 살리는데 다 써버렸다고 하니 뭐라할 수가 없었다. 그 약에 쏟아부은 비용이 아까웠지만 어차피 약쟁이를 족치고나면 다시 들어올 비용이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때 순간 앙리의 대답 중에서 뭔가가 자크의 머리를 치고 갔다. 자크는 앙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약의 성분을 알아냈다고?"
"네."
"어떻게?"
"어떻게.....라니요? 그냥 이리저리 약물실험을 하며 알아냈습니다."

오호라, 이것 봐라? 자크의 눈이 반짝였다. 새삼 의사놈이 다시 보였다. 이놈은 그냥 의사가 아니었다. 바로 돈이였다! 약의 성분을 알아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약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값도 비싼데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하던 찰나 이런 복덩어리가 굴러올 줄이야! 자크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제 안에 감춰둔 뱀의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이봐."
"네?"
"너, 나랑 동업 한 번 해볼래?"
"동업이라니요?"

앙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자크는 눈꼬리를 가늘게 휘며 말을 대답했다.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그저 넌 내가 원하는걸 만들어주면 되는거고 넌 그 댓가를 받는거고."
".....만들다니요?"
"물론 재료도 네가 말만 하면 내가 모두 대줄게. 넌 그저 만들기만 하면 해도 앉아서 떼돈을 버는 거지. 어때?"

자크는 앙리를 쳐다보았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좋은 조건이라 어느 누구도 이 제안을 거절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앙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제안하시는 약이란.... 지금 등 뒤에 숨기신 약을 의미하시는 겁니까?"
"아~ 잊어버려, 이건 가짜야. 이걸 만드는 게 아니고, 진짜배기는 따로 있으니까 그걸 만들어 달라는 거야."
"그러니까, 국가에서 허가하지 않은 불법 마약을 제게 만들어달라는 의미시잖습니까."
"맞아."
".....지금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차가운 대답에 자크는 그제서야 앙리의 표정을 제대로 보았다. 자크의 어떤 독설에도 미소를 보이던 앙리의 표정은 너무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그에 자크의 눈에서 이채가 맴돌았다. 어쭈, 이것 봐라? 그저 실실 웃을 줄만 아는 바보인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네.

"이봐, 현실을 생각하라고. 이런 곳에서 살면서 공부까지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높으신 귀족나리들 주치의도 아니고, 우리같은 천민들을 상대로 진료따위해봤자 무슨 돈을 벌겠어. 안그래?"
"물론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 벌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너도 그 양심이란 것이 찔려서 그래? 그런 양심같은거 잠깐 잊으면 되는거야. 한 번 잊는게 어려운 거지, 그 다음부터는 쉬워."
"죄송하지만, 그 양심과 도덕보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없습니다."

자크가 뭐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앙리가 빨랐다. 앙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크 앞에 그의 자켓과 모자를 두고 팔에 꽂혀있는 링게를 뽑고 문 옆에 섰다.

"그런 제안을 계속 하실거면 몸이 다 나으신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직설적인 축객령에 자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저게 내 말을 무시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귀하신 몸에 상처를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지팡이를 들고 움직이지 않는 얼굴근육을 움직여 억지미소를 지어보이며 앙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래, 그래. 뭐, 날 살려준 것도 있으니 며칠 시간을 줄게.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그러나 앙리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의 눈 앞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당장이라도 눈 앞에 닫힌 문을 발로 차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억누르며 격투장으로 돌아갔다. 격투장에 도착하자마자 자크는 에바에게 말도 없이 밤새 어딜 갔었냐고 등짝을 후려맞았고 아프다는 말은 핑계대지 말라는 에바의 고성에 묻혔다.


-


"주인님, 누가 왔습니다."

자크는 눈살을 찌푸리고 제 시종을 쳐다보았다. 안그래도 어젯밤 내내 에바에게 시달려 만사가 귀찮고 짜증나있던 찰나 갑자기 들이 닥친 불청객이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누구?"
"의사입니다. 그.... 이름이..... 앙리 뒤프레라는 뎁쇼."
"앙리 뒤프레?!"

예상치 못했던 이름에 자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이고르를 휙하고 지나쳤다. 그럼 그렇지, 제까짓 놈이 뻐팅겨봤자 얼마나 뻐팅기겠어. 격투장 입구에는 하인, 하녀들이 제 주인을 찾아온 호기로운 청년을 보느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러나 자크의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들리자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양 옆으로 몸을 피했다. 이런 곳은 처음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앙리의 모습이 보였다. 자크는 얼굴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그에게 다가갔다.

"어서와~ 어서와~ 그래, 잘 생각했어. 이렇게 빨리오리라곤 생각치도 못했는데. 상관없어. 나야 빨리 오면 좋지."

앙리는 제 앞에 나타나자마자 제 할 말만 늘어놓는 자크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앙리로써는 불쾌한 느낌을 주는 이곳을 당장이라도 이곳을 나가고 싶은 심정인데 이런 앙리의 모습이 제게 좋은 모습만 보이는 자크에게 이 모습이 보일리가 만무했다. 한참을 혼자 신나서 말하는 자크의 모습에 앙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뭔가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뭐?"

앙리는 들고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약병 하나를 꺼내 자크에게 내밀었다. 자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약통을 받아들었다.

"이거 약 아니야?"
"해독제입니다."
"해독제?"
"어제 쓰신 약은 왠만큼 해독됐지만 아직 미량의 독성이 남아있을 겁니다. 오늘 그걸 드리기 위해 온겁니다."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고 앙리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자크는 얼굴을 찌푸리고 거칠게 앙리의 팔을 잡아 끌었다.

"내가 생각해보라는 제안은?"
"어제 거절했잖습니까."
"내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잖아. 기한 주겠다고."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겁니다."

앙리는 흔들림없는 곧은 눈으로 자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 팔을 잡고 있는 자크의 손을 떼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격투장을 떠났다. 자크는 그저 가만히 앙리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하인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새끼는 죽여버린다."

자크의 서슬퍼런 명령에 하인들은 모두 움찔거리며 제자리에 섰다. 다른 하인들과 달리 이고르만이 자크의 지팡이를 들고 졸래졸래 그의 뒤에 섰다. 숨막히는 침묵만이 그들 사이를 맴돌았다. 하인들은 모두 제발 이곳을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순간 자크의 손이 움직였다. 이고르의 손에 들린 제 지팡이를 들고 휘리릭 돌아선 자크는 격투장 입구로 걸어갔다. 그제서야 하인들은 한 두명씩 소리없는 한숨을 쉬었다.

"아아악!!"

그 떄, 귓가를 파고드는 비명소리에 하인들은 화들짝 놀라 소리의 발원지를 쳐다보았다. 반쯤 눈이 뒤집힌 채 살기를 있는대로 내보이며 자크는 제 지팡이로 옆에 있는 아무 죄도 없는 하인을 미친듯이 패고 있었다. 무자비한 폭력에 하인들은 제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자크는 하인들이 뭔 반응을 보이던 상관없었다. 감히 의사주제에 나를 물먹여? 네까짓게 뭔데? 은인이면 다야? 하, 그딴 은인이란 호칭 따위 개나 줘버리지. 내가 그렇게 숙이고 들어갔으면 적당히 튕기고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될 것을. 도덕? 양심? 이 세상에 그딴 건 필요없어! 앙리의 거절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자크에게 화풀이 상대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였다. 단지 앙리와 비슷한 갈색빛 머리가 보이자 힘겹게 참아왔던 화가 폭팔하여 아무 죄없는 하인을 그저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인이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할정도로 두들겨 패고나서야 자크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크는 화사하게 웃으며 이고르를 바라보았다.

"이고르~ 이 더러운 거 치워."
"예에."
"아, 그리고 그 의사나부랭이 다시 오면 곧바로 내 방으로 데려오고. 착한 내가 한 번 더 기회주지, 뭐."

자크는 총총거리며 격투장 안으로 들어가고 이고르는 피투성이가 된 하인을 질질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인들은 그제서야 참고 있던 숨을 몰아 쉬었다.


-


자크는 며칠 째 앙리를 기다렸다. 그런 인재를 구하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또한 자크에게는 처리해야할 일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에게 약을 팔았던 마약쟁이를 찾아가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영문도 모른채 자크에게 두들겨맞고 억지로 약을 주사당한 마약쟁이는 고통 속에서 눈조차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데려간 하인들을 시켜 마약쟁이의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린 자크는 가벼운 마음으로 앙리를 기다렸다. 그렇게 거절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만큼 웃긴게 어딨겠어. 그 콧대높은 의사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 생각해줘야지. 하루이틀정도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니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왜 안오지? 그정도면 나도 많이 양보한건데. 다시 하루가 지나니 짜증 속에서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 제안이 어때서? 아니, 그 약을 만드는 게 어때서? 내가 제깟 놈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 그렇게나 숙여줬건만. 빌어먹을 의사놈. 얼굴은 계집처럼 생겨먹은 주제에 고집은 쇠고집이네. 또 다시 시간이 흐르고나니 자크에게 남아있는 건 오직 분노 뿐이었다. 이 새끼가 나를 물먹여? 분노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찰나 한 가지 생각이 자크의 머리를 치고 갔다. 어차피 내가 필요한 건 약의 제조법뿐, 그 새끼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약을 제조하는 건 내가 하면 그만이야. 그럼 이렇게 기다려줄 필요는 없지. 그 새끼를 끌고 오자. 실험하는데 몸뚱이는 필요없지. 분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패고나서 손만 움직이게 시켜서 약의 성분을 알아내게 하면 되지. 그 다음에는 필요없으니까..... 죽여버릴까? 순간 자크의 눈이 반짝였다. 아니.... 그렇게 쉽게 죽이기에는 아깝지... 내가 당한게 있는데 그렇게 쉽게 보내주기는 아쉽지... 어떻게 해버릴까... 제가 알아낸 제조법으로 만든 약을 주사시켜버릴까? 자크는 키득거렸다. 쾌락에 허우적거리면서 제 몸도 가누기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것도 재밌겠네. 그러다가 안아달라고 조르면 어쩌나? 한참을 키득거리던 자크의 눈이 욕망으로 짙게 물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보니 얼굴도 꽤 여리여리하게 생겼잖아. 몸도 나긋나긋해보이는게 가지고 놀기 좋아보이고. 그 좋은 목소리로 교성을 지르면 얼마나 야살스러울까. 제 몸을 휘감는 쾌락에 못이겨 바닥을 기다가 울먹이면서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제발 이 몸 좀 어떻게 해달라고 애원한다면... 자크는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딱딱해졌고 그의 상상에 정점을 찍는 순간 온몸이 짜릿했다. 자크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죽이는 건 보류하지. 일단 가지고 놀고나서 생각해봐야겠어. 당장이라도 앙리를 끌고와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에 자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고르~"

그의 부름에 충실한 시종은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자크의 앞에 섰다. 자크는 화사하게 웃으며 명령했다.

"오늘밤에 그 의사놈 데리러갈거야. 힘좋은 놈 두어명만 준비시켜."

이고르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방을 나갔다. 자크는 의자에 털썩 앉아 옆에 놓인 독한 럼주를 들어올렸다. 앙리 뒤프레... 내가 제안을 거절한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해주마. 앞으로 나와 함께할 재밌는 밤을 위하여 건배~ 자크는 럼주를 들이키고 칼날같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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ㄲㄴ님의 리퀘 '자크앙리로 자크에게마저 착한 앙리와 못된 생각하는 자크'로 연성해보았습니다만.....

 

 

나가죽어야될듯...ㅠㅠㅠㅠ

자크앙리가 연결고리가 워낙 없다보니까 넘 어려워요ㅠㅠㅠㅠ

뭐... 창의력부족을 탓해야지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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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메이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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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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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ts앙리] Secret

2014. 12. 2. 23:3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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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ts앙리] Secret

프랑켄 2014. 12. 2. 23:31

때는 들판에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던 어느 봄날. 나는 의사 뒤프레 가문의 첫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다정한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세상 그 어느 무엇도 부럽지 않을만큼 행복한 나날을 지냈다. 그러나 어느 날 평화로운 마을에 갑작스럽게 전염병이 닥쳐왔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저명한 의사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심히 사람들을 치료하셨지만 환자들은 물론 부모님마저 흙으로 돌아가셨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셨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전염병은 빠른 속도로 마을사람들을 휩쓸었고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나라 전체를 뒤집었던 전염병이 그 기세를 수그리기 시작할 때, 빈민을 구원하던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셨다. 까마귀만이 울고있는 마을의 처참한 모습을 둘러보던 수녀님 한 분이 집구석에서 숨죽여 울고있던 나를 발견하셨다. 그분들은 며칠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피골이 상접해있지만 마을에서 유일하게 전염병의 마수에서 피해간 나를 거두어주셨다. 그렇게 나는 고향도 부모님도 모두 잃어버렸다. 

 


[빅터ts앙리]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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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주의


Wrirten by. 玄月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따라온 나는 운좋게 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어갔다. 부모님을 잃은 슬픔에 몸에 손도 못대게 하고 입을 굳게 닫아버린 채 고아원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돌아다니는 내가 귀찮기도 하셨을텐데 그 분들은 나를 사랑으로 감싸안았다. 매일같이 안아주고 보듬어주신 그분들의 정성에 입은 트이지 않았지만 서서히 고아원 아이들과 조금씩 조금씩 어울려갔다. 어느날 장을 보러가시는 수녀님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고아원 밖을 나갔다. 작고 소박했던 마을과 달리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시내에 위치한 장터의 모습을 구경하며 수녀님의 치맛단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한 친구가 나를 톡톡 쳤다. 친구는 저기서 마술을 한다며 같이 가자며 소근거렸다. 눈을 반짝이며 조르는 친구의 모습에 나는 결국 치맛단을 놓고 그 아이의 손을 잡아버렸다. 친구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마술사 앞으로 데려갔다. 마술사를 둘러싼 사람들 속을 파고들어 맨앞에 서게된 나와 친구는 아무런 방해없이 마술을 볼 수 있었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붉게 입술을 바른 마술사는 카드를 숨겼다가 다른 관객의 옷 속에서 찾아냈고 소매 속에서 장미를, 모자 속에서 비둘기를 꺼냈다. 난생처음본 마술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열심히 박수를 치는데 마술사는 이 쇼의 하이라이트라면서 여자아이를 데려왔다. 마술사는 상자 속에 아이를 넣고 자물쇠로 잠궜다. 그리고 날카로운 칼들을 꺼내들더니 거침없이 상자를 찔렀다. 잔인한 마술에 나는 숨을 쉴 수 없었고 주변에서 헉하는 소리와 함께 잠잠해졌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는 마술사는 기분나쁘게 씩하고 웃더니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서 여자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고 관객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마술사와 여자아이가 인사하고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내미는 주머니에 동전을 몇푼씩 넣어주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우리를 향해 주머니를 내밀었다. 동전 한 푼없는 우리는 어찌할지 몰라 멀뚱히 여자아이를 보았다. 여자아이는 우리를 훝어보더니 미소를 확 찌푸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돈도 없으면서 마술을 봤냐며 여자아이는 날카롭게 마술사를 불렀다. 마술사는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지만 여자아이의 설명에 급격히 표정이 굳어지면서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들어본 적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욕설에 덜덜 떨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눈빛이 이상했다. 한참 화를 내더니 그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씩하고 웃었다. 예쁜아이네? 너, 돈벌이가 꽤 될 것 같아. 그의 눈이 탐욕으로 휩싸인 건 순식간이었고 본능적으로 나는 도망쳐야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도망치려고 뒤돌아선 내 손목이 사내에게 잡혔다. 마치 뱀에게 잡힌 것처럼 내 손목을 휘감는 차가운 그의 손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시장을 울리는 내 비명소리에 주변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았고 어디선가 급하게 수녀님들이 달려오셨다. 수녀장님이 사내의 손을 떼어냈고 다른 수녀님들이 나와 친구를 품에 안으셨다. 수녀님의 품 안에 안기자 그제서야 드는 안도감에 나는 그 품에 펑펑 울었다. 사내는 골이 났는지 씩씩거리며 수녀장님께 뭐라 항의를 했지만 수녀장님은 차분하게 그에게 설명했다. 예상치못한 수녀장님의 등장과 마을사람들의 이목에 사내는 나를 노려보다 포기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그러나 수녀님의 품 안에 안겨있던 난 그 때 똑똑히 보았다. 예쁘장한 애새낀데 아쉽네... 계집아이라면 더 좋았을텐데... 잔혹한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는 모습에 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남자로 살아가겠노라고. 그리고 그 날 저녁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말문이 트인 내 손을 꼭 잡고 이름을 물어보셨고 그에 나는 대답했다. '앙리 뒤프레'라고. 그렇게 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앙리에뜨 뒤프레'라는 이름을 버렸다.

몇 년 뒤 나는 다른 아이들과 공부를 시작했다. 또래에 비해 빨리 글자를 익히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신부님은 내게 성당의 일을 맡기셨다. 성당일을 하면서 가끔 어려운 고급책도 읽고 있는 내 모습에 신부님은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다. 아버지처럼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내 말에 신부님은 힘든 일도 많고 포기하고픈 날도 많을텐데 이겨낼 수 있겠냐고 하셨다.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신부님은 그 다음날부터 나를 학교에 보내주셨다. 재정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학교에 보내주신 은혜를 갚기위해 죽기살기로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내 성적은 자연스럽게 수석을 차지하였고 특별장학생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였지만 기숙사가 있는 학교였기에 나는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날이 가고 계절이 지나면서 나와 동기들은 얼굴에 붙어있던 젖살이 빠지면서 키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서로의 모습이 익숙해질 무렵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목소리도 굵어지고 몸에 근육이 붙어가는 동기들과 다르게 팔다리가 가늘고 가슴이 커지는 내 모습에 그제서야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건 동기의 말이었다. 뒤프레는 갈수록 고와지는 것 같아, 마치 여자처럼... 넌지시 던진 동기의 말에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애써 웃으며 키가 커서 그런가보다며 되도않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날밤 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었다. 어릴 때는 바지만 입으면 그저 예쁘장한 남자애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런 식이면 필시 조만간 여자란 사실이 들통날 것임이 분명했다. 공포감에 휩싸여있던 내 눈에 띈 것은 다름아닌 하얀 이불보였다. 얇디얇은 이불보를 본 순간 해결책이 떠올랐다. 휴일날 외출증을 얻어 급히 마을로 내려간 나는 곧장 병원으로 향하였다. 붕대를 하나가득 사고 약을 종류별로 사왔다. 그날부터 나는 붕대로 가슴을 꽁꽁 묶고 매끈한 목을 가리기 위해 아무리 더운 날씨여도 카라끝까지 단추를 잠궜다. 가는 목소리를 숨길 방법을 찾지못해 차선책으로 말수를 아끼며 기숙사방을 벗어나는 일을 삼가했다. 갑자기 몸을 사리는 내 모습에 동기들이 가끔 내 방을 찾아왔다. 그럼 미리 사둔 약들을 꺼내보이며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혼자 지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오직 책과 공부만 파고들며 그저 하루하루 들키지 않도록 해달라 기도를 할 뿐이었다. 세상과 단절되어서 산지 몇 년 후 나는 뛰어난 성적으로 추천서를 받고 잉골슈타트대학을 입학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의과대학을 입학했지만 나의 고민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만 갔다. 완전한 여성의 몸을 지니게 된 나는 사람의 신체구조에 능통한 교수님들 앞에서 단지 가슴만 가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결국 시장에서 커다란 흰 천을 사와 팔다리는 물론 몸까지 말아 어떻게든 남자의 신체구조와 비슷해보이려고 했다. 토론과 발표가 주로 이루어지는 수업을 위해 아무도 없는 약제실에 몰래 들어가 실험과 연구를 통해 가느다란 내 목소리를 감출 수 있는 약을 만들어 복용했다. 철저한 준비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앙리 뒤프레로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믿더라도 나 스스로는 절대 주의를 흐트리지 않았다. 쌓아올리는건 어렵지만 무너지는건 한순간이었다. 하루하루 들킬거라는 불안감 속에서 위태롭기 그지 없는 외줄타기를 하며 학교 생활을 하며 논문을 썼다. 내 논문이 발표되자 의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의학계의 이단아라고 부르며 나를 욕하기는 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자의 몸으로 대학까지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른 판국에  욕 좀 들었다고 상처받을만큼 나약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내 꿈을 무사히 이루기만 한다면 누가 뭐라한들 상관없었다. 졸업을 하고난 뒤 몇몇 병원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 중 한 군데에서 내 접합능력을 높게 사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눈물날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자유롭게 내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나의 비밀을 숨기느라 가슴 졸이며 살았던 숨막힌 과거들이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 기쁜 일은 얼마안가 산산조각이 났다. 병원에 일을 나가기 하루 전날, 포탄소리가 전 유럽에 울렸고 내 앞으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전쟁터에서는 하루하루는 이제껏 겪었던 날들의 몇 십배로 힘들었다. 매일매일 부상병들이 천막에 들이닥쳤고 포탄과 총알이 진지에까지 난무하여 목숨을 부지하는게 기적인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버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건 군대의 특성상 개인활동이 금지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의무실에서 상주하는 의무병인 만큼 내 몸을 감출 수 있는 재료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딜가든 무엇을 하든 동료들과 함께해야한다는 수치인 내 숨통을 조여왔다. 단순히 들키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전쟁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부대에 있는 모든 이들은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만일 이런 곳에서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당장 혀깨물고 죽는게 나으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내 할일만 했었다. 부상병을 치료하고 기도를 올리는 것. 전쟁이란 큰 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이런거 뿐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내 상관의 심보를 건드렸는지 중위님은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저 아무리 심하게 다차 사람이라도 그들을 치료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이 내 일이건만 그는 일일이 내가 치료하는 부상병들을 보며 하나하나 핀잔을 늘어놓으며 허튼 짓거리 그만하라고 할 뿐이었다. 그의 무례한 말에 일일이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그저 평소처럼 내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내가 치료하던 부상자를 총으로 쐈다. 순간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그에게 달려들어 살릴 수 있었는데 왜 죽였냐고 소리쳤다. 그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며 차갑게 말하며 간첩죄라는 말도 안되는 죄목을 붙이고 내게 총을 겨누었다. 그 총을 보는 순간 허탈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죽기 위해서 그 고생을 하며 살았을까... 아버지는 소신껏 사람을 치료하다 돌아가셨건만 나는 이 전쟁의 광기에 휘말려 내 소신조차 지키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건가....

"앙리 뒤프레!!"

그 때 천막을 펄럭이며 당당한 발걸음에 거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게 그와의 첫만남이었다.

표정처럼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이 남자는 내 의견따위는 상관없이 나를 그의 연구실로 데려왔다. 제1사단 연구소를 들어간 순간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현장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군인들이 기괴하게 생긴 기계에 한 시체를 넣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안이 벙벙한 찰나 그는 내 앞에 내 논문을 들이밀었다. '자네의 논문, 굉장히 흥미롭더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연구에 대하여 내게 설명했고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신께서 행하시는 생명창조를 인간이 행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못미더워하고 이곳을 나가고 싶어하는 날 눈치챘는지 그는 생명창조의 이론을 떠들다가 다른 제안을 해왔다.
'내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리는가 보군. 그럼 현실적인 이야기 하나 해줄까? 들리는 말로 의하면 자네는 의무실 막사에서 잘 나가지도 않는다며? 동료들과 어울리지도 그렇다고 의무병으로써 눈에 띄는 전적도 없고. 어차피 그런 최전방에 있어봤어 자네는 조만간 의무실에서 억지로 끌려나가 총알받이가 될거야. 아, 총알받이가 뭐야, 여기를 나가자마자 즉결처분될테지. 여기에서 내 연구를 도와준다면 자네의 죄목을 깨끗이 없어주지. 또, 자네의 프라이버시정도는 지켜줄 요량이 있어. 이정도면 자네의 구미에 충족되리라고 생각하는데?'
날 내려다보며 냉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했지만 그가 제시한 조건은 현재 상황에서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도 않았고 이 전쟁터에서 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원했다. 이곳이라면 사병들이 함부로 돌아다니지도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면 훨씬 편한 마음으로 내 비밀을 지키지 않을까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여기에 남고자하는 마음이 있다는 의미이겠지... 결국 나는 그렇게 내게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았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앙리?"

순간 나는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잘다듬어진 정원이 들어왔고 내 앞에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나는 찻잔이 놓여져있었다. 눈앞을 보니 빅터가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오늘 날씨가 좋다고 빅터랑 함께 정원에서 티타임을 보내는 중이었지.

"아,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옛날 생각하고 있었어."
"옛날 생각? 어떤 옛날 생각을 하길래 내가 불러도 몰라?"
"미안.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나?"

가볍게 웃으며 차를 한모금 들이마셨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둘러쌓여 잠시 옛날 생각을 한다는 것이 꽤 길어졌는지 모양이었다. 나를 보던 빅터는 불쑥 쿠키를 더 가져오겠다며 직접 몸을 일으켰다. 그에 갔다오라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생각해보니 이런 관계가 된 것도 우스웠다. 그렇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는 제1사단으로 거처를 옮겼다. 거처를 옮기자마자 빅터는 날 실험실로 끌고 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생명창조라는 허무맹랑한 연구에 반쯤 냉소적이었던 나는 그의 설명에 내 생각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철저하하고 세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론이 정말 현실로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제1사단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의 연구에 푹빠져 연구소의 어느 조수들보다 훨씬 열성적인 조수가 되었다.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처음에는 단순히 접합만 시키던 빅터는 어느새 자신의 연구에 나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그와 가까워지면서 보이지 않았던 면들이 보였다. 빅터는 생각보다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신을 믿는 사람치고는 가끔씩 무신론자에 버금가는 발언을 하여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기는 했지만 그의 지적 수준은 상당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다보면 내가 몰랐던 새로운 지식들을 알게되었고 내가 몰랐던 지식들에 대하여 물어보면 이것도 모르냐고 독설을 날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한 번은 이런 내가 귀찮지 않냐고 물었지만 모른 상태에서 연구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설명해주는게 낫다고 대답했다. 그 덕분에 나는 처음 접하는 연구를 수월하게 해 나갈 수 있었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성취감에 더욱 연구에 빠져들었다. 또한 그는 의외로 세심한 사람이었다. 거처를 옮기면서 가져온 붕대들이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에 연구실에 있는 붕대들을 여러 차례 가져갔었다. 그 많은 붕대를 어디에 쓰냐고 빅터가 투덜거렸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쓸 데가 있다고만 했다. 그러자 그 다음날 그는 어디선가 붕대를 하나가득 가져와 내게 안겨주었다. 머리끈이 낡아져 내 머리카락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 풀려 방해가 되고 있던 찰나 빅터는 어디서 주워왔다며 머리끈를 내게 건냈다. 그 이후에도 조그마한 잔기침이라도 하면 어디선가 약을 구해와 아무런 설명없이 그저 먹으라며 내게 주었고 그의 방에 있는 책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날 밤에 내 방에 그 책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나를 챙겨주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거렸지만 그의 배려에 갈수록 마음이 설렜다. 몰랐던 그의 면모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다보니 내 생활의 절반 이상이 그에 대한 생각 뿐이었고 그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미쳤다고 생각하고 밤마다 기도를 올리며 이런 잡념들이 빠져나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그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연구할 때 집중하는 모습, 부드러우면서 나긋한 목소리, 내 손을 감싸는 따뜻한 그의 손. 가끔씩 보이는 그의 미소.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았고 그가 나를 향해 웃음지을 때는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밤마다 빅터와 함께 지낸 시간을 되새기면서 행복해하는 내 모습에 나는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노라고 아니, 그를 연모하고 있노라고. 결국 이런 내 마음은 종전 후 자신을 따라 같이 가지 않겠냐는 빅터의 손을 잡게 만들었다. 처음 빅터의 마을에 갔을 때 마을에서 유독 신경질적인 그의 모습과 그를 향한 적대감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엘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의 성격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또한 나만큼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 때 나는 결심했다. 그의 곁에서 그의 친우로써 안식처가 되어주겠노라고. 더 많은 건 필요없었다. 그의 곁에 남기만 하면 충분했다. 결심을 하는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의 비밀을 그가 알게된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순간 등 뒤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와 함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절대 들키지 말아야하는 내 비밀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잘 숨기면 된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그와 성에서 생활하는데 내 다독임은 일주일도 채가지 않아 깨지게 되었다. 빅터는 내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한 번은 옷을 사주겠다며 날 옷집으로 끌고가더니 나를 위아래로 훝어보고 큰 옷을 사겠다는 내 고집을 꺾고 결국 옷 중에서 가장 작은 옷을 사주었었고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붕대를 많이 쓰는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목소리를 변조하기 위한 약을 만들기 위해 시장에 내려갈려고 하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가야겠노라 고집을 부렸고 내 약조제 목록을 훔쳐보고는 성분을 일일이 분석하고는 그런 약을 어디에 쓸려는지 캐물었다. 게다가 심지어 그는 생명창조를 연구하며 의사보다 훨씬 사람의 신체구조에 대하여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가끔 연구를 하다보면 그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했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소리로 자네는 내 생각보다 훨씬 작네라는 둥, 이제까지 본 신체구조 중에서 자네가 제일 작은 것 같다는 둥 말했다. 그 때마다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았고 나는 더 이상 그와 어떠한 신체접촉을 할 수 없었다. 눈으로 봐도 저렇게 눈치챈다면 직접 만져본다면 눈치챌 일이 백이면 백이었다. 손에 잡혀있는 찻잔이 덜덜 떨렸다. 그가 내 비밀을 알게된다면 그 이후의 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앙리, 쿠키 가져왔어."

뒤에서 들려온 빅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애써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 탁자 밑에 숨겼다. 그는 내 앞에 털썩 앉더니 연구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나는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두 손을 꼭 잡고 조용히 신에게 빌었다. 신이여,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제발... 그에게 제 비밀을 들키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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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일지에 적힌 어제까지의 연구결과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혹시 연구에 어떤 실수가 있지 않았나,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한다면 좀더 효율적인지 검토하기 위해 든 일지였지만 어느 순간 눈은 일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앙리 뒤프레가 있었다. 처음에는 시체를 접합하는 손을 향해 시선이 가있었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앙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항상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있지만 시체를 접합할 때의 앙리의 눈빛은 누구보다 날카로웠다.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그 눈빛이 저런 눈빛이었다. 그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않는 강한 신념으로 가득찬 눈빛. 처음에는 단지 그의 접합술을 이용하기 위해 그를 찾았지만 실제로 그를 마주하는 순간 그 눈빛에 순식간에 빠져버렸다.

"빅터, 접합 끝냈어. 한번 봐봐."

첫만남을 회상하던 중 맑은 미성이 들려왔다. 앙리가 벌써 접합을 마치고 수술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체를 살펴보니 역시 팔과 다리가 깔끔하게 접합되어 있었다.

"굳이 볼 필요가 뭐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가 접합한건데."
"행여 잘못 접합할까봐 날 보던 것 아니었나?"

그의 지적에 흠칫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바라보고 있던 이유는 헛다리 짚었지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는걸 앙리가 눈치챈 것 같았다.

"설마. 이제 내 실험접합은 자네 아니면 아무도 못 해."
"거참, 영광이네."

피식하고 가볍게 웃는 앙리의 모습이 너무 고아보여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또다시 마음 한구석에서 의심들이 치말어올랐다. 처음 봤을 때는 필요에 의해서 였다. 그의 접합술을 얻기 위해 즉결처분직전인 앙리를 빼내왔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우정이었다. 내 연구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친구이기에 그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의 깊은 눈빛, 괴짜인 나마저 감싸안는 포근함, 따뜻한 손길까지 모든 것에 의미를 담고 나만을 위하여  존재하기를 바라는 순간 느꼈다. 이것은 사랑이노라고. 앙리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깨달았을 때 미치는 줄 알았다. 왜 앙리가 내 눈에 띄었는가, 왜 앙리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왜 앙리가 여자가 아닐까... 이런 고민은 꿈자리까지 사납게 만들었다. 어느날 밤 꿈 속에서 앙리는 곱디고운 여성의 몸으로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를 짐승처럼 탐했다. 앙리의 달콤한 입술을 훔치고 부드러운 젖가슴을 핥고 깨물었다. 탐스러운 엉덩이를 끌어당겨 그의 안에 나를 묻고 미친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한껏 높아진 교성과 나를 바라보는 욕정에 젖은 눈빛에 절정을 맞이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었다. 그날 이후 친우를 향한 내 더러운 욕망이 무서워 앙리를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나 며칠지나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앙리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성에서 머물면서 변변한 옷이 없어 낡아빠진 사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마음에 안들어 억지로 그를 옷집으로 끌고 갔었다. 체격에 비해 옷이 흐느적거리는데도 사이즈가 큰 옷을 고르려던 그의 이상한 고집에 억지로 제 사이즈에 맞는 옷을 골라주었다. 군복을 입고 있었을 때와 달리 생각보다 훨씬 왜소한 그의 체격에 살짝 놀랐지만 그저 힘들게 자랐기에 그런 건 줄 알았다. 그 때는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었다. 남자치고는 그의 체격은 터무니없이 작았었다. 성별에 따라 작을수 있는 체격은 한정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실험을 위해 이런저런 골격을 많이 다루어보았지만 앙리의 골격은 남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 때부터 작게 움을 튼 의심이 자라기 시작했다. 앙리는 어떤 상황에서 뭘하든 침착하고 차분했지만 유독 몸에 조금만 손이 닿으면 마치 닿지 말아야 하는게 닿은 것마냥 화들짝 놀라 사색이 되곤 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터에 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가끔 손이 닿고 몸이 닿아도 그는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는 제 몸에 닿는 것에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웃으며 귀신이라도 봤냐고 놀렸지만 매번 민감하게 반응하는 앙리의 모습이 이상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했다. 갑자기 왜 저럴까, 내가 닿는게 놀랄정도로 싫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결국 이런 상황이 며칠이나 지속되자 화를 참지 못하고 폭팔했다. 또다시 놀라는 그의 모습에 성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내가 그렇게 무섭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에게 따졌다. 더 이상 그에 대한 내 욕망을 참을 수없어 결국 진정하라며 나를 달래는 그의 손목을 잡아끌고 그를 덥석 껴안았다. 예상대로 앙리는 화들짝 놀라며 몸부림을 쳤지만 한 품에 갇히는 작은 몸체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얼마간 몸부림치던 앙리는 포기했는지 힘을 뺐다. 그에 편안한 마음으로 크리바트가 꽁꽁 묶여 있는 목에 코를 파묻었다. 기분좋은 체향이 후각을 자극했고 나는 천천히 그의 몸을 더듬었다. 그의 팔과 허리는 예상보다 훨씬 작았었다. 어떻게 이런 체구가 있을 수 있는지 고민하던 찰나 퍽소리가 나게 앙리가 나를 밀어냈다. 앙리는 붉어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더니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제대로 화가난 앙리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는 건 그와 같이 지낸지 얼마지나지 않아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가 더 화나기 전에 지금 당장 따라 나가 그를 붙잡고 미안하다고 사과해야하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에 남아있는 촉감과 코끝을 맴도는 향에 머릿속이 정지해버렸고 아차하고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있었다. 결국 한순간의 유혹에 사로잡혀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린 나는 몇날 며칠을 앙리에게 빌었고 유혹에 넘어간 댓가는 앙리의 몸에 손끝하나 대지 못하는 금지령이었다. 그 때 이후 앙리가 눈에 불을 키고 있었지만 한 번 맛본 선악과는 너무나 달콤했다. 그리고 직접 만져본 그의 체격과 그의 이상하리만치 민감한 반응은 나의 의심을 키웠다. 가끔 그의 경계가 옅어질 때 슬쩍 그의 몸에 손을 댔었다. 결정적인 건 그가 술기운으로 인해 비틀거렸을 때였다. 내 생일이라는 거짓말을 빌미로 삼아 그에게 술을 권했고 그가 눈치채지 않게 그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독주를 연거푸마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쉬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술에 완전히 취해 통제를 잃은 몸은 혼자서의 힘으로는 절대 방으로 돌아갈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이르러 있었다. 술에 취해 정신도 몽롱해진 그를 천천히 끌어당겨 품에 안아 올렸다. 갑자기 허공에 뜨게되면서 살짝 정신을 차린 앙리는 내려달라고 발버둥을 쳤지만 걷지도 못하면서 어찌 돌아갈 셈이었냐고 타박을 주었다. 결국 지쳤는지 앙리는 힘을 빼고 내게 몸을 맡겼다. 예상대로 앙리의 몸은 작은 몸체만큼 가벼웠었다. 예전에 유학시절 몇 번 만나본 여자들도 이정도로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를 침대에 눕히고 방을 나오면서 나는 확신했다. 앙리에겐 뭔가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이 의문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오늘은 마침 룽게도 없었다. 오늘 밤, 나는 앙리의 비밀을 밝혀낼 것이다.


-


개운하게 씻고온 앙리에뜨는 가볍게 머리를 털며 욕실을 나왔다. 아무 생각없이 방 안을 둘러보던 앙리에뜨는 탁자 위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잠시 내 방에 와 주게. V.F]

짧은 문장이 전부인 쪽지를 내려놓고 앙리에뜨는 서랍장 안에 넣어둔 붕대를 꺼내들었다. 처음에 씻고 난 뒤 이런 쪽지가 놓여있을 때는 얼마나 놀랐을지 빅터는 몰랐을 것이었다. 행여 내가 무슨 흔적이라도 남겨놓았을까 방 안을 살폈고 빅터에게 가는 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밤새도록 연구에 대하여 토론하는 그의 모습에 어느 순간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는 그러려니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붕대의 매듭을 확인한 뒤 간단한 셔츠를 입고 빅터의 방으로 향하였다. 오늘은 무슨 일로 쪽지를 남겼는지 이리저리 고민힌다보니 어느 새 빅터의 방문 앞에 서있었다.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방문을 두드렸다.

"빅터, 날세. 안에 있나?"
"왔나?"

빅터의 대답 대신 문이 열리고 그가 서있었다. 앙리에뜨가 천천히 방 안에 들어서자 빅터는 문을 닫고 그녀를 소파로 안내했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티세트에 앙리에뜨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빅터를 바라보았다.

"빅터, 이게 왠 티세트야? 자네는 밤에 다과를 안먹잖나."
"오늘은 할 말이 꽤 많을 것 같아서 준비했네."
"룽게도 없는데 자네가 이런거 준비할 줄도 알았나?"
"내가 룽게가 없다고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는 아니야. 자, 일단 한 잔 받게."

빅터는 찻잔을 앙리에뜨에게 건넸다. 아무 생각없이 찻잔을 받아든 앙리에뜨는 빅터에게 고맙다고 미소를 지어보이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빅터는 그런 앙리에뜨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토론을 위한 다과는 순전히 핑계였다. 이제까지의 증거들을 모두 통합해보면 나오는 결과는 단 하나였다. 그 가설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앙리는 몸에 손도 못대게 하고 있으니 남은 방법은 손을 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 방법은 도박에 가까웠다. 만일 가설이 틀린거였다면 앙리가 불같이 화낼 일이었다. 아마 앙리가 성을 떠난다고 선포한다면 그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리스크가 큰 도박이었지만 남은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빅터는 긴장을 감추고 천천히 이야기의 서두를 꺼내들었다. 이제까지의 실험과정들부터 시작해서 쓰이는 약품과 접합방법까지 하나하나 집어가며 문제점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앙리에뜨는 그 한계와 해결방안에 대하여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고안해본 새로운 접합방법과 시체 유지방법에 대하여 빅터의 의견을 물었고 빅터는 그 방법들에 대하여 적용되는 이론들을 다시 계산하며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토론에 완전히 푹 빠진 앙리에뜨는 빅터가 내민 수식이 적혀있는 종이를 전체적으로 읽어보며 중간중간에 비어있는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다. 앙리에뜨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빅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앙리, 차 한잔 더 줄까?"
"응, 그래 주겠나?"

빅터는 내밀어진 찻잔 가득히 차를 따랐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차가 담긴 찻잔을 들어 그녀의 옆에 섰다. 앙리에뜨는 종이를 보다 문득 옆에서 진 그림자에 빅터를 올려다 보았다. 그냥 테이블에 올려주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들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눈앞에 불쑥 내밀어진 찻잔에 앙리에뜨의 질문은 목너머로 넘어가버렸다.

"자, 여기."
"아, 이렇게까지 가져다줄 필요가 없는데... 고마워, 빅터."

앙리에뜨가 양손으로 찻잔을 잡으려던 순간, 빅터는 손을 놓아버렸다.

"앗!"
"앙리!"

떨어진 찻잔은 앙리에뜨의 셔츠에 찻물을 흘리고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깨졌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앙리에뜨는 행여 화상이라도 입을까 급히 셔츠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앙리에뜨는 제 셔츠를 잡는 또다른 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앙리, 화상입기 전에 벗어!"
"빅터?!"

당장 벗으라고 으르렁대는 빅터의 행동에 앙리에뜨는 거칠게 빅터의 손을 떼냈다.

"싫어!"
"앙리!"

앙리에뜨는 본능적으로 양팔로 제 가슴을 가렸다. 절대 벗으면 안된다... 여기서 벗겨지면 모든 게 끝이야... 공포심이 앙리에뜨의 사고를 정지했다. 단지 들켜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이 전부였다. 앙리에뜨가 셔츠를 잡고 버티자 빅터는 앙리에뜨의 팔목을 잡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완전 사색이 되어 몸을 뒤로 물렸지만 등 뒤에 닿는 쇼파시트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빅터는 이제 오기가 생겼다. 사실 그 찻잔은 약간 미지근한 정도였기에 처음 닿을 때만 뜨겁다고 느낄 뿐이었지 실은 전혀 뜨겁지 않은 상태였다. 너무 뜨거우면 행여 화상이라도 입을까 시간을 계산하고 쏟은 것이었다. 그렇게 차라도 흘리면 앙리에게 셔츠를 빌려주겠다는 핑계로 옷을 벗겨볼 생각이었다. 남자라면 그저 웃으며 갈아입겠지만 이렇게 기를 쓰고 막고 있다면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이였다.

"당장 벗어, 앙리!"
"빅터, 그만 둬!"
"벗어!"
"싫어!"

앙리에뜨는 있는 힘껏 셔츠를 잡고 버텼다. 그러나 이제 작심하고 힘을 쓰기 시작하는 빅터를 이길리 만무 했다. 천천히 가슴을 가리던 팔이 펼쳐지면서 제가 쥐고 있던 옷이 늘어났다. 그리고 빅터는 그 찰나를 놓지지 않고 셔츠를 잡아뜯었다.

"안 돼!!!"

찢어진 셔츠자락과 함께 앙리에뜨의 비명같은 단말마도 하늘하늘 사라졌다. 앙리에뜨는 부들부들 떨며 눈을 감았다. 빅터는 제 앞에 보이는 것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빅터의 눈을 사로잡은 새하얗고 매끄러운 목은 빅터의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정도로 가녀렸다 . 목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니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홀린 듯 그 매듭을 잡자 앙리에뜨는 급히 숨을 들이키고 빅터의 손을 잡아 저지시켰다. 이미 들통났지만 더 이상 빅터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빅터는 앙리에뜨의 손을 무시하고 매듭을 풀어 붕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에 앙리에뜨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제 다 끝났다. 친우라고 믿었던 이가 알고보니 여자였다는 사실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분명 화를 낼 터. 하나뿐인 친구로 받아들이고 우정을 나눴지만 자신을 속였다며 화를 낼테지. 당장 성을 나가라해도 뭐라 할 수가 없지만... 이대로 떠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내 앙리에뜨는 포기했다. 나보다 상처받았고 세상을 향해 높디높은 벽을 쌓아온 사람이었는데 유일하게 허락해준 내 존재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미 나에게서 너무나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저 조용히 이곳을 떠나는게 둘에게 이득이었다. 앙리에뜨는 빅터를 바라보며 떨어지지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빅터.... 설명할게...  이게, 읍!"

갑자기 자신에게 입을 맞추는 빅터의 행동에 앙리에뜨는 눈만 휘둥그레졌다. 이게 어떻게된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자신의 혀를 휘감는 빅터의 농밀한 키스에 앙리에뜨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빅터는 눈 앞에 보이는 여성의 가슴에 자신의 친우 앙리가 사실 여자라는 걸 알게된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앙리 뒤프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꼭꼭 숨겨놓은 이유는 다름아닌 앙리가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도덕적인 청년 앙리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연모라는걸 알게된다면 실망하고 곁을 떠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숨기고 있었지만 여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에 빅터는 제 친우의 허락을 구하는 것도 잊고 그저 제 감정과 본능에 따라 다짜고짜 입을 맞추었다. 꿈 속에서 맛보았던 입술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콤한 입술에 빅터는 숨을 쉬기 위해 그의 입술을 피하려는 앙리에뜨를 집요하게 따라가며 키스했다. 앙리에뜨를 품에 안고 벌떡 일어선 빅터는 급히 옆에 있는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침대에 몸을 눕히고나서야 빅터는 입술을 뗐다. 붉어진 얼굴로 호흡을 가다듬는 앙리에뜨의 모습을 보던 빅터는 그대로 앙리에뜨의 목에 얼굴을 내렸다. 매끈한 목선을 혀로 핥아올리고 남자라면 아담의 사과가 있어야할 자리를 살짝 깨물어 붉은 키스자국을 남겼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손으로 앙리에뜨의 셔츠자락을 벗겨 침대밑으로 떨어뜨렸다. 등뒤로 서늘한 침대보가 느껴지고 그제서야 상의가 완전히 벗겨졌다는걸 깨달은 앙리에뜨는 화들짝 놀라 양팔로 가슴을 가렸다. 빅터는 피식하고 웃더니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앙리, 괜찮아. 겁내지 마."
"빅터... 사실 난..."
"쉬...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알아."

차분히 앙리에뜨의 말을 멈춘 빅터는 앙리에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한 빅터의 손길에 긴장으로 뻣뻣했던 몸이 풀렸다. 한결 풀어진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에뜨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떠난다는 말은 하지 마. 난 이제 너없이는 못사니까."
"빅터..."
"여자여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네가 여자여서 다행이야, 앙리."
"어째서?"

의문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앙리에뜨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보여 빅터는 깊게 웃으며 앙리에뜨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앙리에뜨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널 사랑하고 있어, 앙리."

빅터의 진심어린 고백에 앙리에뜨의 뺨이 붉어졌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빅터에게 들릴것처럼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에 앙리에뜨는 그의 고백에 대답할 수 없었다. 빅터는 앙리에뜨의 뺨과 목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만두고 싶으면 지금 말해. 싫다는 너를 안을만큼 나쁜 놈은 아니니까."

앙리에뜨는 빅터를 바라보았다. 빅터는 애정담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깊은 곳에는 욕망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을 배려하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싫다고 말한다면 필시 여기서 그만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고싶지 않았다. 빅터를 밀어내기에는 빅터의 눈빛이, 쓰다듬는 손길이, 안겨있는 품이 너무 따뜻했다. 앙리에뜨는 천천히 빅터의 목에 팔을 걸어 그를 끌어당겼다.

"안아줘, 빅터."

 

 

-

 

 


"으음....."

아직은 어스름한 새벽, 미약한 새벽햇살이 빅터의 방을 파고들었다. 앙리에뜨는 얕은 신음을 내뱉고 평소의 습관처럼 눈을 떴다. 평소와 다르게 뻑뻑하고 시야가 흐른 눈에 앙리에뜨는 힘겹게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천천히 시야가 환해지는 찰나 앙리에뜨는 제 방 창문이 아닌  눈 앞에 보이는 살빛에 두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지....

"흡!!"

앙리에뜨는 급히 비명이 터질뻔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빅터의 가슴이라는 사실에 앙리에뜨는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어젯밤 일들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지그시 제 혀를 깨물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젯밤 처음으로 안기고 정신을 잃었는데 얼마 안 가 눈을 떴는지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빅터는 깨어났냐며 다시 키스하며 안았었다. 그렇게 빅터에게 밤새도록 시달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기절하듯이 잠들었었다. 그러나 안길 때 빅터에게 연신 키스해달라고 안아달라고 조른 제 모습이 기억나 앙리에뜨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미쳤었구나하는 생각뿐이었다. 이 이상 옆에 있다가는 진짜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앙리에뜨는 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앙리에뜨는 신음을 삼켰다. 쑤시는 허리를 부여잡고 침대 끝으로 간 앙리에뜨는 바닥에 놓여져 있는 제 옷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디가려고, 앙리?"
"꺄악!!"

단말마의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앙리에뜨는 뒤로 확 끌려왔다. 앙리에뜨는 등 뒤에 소름이 돋았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빅터가 얼굴 하나 가득 미소를 띄우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어..언제 깬거야, 빅터?"
"자네가 깨어났을 때. 근데 어딜 그렇게 몰래 나가려고 하나?"
"몰래 나가다니. 그런 거 아닐세."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보니 어젯밤 일때문에 몰래 나가려고 했겠지, 안그래?"

정곡을 찌르는 빅터의 말에 앙리에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빅터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 순진한 아가씨, 그런 걸로 날 속일려면 백 년은 있어야 될걸세."
"백 년일지 아니면 일 년일지는 두고봐야지."
"자네 성격에 퍽이나 그렇겠다."

빅터는 천천히 앙리에뜨의 몸을 돌렸다. 천천히 돌리는데에도 허리의 통증에 앙리에뜨는 눈살을 찌푸렸다.

"허리 많이 아픈가?"
"아, 괜찮네. 신경 안써도 돼."

그러나 빅터는 천천히 앙리에뜨의 허리를 주무르며 대답했다.

"초야인데도 그렇게 안았으니 허리가 남아날리가 없지. 내가 자제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됐군. 미안하네."

빅터의 사과에 앙리에뜨는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몰라 얼굴을 붉힌채 입술만 달짝였다. 그런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피식하고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맨 정신으로 맞닿는 빅터의 몸에 앙리에뜨의 얼굴은 지금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빨개졌다.

"저... 빅터... 놓고 말하면 안될까?"
"유감이지만 싫네. 내가 이렇게 되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자네는 죽었다 깨도 모르겠지."

빅터는 앙리에뜨를 품에 꼭 껴안고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앙리, 자네 본명이 앙리 뒤프레가 맞는가?"
"아니."
"그럼 진짜 이름이 뭔가?"
"앙리...에뜨... 앙리에뜨 뒤프레."

앙리에뜨라... 앙리에뜨의 이름을 입속에서 몇 번 불러보던 빅터는 앙리에뜨의 이마에 키스하며 웃었다.

"자네에게 잘 어울리는데. 앙리에뜨... 이런 좋은 이름을 이제라도 말하게 되니 다행이군."

빅터는 머리에서 입술로 손을 내렸다. 어젯밤 얼마나 탐했는지 입술이 도톰하게 부풀어 있었다. 미약한 열기가 있어 빅터는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입맞췄다. 앙리에뜨는 움찔했지만 자신보다는 상대적으로 시원한 빅터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맡겼다. 입술에서 목으로 입술을 옮긴 빅터는 제가 만들어놓은 키스마크를 핥으며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목소리도 원래 이런가?"
"아....니"

앙리에뜨는 터져나오려는 신음을 애써 참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빅터는 가볍게 웃고 그녀의 어깨를 잘근거리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목소리를 변형한건가?"
"약..."
"약?"
"내가 가끔 시장에서 조제하던 약... 내가 대학생 때 만들었던 약 조제법일세. 목소리를 두껍게 만들어서 남자들이랑 비슷하게 들리게 하려고."
"그 약, 좀 더 손 봐야 되겠던데. 목소리가 미성이어서."
"그나마 이 약이 부작용도 없었으니까. 다른 성분을 넣으면 목소리는 두꺼워지겠지만 부작용을 무시하지 못하겠더군."
"농담일세. 이제 그 약도 다 버려. 자네 진짜 목소리가 듣고 싶어."

빅터는 앙리에뜨의 가슴에 제 얼굴을 묻었다. 앙리에뜨는 부끄러워 살짝 그를 밀어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앙리에뜨의 체향을 한껏 맡았다. 그래... 그 때 한순간 맡았던 그 기분좋은 체향이었다. 이 향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언제는 반쯤 미쳐서 조향사를 찾아가 향수란 향수를 다 맡아본 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향수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이 향 하나를 찾기 위해 마을에 있는 몇 없는 향수집을 다 찾아갔던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비슷한 향조차 하나도 찾지 못해 빈 손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원하는만큼 체향에 취한 뒤 빅터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가슴을 보았다. 어젯밤 얼마나 탐했는지 하얀 피부는 붉은 낙인으로 빼곡히 차있었다. 제가 만든 키스마크를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던 빅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덥썩 그녀의 유실을 삼켰다. 화들짝 놀란 앙리에뜨가 그의 어깨를 밀쳤지만 소용없었다. 빅터는 오히려 그녀의 허리를 바투 안으며 혀로 그녀의 가슴을 희롱하며 말했다.

"이제 그 붕대따위 하지 마. 바지도 입지 말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자네 모습이 보고 싶어."
"으응...."

앙리에뜨는 애써 신음소리를 삼키고 대답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게 느껴져 빅터는 아쉽게 다음을 기약하고 얼굴을 들었다. 앙리에뜨의 뺨을 쓰다듬으며 빅터는 입을 열었다.

"오늘 당장 마을에 가봐야겠군. 여긴 어머니가 남기신 옷 몇 벌밖에 없어. 그 옷들도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 자네가 입기에는 좀 그래."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상관있어, 앙리에뜨. 조만간 엘렌에게도 정식으로 인사하러 가야지. 아마 무척 반길거야."
"날 싫어하지 않을까? 어떤 이유였든 간에 난 자네 가족들을 모두 속인 꼴인데."
"전혀. 엘렌이라면 쌍수 들고 환영할 걸. 일단 좀있다 룽게오면 마을로 내려가자."
"룽게?!"
"앙리에뜨, 왜 그래?"

앙리에뜨가 화들짝 놀라자 빅터가 의아하게 보았다. 앙리에뜨는 얼굴이 붉어져서 대답했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룽게한테 보이나? 당장 뒷목 잡고 쓰러질지 몰라."
"아, 그런거라면 상관없어. 문 잠궈놨으니까 아무도 못들어와."
"...언제 잠근거야?"
"어젯밤 자네가 들어왔을 때."
".....날 여기서 내보낼 생각이 없었나보군."
"남자면 자네 몸에 손댔다고 뛰쳐나갔을테고, 여자여도 자네의 비밀이 들켰다고 도망갈게 뻔한데 쉽게 보낼 수야 없지."
 
주도면밀한 빅터의 말에 앙리에뜨는 입이 벌어졌다. 근데 문득 되새겨보니 뭔가 이상했다. 설마... 이미 알고 있었던건가?

"빅터."
"왜, 앙리에뜨?"
"혹...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나?"
"짐작은 했지."

앙리에뜨는 이마를 짚었다. 역시 눈치빠른 빅터를 속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허탈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20년 넘게 숨겨왔는데다가 심지어 몇 년이나 같이 지낸 대학동기들마저 눈치채지 못했는데 만난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아 짐작할정도라니.... 정말 빅터를 상대로 속일 바에야 귀신을 속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앙리에뜨가 어디서 들켰는지 고민하던 찰나 빅터가 앙리에뜨를 끌어안았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빅터는 앙리에뜨의 등을 토닥였다.

"앙리에뜨, 어쩌다 들켰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마. 결과적으론 다 잘되지 않았나."
"그래도..."
"그런 고민일랑 미뤄둬, 앙리에뜨 아가씨. 자, 아직 새벽이야. 어젯밤에 무리해서 피곤할텐데 좀 더 자 둬."
"괜찮은데..."
"괜찮아? 그럼 다시 피곤하게 만들어줄 요량도 있는데."
"아니, 너무 피곤해. 좀 더 자야겠어."

빅터의 눈이 일렁이자 앙리에뜨는 급히 눈을 감고 빅터의 품을 파고 들었다. 빅터는 키득거리더니 앙리에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귓가에 들리는 빅터의 심장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빅터의 심장소리에 맞춰 숨을 쉬던 앙리에뜨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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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이후 당분간 ts쓰지 않을 것 같아요...

 

연애를 해봐야 연애 소설을 쓰지....(자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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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메이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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