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ts앙리] 무제
원작파괴주의
설정오류주의
Wrirten by. 玄月
가을하늘이 푸르렀고 햇살이 따뜻한 어느 날. 화창한 아침을 맞이하여 기분좋게 일어난 빅터와 룽게는 앞에 있는 식사를 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식사따위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앙리에뜨 때문이었다. 언제 어느때나 미소를 띄우며 상냥한 그녀가 오늘따라 이상했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부터 분명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가 경직되어있었다. 전에는 항상 룽게를 도와주겠다며 이리저리 왔다갔다거렸는데 오늘은 피곤한건지 잘잤냐는 인사만 나누고 식탁에 앉아 손으로 얼굴만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식사하는 모습도 이상했다. 평소라면 본인의 접시를 말끔히 비우나서 편식하는 빅터에게 다큰 어른이 편식을 하면 되겠냐며 빅터를 어르곤했는데 오늘 그녀의 접시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평소와 너무 다른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와 룽게는 서로 눈치만 주고 받았다.
"잘 먹었습니다."
"벌써?"
접시의 반도 채 먹지않고 일어선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와 룽게는 동시에 물었다. 놀란 두 사람에게 앙리에뜨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오늘은 별로 입맛이 없어서... 미안해요, 룽게. 너무 많이 남겼네요."
"난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힘들게 준비했는데... 오늘 속이 안좋아서..."
"앙리에뜨, 속이 안좋다니? 체한거야?"
"그런건 아니지만... 일단, 빅터. 나 먼저 실험실에 내려갈게. 다 먹고 내려와."
"응..."
앙리에뜨가 식당을 나가자마자 룽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분 서로 싸우셨나요?"
"싸우긴 무슨."
"혹시 도련님이 앙리에뜨 속상하게 한 일있는거 아니세요?"
"그런 일 없어."
"그런 게 아니면 저 활발한 아가씨가 왜저리 기운이 없답니까? 아이고, 생각보다 많이 남겼네. 안그래도 마른 아가씨가 식사를 이렇게 남기면 몸이 못버틸텐데."
식사를 마친 룽게가 앙리에뜨가 남긴 접시를 보고 혀를 찼고 룽게 옆에 있던 빅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빅터는 의자에 걸려 있는 베스트를 입으며 말했다.
"룽게, 간식거리 좀 챙겨줘. 실험실 내려갈 때 들고 내려가야겠네."
"네, 도련님."
파이, 초콜릿등 하나같이 달콤하고 열량이 높은 간식들이 하나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빅터는 실험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아무 생각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실험실에 주춤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앙리에뜨?"
"....빅터?"
한 박자 느린 반응을 보이며 실험실 구석에서 인영 하나가 스르륵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앙리에뜨의 모습을 보며 빅터는 실험실의 불을 밝혔다.
"앙리에뜨, 실험실을 이렇게 어둡게하고 뭘하는거야?"
"그냥... 잠시 엎드려있었어."
"어디 몸이 안좋은거야?"
"아니야. 그럼 이제 실험시작하자."
빅터가 더이상 말을 붙일 여지도 없이 앙리에뜨는 단칼에 잘라냈다. 그런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최근 며칠간 자신이 앙리에뜨의 기분을 상하게 한일이 있는지 고민했다.
"빅터, 뭐해?"
"응? 아, 뭐하긴 실험 중이지."
"실험? 계속 나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한 손에 실험일지를 들고 있긴 했지만 빅터의 정신은 온통 앙리에뜨에게 향하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실험을 평소에 앙리에뜨는 실험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저 한숨을 쉬고 가만히 앉아 어디가 틀렸는지 고민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실험 도중에 종종 입술을 씹으며 눈을 질끈 감았더니 실험 중임에도 갑자기 실험도구를 내려놓고 얼굴을 찡그리기까지했다. 저렇게까지 신경질적인 앙리에뜨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든 앙리에뜨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마음에 너무 티나게 앙리에뜨의 눈을 피해버렸다. 앙리에뜨가 눈치못채길 바랬지만 택도 없는 소리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실험일지를 내려놓았다. 이럴 때는 정면승부가 답이다.
"앙리에뜨, 정말 계속 실험해도 괜찮겠어?"
"무슨 소리야?"
"오늘따라 진짜 몸이 안좋아보여."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이렇게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지고 안아프다고 할 참이야?"
"별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끝까지 괜찮다고 고집스럽게 말하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한숨을 푹쉬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앙리에뜨가 다른사람에게 피해입히는걸 싫어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왠지 모르게 섭섭했다. 자신에게만큼은 알려줘도 되는데... 빅터가 천천히 앙리에뜨에게로 다가갔다.
"맨날 안아프다고 하지말고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고. 앙리에뜨."
"괜찮다니,꺅!!"
빅터는 앙리에뜨 앞에 서더니 대뜸 그녀를 안아들었다. 말하다니 갑자기 공중에 붕 뜬 앙리에뜨는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지르고 급히 빅터의 목에 팔을 걸었다.
"무... 무슨... 빅터!"
"비밀많은 아가씨 덕분에 내가 이 고생이군. 방에 데려다줄게."
"내가 걸어갈테니 내려줘!"
"환자가 걷길 뭘 걸어. 떨어지니까 얌전히 있어."
"누가 환자란... 윽."
"앙리에뜨, 괜찮아?"
버둥거리던 앙리에뜨가 갑자기 배를 감싸안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깜짝 놀란 빅터가 물었지만 앙리에뜨는 고통이 심한지 입술만 거듭씹었다. 급히 앙리에뜨의 방에 도착한 빅터는 앙리에뜨를 침대에 눕혔다. 앙리에뜨는 배를 안고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말도 못하고 누워있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응? 나도 의사니까 말해봐."
"괜찮아... 그냥 있으면 돼."
"그냥 있는다고 낫는 병이 세상에 어디있어?"
"괜찮아... 빅터. 혼자 있고 싶어..."
"이렇게 아픈 사람을 어떻게 혼자 놔둬!"
결국 빅터는 벌컥 화를 냈다. 계속 괜찮다고만 하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걱정과 섭섭함은 뒤섞여 분노로 폭팔했다. 그러나 앙리에뜨는 차분하게 빅터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빅터, 원래 난 주기적으로 아파... 이렇게 있다보면 저절로 낫고... 그러니 혼자있게 해줘..."
"저절로 낫는 병이 세상에 어딨어? 약은? 약은 없어?"
"저기... 서랍장에."
빅터는 앙리에뜨가 가리킨 서랍장을 열어보았다. 가지런하게 정리되어있는 옷 옆에 이질적인 갈색 약통이 보았다. 하얀 약통 뚜껑 위에는 아주 작게 '진통제, 수면제'라고 적혀있었다.
"진통제와 수면제가 언제부터 만병통치약이 된거야?"
"그거면 충분해..."
"앙리에뜨!"
"빅터, 제발... 이 이상 말하기 힘들어..."
빅터는 뭐라 대꾸하려 했지만 아까보다 사색이 되어있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빅터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고 한숨을 푹쉬었다. 그리고 앙리에뜨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알았어. 나가있을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나나 룽게 부르고."
"미안해, 빅터."
"괜찮아. 내 걱정말고 쉬어."
앙리에뜨는 고개를 끄덕였고 빅터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빅터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지고나서야 앙리에뜨는 배를 움켜쥐며 신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쉽사리 물러간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진료 받을 때까지 절대 못나간다고 할까봐 얼마나 불안했는지 빅터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긴장이 풀리자 배에 있던 통증이 허리까지 이어졌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앙리에뜨는 빅터가 가져다준 약통을 힘겹게 열어 손에 잡히는 아무 약이나 삼켰다. 이 증상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겠나? 아무리 사랑을 나눈 사이라도 이건 죽었다깨도 절대 빅터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직접 설명하기에는 여성으로써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아까먹은게 수면제인지 앙리에뜨의 눈이 꿈뻑거렸다. 천근만근과 같은 몸을 힘겹게 움직여 이불 속으로 파고든 앙리에뜨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앙리에뜨가 불안감에서 벗어날 때 반대로 빅터의 불안감은 하늘로 치솟았다. 심정같아서는 말할 때까지 못나간다고 버텼겠지만 앙리에뜨가 저렇게 아픈 건 처음보았기에 꼬리를 내리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말을 못한다는것인가. 단순히 복통이라면 내가 간호해줄 수도 있을터. 게다가 주기적으로 아프다니... 어제까지만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저렇게까지 아플 수 있는건가? 그 순간 빅터는 덜컥 겁이 났다. 주기적으로 아픈게 사실 큰 병의 전초현상이라면? 그저 복통인가보다라고 간단히 여기고 치료하지 않고 넘어간거라면? 만일 치료할 시기를 놓친거라면? 빅터의 등 뒤로 소름이 끼쳤다. 안돼... 어머니도 병으로 잃었는데 앙리에뜨마저 병으로 잃을 순 없다. 앙리에뜨를 만나고 난 뒤 그녀없이 있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앙리에뜨와 모닝키스를 나누고 저녁까지 그녀와 생명창조연구를 논의하며 늦은 밤에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녀가 없어진다고? 병때문에 내곁을 떠난다고? 마녀의 저주는 나 하나면 충분해. 앙리에뜨는 절대 안돼!! 빅터는 곧장 서재로 뛰어가 의학도서를 뒤졌다. 아무리 머릿속에 있는 의학지식을 꺼내보아도 무슨 병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앙리에뜨는 분명 뭔가 알고 있었다. 단지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을 뿐. 빅터는 당장이라도 앙리에뜨의 방에 뛰쳐들어가고 싶었다. 앙리에뜨를 붙들고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그녀를 다그치고 싶었다. 하지만 앙리에뜨의 성격상 걱정끼치기 싫다고 더욱 입을 봉할터. 자신의 힘으로 밖에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책에도 나와있지않다면 누군가에게 물어봐야하나? 하지만 이 근방 의사는 자신보다 훨씬 실력이 떨어졌다. 유학시절 교수님들께 편지를 보내는 것도 너무 늦는다. 근방 대학교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기에는 그의 지식수준이 쉽사리 판단되지 않았다. 빅터의 불안감이 한계치로 치닫기 직전 뭔가가 빅터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산부인과 의사?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여성기계 쪽으로는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만일 앙리에뜨의 병이 여성에게만 국한되어있는거라면 본인의 힘으로는 쉽게 알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달랐다. 같은 의사라도 여성기계에 특화되어있는 의사들이라면 뭔가를 알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빅터는 급히 코트를 챙겨입었다. 다행히 마을근처에 산부인과 의사와 산파인 노부부가 있었다. 마을에서 생기는 출산과 관련된 모든 일은 이 두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경험도 풍부한 만큼 다른 것들도 많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빅터는 마차를 부를 생각도 못하고 급히 마을로 내려갔다.
-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의사가 운을 떼며 빅터와 마주앉았다. 노부인은 빅터와 의사 앞에 찻잔을 놓았다. 두 사람은 지금 이게 왠일인가 싶어 그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들을 찾는 소리에 두 사람은 급한 환자가 생겼나싶어 문을 열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왠 건장한 청년이 홀로 문 앞에 서있었다. 이 마을에서 산지가 벌써 몇 십년이 되어가는데 처음 보는 환자의 얼굴에 노부부가 어리둥절해 있는 상태에서 청년은 자신을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눈 앞에 있는 청년이 소문 무성한 마녀의 자식이라는 생각에 기겁했지만 다급함이 역력한 그의 모습에 애써 내색하지 않고 그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빅터는 노부인이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지금 제 성에 환자가 한 명 있습니다."
"성에? 산모인가?"
"산모는 아니고 여성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게... 아침부터 완전 사색이 되어있는데다가 복통이 꽤 심한지 운신조차 못합니다."
"산모도 아니고 복통이면 내가 아니라 마을의사를 찾아가는게 낫지 않겠나?"
"비록 마을에서 괴짜소리를 듣지만 저도 유학시절 의학을 배웠고 그녀는 또한 뛰어난 의사입니다. 제가 아는 지식에서는 그런 증상은 본 적도 없고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진찰해주겠다고 해도 그녀가 기를 쓰고 피합니다. 의사인 그녀마저 손을 쓰지 못하고 그렇게 아파해서 병이 뭔지 걱정되서 의견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심한 병인건가요?"
"어떤 증상인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식사량도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복통 때문인지 진통제랑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습니다."
빅터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던 의사는 차를 한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혹시 가끔 허리도 부여잡고 발걸음을 떼는것도 힘들어하나?"
"맞습니다."
"주기적으로 아프다는 말은 없었나?"
"주기적으로 아프고 낫는다는 말을 하기는 하는데... 세상에 그런 병이 어딨답니까?"
"딱 들어보니 알겠군. 월경일세."
"네?"
의사는 간단하게 대답하며 차를 마셨다. 빅터는 처음 듣는 병명에 눈만 끔뻑이며 말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는지?"
"그 분야는 나보다는 내 안사람이 더 잘아네. 이이에게 물어보게나."
의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차분히 빅터의 이야기를 듣던 노부인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묻겠네. 젊은 아가씨인가?"
"한 이십대정도."
"많이 마른 편인가?"
"보통 여자들에 비해 몸피가 가늘기는 합니다."
"아침에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나?"
"평소보다... 좀 많이 가라앉은 분위기였습니다. 원래 다정다감한 사람인데 오늘은 힘든지 웃지도 않고 가끔 티안나게 신경질을 내기도 했습니다."
"전형적인 월경 증후군이네."
"저, 죄송하지만 그게 뭔가요?"
빅터의 물음에 노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노부인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빅터의 눈빛에 한숨을 푹쉬고 대답했다.
"월경. 그건 여성들에게만 발생하는 일일세."
"병인가요?"
"병은 무슨. 그 일이 없는 게 더 큰 일이지. 자네는 의학을 배웠다는 사람이 월경도 모르나?"
"여성기계 쪽은 접해보지 않아서 모릅니다."
"쯧쯧... 나중에 결혼하고 아내에게 바가지 긁힐 말만 골라서 하는군. 월경은 여성들이 달마다 겪는 일이야. 아이를 갖기 위해 여성의 몸이 준비하는 과정일세. 월경이 없으면 아이도 생기지 않으니 없으면 더 큰일인 현상이네. 사람마다 다르지만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사람의 체중에 따라 고통의 정도도 다르지. 마르면 마를 수록 고통이 심해지네."
빅터는 새롭게 알게된 지식이 신기했다. 앙리에뜨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빅터의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쑥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퍼뜩 지금은 이런 감상을 할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이든 빅터가 물었다.
"그 고통은 언제까지 이어지는겁니까?"
"월경을 하는 내내 아플걸세. 특히, 시작일로부터 한 2,3일이 제일 심하지."
"낫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없네."
"네?"
딱잘라말하는 노부인의 모습에 빅터는 되물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빅터에게 대답했다.
"없어. 그저 아가씨 본인이 스스로 버티는 수 밖에. 그나마 그 아가씨는 의사니까 진통제라도 먹으면서 버티는걸세."
"아니, 세상에 그런게 어딨습니까?"
"어머니가 되는 일이 쉬운 줄 알았나? 여성들은 매달 그 고통을 감내하고 아이를 가지고 목숨걸고 출산하는 걸세.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아가씨에게 잘해주게."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까?"
"아무런 치료약도 치료법도 없네.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있는게 현재로써는 유일한 방법일세."
노부인의 칼같은 대답에 빅터는 할말을 잃었다. 그저 알겠다고 대답하고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나올뿐이었다. 빅터는 터덜터덜 길을 걸었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앙리에뜨가 아픈 이유가 병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이기는 했지만 매달마다 그렇게 아파하는 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본인이 아팠으면 아팠지, 그 여린 사람이 아파하는 걸 무덤덤하게 볼 수가 없었다. 빅터가 그렇게 힘없이 걸어가는데 빅터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고보니까... 모든 여자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엘렌도 겪지 않았을까? 필시 엘렌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거야. 빅터는 그 길로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엘렌이 머물고 있는 슈테판 시장의 저택으로.
-
엘렌은 치맛단을 살짝 들어올리고 열심히 걸었다. 그녀가 발걸음을 빨리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하녀가 가져온 소식때문이었다. 빅터가 숙부님의 저택에 왔다는 말에 그녀는 참을성 없는 동생이 또다시 휘리릭 저택을 떠나기 전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응접실에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왔다갔다는 동생의 모습에 엘렌은 웃음을 띄었다.
"빅터. 네가 이 시간에 여기를 오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아, 누나. 숙부님은?"
"평소라면 계실텐데 하필 오늘 숙부님은 일이 있으셔서 출타하신 상황이란다. 오랜만에 서로 얼굴봤으면 좋았을텐데."
"숙부님이랑 내가? 퍽이나 좋아하시겠네."
투덜대는 빅터의 모습에 엘렌은 작게 웃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앙리에뜨가 보이지 않았다. 빅터가 앙리에뜨를 두고 홀로 왔다니? 뜻밖의 일에 엘렌이 물었다.
"빅터, 앙리에뜨는?"
"앙리에뜨는 몸이 안좋아서 쉬고 있어."
"어머, 어쩌다가?"
"그게... 누나, 혹시 월경을 낫게하는 방법없어?"
빅터의 예상을 뛰어넘는 질문에 엘렌은 숨을 들이키다 사례가 걸려 콜록거렸다. 옆에 있던 하녀들은 본인들이 지금 제대로 들은 것것인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눈치를 보았다. 엘렌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말했다.
"빅터... 지금 뭐라고?"
"월경 낫게하는 방법 없냐고. 누나도 해봤을거 아니야."
확인사살을 해주는 빅터의 질문에 엘렌의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눈살을 찌푸렸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하녀들의 목소리에 엘렌은 이만 나가달라고 했다. 보나마나 괴짜도련님이 여성의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다닌다, 심지어 누님마저 희롱하고 있다고 입방아 찍을게 뻔했다. 빅터가 저택에서 떠나고나서 하녀들을 입막음 시킬 생각에 머리가 지끈해진 엘렌은 한숨을 푹쉬었다. 그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빅터를 보았다.
"빅터... 그건 왜 묻는거니?"
"앙리에뜨가 월경중이어서."
"설마 앙리에뜨가 그렇게 말했니?"
"아니, 절대 안말할 기세길래 마을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갔니까 알려줬어."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빅터의 모습에 엘렌은 머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각은 하고 있을련지... 앙리에뜨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저렇게 말했다간 당장 성을 뛰쳐나왔을터.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저택을 들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든 엘렌이었다. 그런 엘렌의 속도 모르고 빅터는 제 누이를 독촉했다.
"누나라면 방법을 알고 있을거야, 그렇지? 있으면 알려줘. 앙리에뜨가 너무 힘들어 해."
"많이 힘들어하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안그래도 마른 사람이 밥도 제대로 안챙겨먹고... 고통이라도 줄면 좀 낫지 않을까싶어서..."
앙리에뜨를 생각하자 빅터는 우울해졌다. 그 작디작은 사람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심장이 아팠다. 누나마저 방법을 모른다면 어떻해야될지 빅터는 불안한 마음에 엘렌을 애절하게 보았다. 빅터의 모습에 엘렌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살짝 놀랐다. 항상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동생이 어느순간 다른 사람을 돌보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였다. 빅터의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는 바로 앙리에뜨일 터. 빅터의 변화에 흐뭇해하며 엘렌은 빅터의 손을 꼭 잡았다.
"약이 따로 있는건 아니지만 내가 쓰는 민간요법 몇 가지가 있단다. 여성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진 민간요법이니까 앙리에뜨에게도 효과가 있을거야."
"무슨 방법인데?"
"내가 몇 가지 챙겨줄테니 챙겨가렴. 그럼 앙리에뜨는 지금 어떻게 있니?"
"진통제랑 수면제만 먹으면서 근근히 버티는 중이야."
"원체 마른 아가씨다보니 약을 써도 힘든가보구나. 나중에 성에 가서 이것저것 만들어서 먹여야겠네."
엘렌은 빅터에게 차를 주며 금방 챙겨올테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응접실을 나섰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 하녀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했다. 하녀들은 엘렌의 명에 물건들을 챙겨 큰 상자안에 넣었다. 엘렌은 바리바리 싸든 상자를 빅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식사는 따뜻한 스튜종류로 하렴. 하루종일 아프고해서 입맛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먹이도록 하고. 안에 자두, 살구, 견과류 넣어놨고 체이스트베리과자랑 익모초차랑 쑥차도 넣어놨으니까 주기가 아니더라도 간식으로 꾸준히 먹이면 당장은 효력이 없어보이겠지만 다음 번에는 고통이 좀 덜할거야. 그리고, 물주머니 몇 개 챙겨넣었단다. 안에 따뜻한 물 넣어서 배나 허리에 올려놓으면 돼."
"고마워, 누나."
눈을 반짝이며 상자를 든 빅터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엘렌이 뭔가 생각났는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앙리에뜨에게한테는 절대 그... 월경이란 단어는 쓰지 말거라."
"왜?"
"그게... 그건 여성들에게 있어서 좀 민감한 주제란다. 부인들도 남편들에게 쉽게 못꺼내는 주제인데 앙리에뜨는 미혼의 아가씨잖니. 너는 어떤 의미에서는 외간 남자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니?"
"의사대 의사로써 서로 말하는건데 뭐 어때?"
"그래도 절.대. 말하지 마. 앙리에뜨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절대로 하지마. 여성들은 그 주기가 되면 심리적으로 굉장히 민감해진단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다고. 안그래도 힘든데 앙리에뜨를 민망하게 해서 상처주면 어떻게 하니?"
엘렌은 작은 타박에 빅터는 곰곰히 생각하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렌은 빅터의 등을 토닥였고저택 밖까지 배웅했다. 빅터는 엘렌을 꼭 안아준 뒤 옆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랐다. 마부의 호령에 말이 가볍게 울며 발을 굴렸다. 그리고 마차는 천천히 빅터 프랑켄슈타인 성으로 향하였다.
-
붉은 저녁놀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성을 덮었다. 노을빛은 창문을 통해 일직선으로 뻗어 방 안을 비추었다. 노을빛이 든 방은 바로 다름아닌 앙리에뜨의 방이었다. 노을빛은 앙리에뜨의 눈을 끊임없이 자극했고 앙리에뜨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척이며 잠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몇 시지..."
결국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앙리에뜨가 몸을 일으켰다. 통증때문에 약간 움찔했지만 약덕분인지 아까보다 그 정도가 미미했다. 앙리에뜨는 아직도 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머리를 짚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서랍장 위에 있는 시계는 벌써 저녁식사시간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시간까지 세상모르게 쭉 잠들었던 자신이 민망해져 앙리에뜨는 급히 방에서 나왔다. 지금쯤이면 룽게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을터. 앙리에뜨는 룽게를 도와주기 위해 주방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룽게, 미안해요. 지금 일어났.... 빅터?"
"아이고, 앙리에뜨 일어났나?"
"앙리에뜨, 왜 여기왔어?"
룽게가 반갑게 앙리에뜨를 맞이했지만 그녀는 부엌에 있는 빅터의 모습에 깜짝 놀라 그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빅터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앙리에뜨에게 다가갔다.
"방에 있지, 왜 내려왔어?"
"하루종일 잠만 잔데다가 아침에도 룽게 식사준비를 못도와줬는데 내려와야지."
"몸도 성치 않는 사람이 도와주긴 뭘 도와주나, 어여 올라가있게."
"룽게 말이 맞아. 앙리에뜨, 어서 방에 올라가자."
"아니, 괜찮다...꺅!"
앙리에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빅터가 또다시 앙리에뜨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앙리에뜨를 품에 안은채 룽게를 향해 말했다.
"룽게. 앙리에뜨 데려다주고 올테니까. 식사 부탁해."
"물론이죠, 도련님."
"그럼 앙리에뜨, 갈까?"
"아니, 빅터! 이건 내려주고!"
버둥거리는 앙리에뜨를 꼭 끌어안는 빅터의 모습에 룽게가 넉살좋게 웃어보였다. 룽게의 시선에 민망해진 앙리에뜨가 얌전해지자 빅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고 윗층으로 향하였다. 결국 빅터의 뜻대로 그의 품에서 침대로 옮겨진 앙리에뜨는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그런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피식하고 웃고 말했다.
"아까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안겨서 올라왔는데 왜 이렇게 삐져있어?"
"아까는... 아프니까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룽게가 보는 앞에서 그럴 것까지야..."
"뭐 어때, 룽게도 우리 둘 사이 알거 다 아는데."
"그렇지만..."
"식사 가져올테니까 얌전히 있어. 또 방에서 나오면 아까처럼 안아들고 방에 올테니까."
빅터는 앙리에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방을 나갔다. 아침까지만해도 극도로 불안해하던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여유롭게 변하니 앙리에뜨의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앙리에뜨가 어안이 벙벙해있는 사이 빅터가 식사를 가져와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앙리에뜨, 저녁은 간단하게 스튜로 준비했어."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딱히 저녁 생각없는데...
"입맛이 별로 없겠지만 다 먹어야해. 빈 속이면 약효도 별로 없으니까."
협탁 위에는 두 사람분의 식사가 올려져 있었다. 이에 앙리에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빅터, 룽게랑 같이 안먹고 자네도 여기서 먹게?"
"응."
"여기서 먹으면 불편하지 않겠어?"
"딱히. 여기 스푼. 꼭 다먹어야해. 다먹을 때까지 안나갈거니까."
앙리에뜨는 빅터가 건네준 스푼을 받아들고 천천히 식사했다. 입안이 씁쓸해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진짜 다먹을 때까지 버틸것같은 빅터의 기세에 억지로라도 삼켰다. 언제 다 먹었는지 벌써 스푼을 내려놓은 빅터가 앙리에뜨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저기 빅터..."
"응?"
"왜그렇게 쳐다봐?"
"다 먹는지 확인할겸. 겸사겸사."
"겸사겸사?"
"그리고 얼마나 먹여야 살이 좀 오를지 생각 중이지. 자네가 어지간히 말랐나."
"내가 왜? 이정도면 괜찮지 않아?"
"엘렌이 너무 말랐다고 걱정하던데. 조만간 성에 와서 먹여야겠다고 벼르더군."
"이정도면 괜찮은데..."
"살이 좀 더 붙으면 나야 좋지. 지금도 좋기는 하지만 살이 찌면 밤에 안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을 것 같..,"
"빅터!!"
앙리에뜨가 소리질렀다. 새빨개진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키득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 지나쳐!"
"미안, 미안. 어서 마저 먹어."
"자네때문에 채할 지경이야."
"이제 안 그럴테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말아."
장난끼가 다분히 느껴지는 빅터의 말에 앙리에뜨는 빅터를 살짝 노려보았다가 손을 움직였다. 빨리 먹어야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앙리에뜨는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나자 빅터는 식기를 챙겨 방을 나갔다. 그에 앙리에뜨는 한숨을 내쉬고 몸에 들어간 힘을 풀고 침대헤드에 기댔다. 빅터가 있는 사이에 통증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밖은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있었다. 평소라면 이 시간까지 빅터와 실험을 했을터였지만 당분간은 무리였다. 이런 때 평소에 못읽었던 책이라도 읽자는 생각에 앙리에뜨는 책장에서 책 몇 권을 꺼내들어 침대로 가져왔다. 그렇게 앙리에뜨가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가벼운 노크와 함께 빅터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티세트가 놓인 쟁반이 들려있었다.
"빅터, 왠 차야?"
"가볍게 마실려고 가져왔는데 독서 중인데 방해되었나?"
"아니야, 괜찮아."
쟁반 위에는 찻잔과 못보던 쿠키가 올려져있었다. 베리가 박혀있는 쿠키는 한 눈에 봐도 달아보였다. 앙리에뜨라면 모르겠지만 빅터는 평소에 단 거라면 딱 질색인 사람이었다. 뜻밖의 티타임에 앙리에뜨는 책을 덮고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시도는 빅터에 의해 저지되었다.
"일어서지말고 누워있어."
"이정도는 괜찮아. 그렇게 심한 환자도 아닌데 하루종일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조금 움직인다고 해 될건 없어."
"그래도 몸을 따뜻하게 해야지. 그냥 그대로 있어."
억지로 앙리에뜨의 어깨를 눌러 앉힌 빅터가 따뜻한 찻잔을 건내주며 말을 이었다.
"엘렌이 준비해준 차랑 쿠키야. 자주 챙겨먹으라고 하더군."
"아까 저녁 때부터 생각했던건데 오늘 엘렌한테 갔다왔었어?"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물어볼 거? 뭘 물어보려고 엘렌한테까지 갔다온거야?"
"있어. 그런 게."
빅터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평소와 다르게 어물쩍하게 대답하고 넘어가려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어리둥절했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대신 손에 들려있는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흠칫했다. 그 모습에 빅터는 입에 가져가려던 찻잔을 내리고 물었다.
"왜 그래? 입맛에 안맞아? 좀 더 달게 해줄까?"
빅터의 질문에 앙리에뜨는 대답하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옆에 있는 쿠기를 집었다. 앙리에뜨는 쿠키를 먹지 않고 이리저리 보더니 쿠키에 박혀있는 베리만을 꺼내 입에 넣었다. 천천히 맛을 보던 앙리에뜨가 빅터를 바라보았다.
"이거... 차랑 쿠키 재료가 뭐야?"
"차는 쑥으로 만든거고, 쿠키는 체이스트베리로 만든거라던데... 입에 안맞아, 앙리에뜨?"
빅터의 대답에 앙리에뜨의 얼굴을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앙리에뜨는 단순히 책으로만 의술을 배운 의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민간요법에도 제법 일가견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 월경에 대한 것이었다. 몇 가지 음식들이 여성들의 월경에 좋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쑥과 체이스트베리였다. 예전에 자신도 몇 번 쑥과 체이스트베리를 직접 구해 먹었는데 일이 많아져 더이상 직접 채집하러 갈 시간이 없어 병원에 있는 진통제와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었다. 쑥은 그 씁쓸한 맛때문에 차로 인기가 없가 없었고 체이스트베리는 라즈베리나 크렌베리보다 당도가 낮아 쿠키재료로 쓰이는 일이 드물었다. 빅터가 어떻게 이걸 가져온거지... 왜 가져온거지... 설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앙리에뜨의 얼굴을 불에 익은 것처럼 붉어졌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빅터가 눈치챘다는 것을. 빅터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거라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알아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언젠가 알게되겠지만 못해도 두세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그런데 한 편으로는 고마웠다. 빅터는 다른사람을 챙기는데는 영 소질이 없었다.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그의 주변환경이 그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신을 걱정해주고 숨기고 싶었던 비밀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배려해주는게 너무 고마웠다. 그에 앙리에뜨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빅터를 바라보았다.
"빅터, 고마워."
"고맙다니, 뭐가?"
"내가 말도 안해줘서 섭섭했을텐데... 이렇게 챙겨줘서."
"아픈사람 병간호가 왜 고마운 일이야? 당연한거지. 자, 식기 전에 차부터 마셔."
앙리에뜨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마셨다. 씁쓸한 차와 달콤한 쿠키가 잘 어울렸다. 맛잇게 먹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왠지 뿌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빅터는 곰곰히 생각했다. 월경이 여성이 아이를 갖기위해 거치는 과정이라면 지금 앙리에뜨는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앙리에뜨가 아이를 갖는다면 어떨까. 저 작디작은 몸으로 아이로 부푼 배를 안고 있어도 고을 터. 아이가 딸이라면 앙리에뜨를 닮아 이 마을에서 가장 예쁜 아이겠지.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는 아이를 안아들고 붉은 뺨에 키스해주고 옆에 있는 앙리에뜨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순간 빅터는 정신을 차렸다.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혼자서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는 제 자신이 너무 민망해져서 얼굴을 붉혔다.
"빅터, 얼굴이 왜그렇게 빨게? 어디 안좋아?"
"아... 아니야. 별 일 아니야."
빅터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침대 위에 있는 책 중 아무거나 하나 펼쳤다. 그에 앙리에뜨는 빅터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책에 집중하는 빅터의 모습에 자신도 독서에 집중하였다.
-
"앙리에뜨, 룽게일세. 지금 도련님이랑 있나?"
가벼운 노크소리와 함께 문너머에서 룽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독서에 집중하던 두 사람은 벌써 밤이 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앙리에뜨를 부르는 룽게의 목소리에 빅터가 문을 열었다.
"아픈 사람이랑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책만 읽었어."
"밤이 깊었습니다. 도련님도 주무셔야죠."
"내가 부탁한 건?"
"여깄습니다. 근데 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건 어디다 쓰실려구요?"
"쓸데가 있어. 내가 앙리에뜨에게 전해줄테니까 가서 쉬어."
"늦게까지 계시지말고 얼른 들어가서 주무세요."
"알았어."
건성으로 대답한 빅터는 문을 닫았다. 그 사이 앙리에뜨는 책과 침구를 정리하며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앙리에뜨."
"응, 왜?"
"이거 가지고 자게. 엘렌이 배나 허리에 올려놓으고 자면 좋다더군."
빅터는 앙리에뜨에게 물주머니를 건내주었다. 뜨거운 물이 들어있는 물주머니는 적당히 따뜻해져있었다. 온기가 감도는 물주머니를 끌어안자 차가운 배가 금방 따뜻해졌다. 이에 앙리에뜨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빅터. 자네가 이렇게 걱정해주니까 내일은 다 나을것같아."
"그런 소리말고 당분간 쉬어. 나중에 더 아프면 어쩔려고?"
"괜찮아. 어서 방으로 들어가게. 오늘 하루종일 고생했으니까 푹 쉬어야지."
앙리에뜨의 말에도 빅터의 발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빅터는 내심 걱정되었다. 저녁에 일어난 뒤에는 고통을 호소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앙리에뜨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내 빅터가 입을 열었다.
"앙리에뜨, 오늘 같이 자지 않겠어?"
"....뭐?"
빅터의 질문에 앙리에뜨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한 마디에 빅터가 대답했다.
"같이 자고 싶다고."
"같이 자고 싶다고?"
빅터의 말을 반복하고 뻣뻣하게 굳어있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에뜨에게 다가가더니 아무 경고없이 그녀를 안아올렸다.
"빅터!!"
앙리에뜨가 놀라서 소리쳤지만 빅터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고 그 역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빅터, 이게 무슨..."
"잠만 같이 자는 것도 안되나?"
"뭐?"
앙리에뜨가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그에 빅터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아무 짓도 안하고 이렇게 손만 잡고 자겠네. 이래도 안되나?"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연신 빅터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보던 앙리에뜨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
"진짜... 잠만 잘거지?"
"속고만 살았나? 이렇게 손만 잡고 잘거라니까."
"정말 아무 짓도 안할거지?"
"이 손을 묶어버리면 믿어주겠나?"
"그럴 필요까지야... 알았어. 자, 여기 눕게."
빅터의 고집에 결국 앙리에뜨는 자리를 내주었다. 그제야 싱글벙글 웃으며 빅터는 불을 끄고 앙리에뜨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잘 자, 빅터."
"잘 자게, 앙리에뜨."
물주머니를 배에 올리고 누운 앙리에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빅터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옆에서 들리는 차분한 숨소리를 들으며 빅터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
움찔. 깊게 잠들어있던 앙리에뜨가 불현듯 눈을 떴다. 아직 잠에 취해있는 눈가가 찌푸려지더니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잠잠했던 고통이 스물스물 움직이더니 결국 이 새벽에 일을 저질렀다. 앙리에뜨는 배 위에 올려놓았던 물주머니를 끌어안아보았지만 물주머니는 이미 그 효력이 다해 찬기만을 내뿜었다. 오히려 고통을 배가시키는 물주머니를 신경질적으로 밀어내 침대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급히 서랍장 위에 올려놓은 약병을 집어들어 안에 들어있는 약들 중 아무거나를 집어들어 입 안에 털어넣었다. 운이 좋게 수면제가 잡힌다면 빠르게 고통에서 멀어지겠지만 진통제라면 시간이 꽤 걸리기에 앙리에뜨는 그저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고통에 앙리에뜨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등 뒤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빅터는 딱히 미동없이 자고 있었다. 워낙 잠귀가 밝은 사람인지라 행여 자신의 신음소리에 그가 깰까 앙리에뜨는 애써 신음을 삼켰다. 약기운이 돌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먹은 약이 진통제였는지 약기운이 빨리 돌지 않았고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지만 앙리에뜨는 그저 배를 움켜잡고 습관적으로 몸을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셔츠 안으로 뭔가가 파고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촉감에 앙리에뜨는 화들짝 놀라며 이불 속을 들여다보았다. 셔츠 밑으로 보이는 팔을 따라 눈을 돌리니 그 시선의 끝에는 빅터가 있었다. 이 인간이... 손만 잡고 잔다며!! 왠지모를 배신감에 앙리에뜨는 울컥했다. 그리고 앙리에뜨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빅터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앙리에뜨를 끌어당기며 배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빅터의 손에 앙리에뜨는 숨을 들이켰다. 설마... 잠만 잔다는 건 거짓말인건가... 양의 탈을 쓴 늑대에게 속은 걸까... 하지만 오늘은... 진짜 할 수 없단 말이야!
"....앙리에뜨, 긴장 풀어."
앙리에뜨의 귓가에 빅터는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에 앙리에뜨는 화들짝 놀라 뒤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눈조차 뜨지 않은 채 그는 천천히 앙리에뜨의 배만을 문지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손이 상체로 올라올 줄 알았는데 배만 문지르는 그의 손에 앙리에뜨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그의 손길덕분인지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한 층 나아졌다. 기분좋은 온기에 앙리에뜨는 저절로 몸에 힘이 풀렸다. 앙리에뜨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빅터가 말을 이었다.
"배가 많이 차가워... 물주머니보다는 못하지만 내 손이라도 올려놓으면 좀 나을거야... 아픈사람 데리고 뭔 짓할 생각없으니까 긴장풀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의 숨소리가 차분해졌다. 앙리에뜨는 살짝 몸을 돌려 빅터를 바라보다 이불 속을 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큰 빅터의 손은 배의 중심부를 온전히 덮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천천히 배에 느껴졌다. 의외로운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그저 잠든 그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다가 이내 빅터를 의심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져 앙리에뜨는 그 손 위에 살며시 제 손을 덮었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빅터의 숨소리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렸다. 문득 자신을 향해 누워있는 빅터를 보다보니 그의 품이 굉장히 넓다는 것이 보였다. 조그마한 자신을 온전히 온전히 안을만큼 큰 품을 유심히 쳐다보던 앙리에뜨는 슬쩍 그의 가슴에 귀를 대었다. 규칙적인 심장박동소리가 듣기 좋아 앙리에뜨는 살포시 미소를 띄었다.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아 앙리에뜨는 그 품을 파고들었다. 그의 품 속에서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따위는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앙리에뜨는 머리맡에서 들리는 숨소리와 옆에서 들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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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나 완료했슴돠ㅋㅋㅋㅋㅋ
글을 써놓고 보니 정작 썰에서 풀어냈던 내용 중 모두가 원하셨을 것 같은 베드신(?)이 굉장히 적은 양이더군요ㅠㅠㅠㅠ
나도 잘쓰고 싶다 베드신...ㅠㅠㅠㅠ
빅터앙리 베드신이야 여러가지 소재가 많습니다만 왠지 ts앙리는 앙리처럼 굴리기에는 너무 여리여리한 존재같아서...
아니 그 전에 포돌이한테 잡혀갈 것 같아여ㄷㄷㄷㄷㄷ
빅터ts앙리만큼은 행쇼^^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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