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앙리] 도련님 1



Written by. 玄月




어둠이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아침하늘을 푸르게 비추기 시작하는 새벽, 마차 한 대가 잠들어있던 거리를 깨우며 움직였다.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게 된터라 마부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 채찍질을 하였고 마차 안에 앉아있던 이는 의자에 파묻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차는 광장을 지나 귀족들이 모여사는 휘황찬란한 시내가로 들어섰고 그 중에서도 고풍스러운 외양을 자랑하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다 왔다는 마부의 말에 안에 졸던 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마차 밖을 나왔고 차가운 새벽공기에 얇은 코트를 여맨 남자는 앞에 보이는 저택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이른 새벽부터 저택 안에서는 아침이 시작되었는지 곳곳에 불이 켜져있었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비추었다. 현관 앞에 선 남자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벨을 울렸다. 이내 안쪽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큰 문이 열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실험보조자로 온 앙리 클레르발이라고 합니다."

"어서와요, 클레르발군. 이른 새벽부터 수고가 많아요."


바깥이 많이 춥다며 어서 들어오라는 말에 앙리는 재빨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저택 내부에 앙리는 움츠렸던 몸을 풀고 힐끔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겉만 그럴듯한 집에서 사는 이름 뿐인 귀족들과는 다르게 안쪽까지 고급스러운 물품으로 꾸며진 내부에 앙리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구경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앙리를 불렀다.


"클레르발씨, 머무를 방을 소개해드리죠."

"아, 죄송합니다. 저택이 너무 좋아서 실례를 했군요."

"아니예요. 앞으로 쭉 지내게 될 곳인데 마음에 들면 좋죠." 


자신을 이곳의 집사, 룽게라고 간단히 소개한 뒤에 룽게는 앙리를 방으로 안내해주겠다고 앞장섰고 저택 뒷편에 위치한 사용인들이 쓰는 방까지 가는 동안 룽게는 앙리의 일을 알려주었다. 앙리의 일은 집안일을 하는 다른 사용인들과 다르게 도련님의 실험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도련님이 실험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옆에서 케어해주는 일로 들어가서 쉬어도 좋다는 도련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낮이어도 개인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실험이라는 위험부담이 있는 일인만큼 봉급 역시 다른 사용인들보다 훨씬 좋았다. 이런 일보다 룽게가 더욱 강조한 건 다름아닌 '도련님'에 관한 것이었다.


"도련님은 두통이 있으셔서 예민하신 편이니까 주의해주세요. 그리고 도련님의 성격상 본인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그러니까 실험도구 외에는 되도록 안 건드리는 게 좋아요. 전에 있던 실험보조자가 실험도구 둔다고 도련님의 물건을 잠시 옆에 옮겨놨을 뿐인데도 어찌나 화를 내시던지 불쌍하게도 결국 쫓겨나게 되었죠. 실험시간만 조심히 잘 보낸다면 아마 그 외에는 앙리를 따로 부를 일은 없을 겁니다."


어느덧 앙리의 방앞에 도착한 룽게는 문을 열어주고 앙리에게 열쇠를 건내주었다. 방 안은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만 놓여진 깔끔한 구조였는데 무엇보다 혼자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앙리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짐 풀고 옷은 편한 걸로 갈아입고 나와요. 혹시 몰라서 여분의 옷은 옷장 안에 넣어두었으니까 필요하면 꺼내입고요."

"그럼 언제까지 나가면 될까요?"

"도련님은 새벽까지 실험실에 계셔서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시는 편이예요. 일어나실 때까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아침식사하고 천천히 준비해요."


앙리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자 룽게는 조금있다 데리러 올테니 편하게 있으란 말과 함께 방을 나갔다. 들고온 가방에는 짐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이 속옷들이랑 허름한 옷 한 벌이 다 였기에 가방 채로 옷장 안에 밀어넣고 룽게가 말한 여분의 옷을 꺼내 입었다. 사용인들이 입는 검은 자켓에 흰 셔츠일 뿐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옷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감에 역시 귀족은 귀족이란 걸 느끼면서 메이드가 가져다준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시계는 벌써 아침을 지나갔고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나하고 지루해질 찰나 노크소리가 들렸다. 


"앙리, 도련님을 뵈러 갈 시간입니다. 지금 막 아침식사를 끝내시고 서재에 가셨으니 그곳에서 인사드리죠."

"네."


앞장서는 룽게를 따라 앙리는 방을 나와 길고 긴 복도를 걸었다. 룽게는 가는 길 내내 주의사항을 반복해서 알려주었고 지나가는 사이에 한참 바쁘게 일하던 사용인들도 보이지 않을 때쯤 룽게는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룽게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창문에서 따스한 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왔고 하얀 대리석 바닥에 비춰진 햇살이 서재 안쪽 곳곳을 밝게 비추어주었다. 밝은 햇살에 니스칠한 나무 서가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눈길을 줄만큼 예뻤지만 그것보다 창문 앞에 위치한 검디검은 가죽의자가 앙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등을 보이고 있는 의자에 앙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앙리를 소개하는 룽게의 말에 앙리는 룽게에게 들었던대로 책상 앞에 서서 품에 넣어뒀던 추천서를 책상에 올려두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앙리 클레르발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가죽의자가 천천히 돌았다. 눈을 책상 위 추천서에 고정하고 있던 앙리는 살짝 눈을 들어 도련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앙리는 굉장히 놀랐다. 도련님이라고 하길래 15,16살 정도의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 앞에 있는 도련님은 제 또래, 아니, 오히려 자신보다 더 연상인 성인이었다. 약간 신경질적인 눈매가 매력으로 보일만큼 이목구비가 또렷했고, 딱 벌어진 어깨 덕분에 코트가 없는데도 상체가 각이 잡혀있었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준수한 외모의 도련님에 앙리가 잠시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는데 순간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자신을 삼킬 것 같은 강렬한 눈빛에 앙리는 화들짝 놀라 급히 눈을 내려깔았고 도련님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지 책상 위에 있는 추천서를 읽었다.


"룽게, 주의사항은 다 이야기해준건가?"

"물론입니다, 빅터 도련님."

"그럼 나머지는 단둘이 이야기 하지."


도련님의 명령에 룽게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빅터라... 앙리는 조그맣게 이름을 읊어보는데 빅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페르난도 백작님이 소개서를 잘써주셨군."

"백작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대학은 가지 못하고 고급교육까지는 받았다라... 그럼 나 대신 실험일지를 써줄 수도 있겠어."


고급교육이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앙리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자크, 이 망할 놈. 뜻도 모르고 글자만 겨우 읽을 줄 아는데... 이런 사기를 나한테 말도 없이 써놓으면 어쩌자는거냐. 앙리는 편지를 써준 동업자에게 속으로 이를 갈아주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런 전문적인 일에 관해서 제가 뭘 쓰기에는 아직 배움이 많이 부족합니다."

"기본기만 있으면 돼. 나도 엄청난 걸 바라는 건 아니야."


빅터는 종이와 펜을 앙리 앞에 내놓았다. 앙리가 머뭇거리자 빅터는 앙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서 잡으란 듯이 턱짓을 했고 앙리는 침을 삼키고 펜을 들자 빅터는 가죽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원소주기율표를 써보게."

"...예?"

"원소주기율표. 화학의 기초 중 기초니까 자네도 알겠지. 헷갈리고 기억이 안나면 아는 원소라도 써보게."


앙리는 쩍쩍 마르는 입술을 핥으며 종이를 보았다. 하지만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봤자 생판 처음 들어보는 원소주기율표가 보일 리가 만무했다. 앙리가 빅터를 힐끗 보았지만 앙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 급히 시선을 내렸다. 긴장때문에 손에서 땀이 베어나오는게 느껴졌다. 앙리가 천천히 종이에 펜을 올려다놓고 힘을 주는 순간 땀때문에 미끄러진 펜이 책상 위를 또르르 굴렀고 적막을 깨는 펜소리에 앙리는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네, 고급교육은 커녕 중급교육조차 받지 않았나보지?"

"...실은... 먹고 사는데 급급했던 터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부양해야하는 노모와 어린 동생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서 안그래도 가난한 집이 더욱 가난해져서 페르난도 백작님 밑에서 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글자만 겨우 깨쳐서 사는데에 큰 무리 없이 지냈지만... 실험 보조자로 간다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백작님께 고급교육을 받았다고 거짓을 고하고 추천서를 얻어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기서 쫓겨나면 저희 가족들은 모두 굶어죽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 고생이람... 앙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런 사태를 만든 동업자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짧은 시간만에 애절한 가족사를 꾸며낸 제 능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부양해야할 가족은 커녕 부모도 모두 죽어 없지만 어떻게든 이곳에 남아야 계획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정도의 스토리라면 다들 눈물을 훔치고 자신을 받아들여주었는데 머리가 따갑다고 느껴질만큼 날카롭게 자신을 보고 있는 도련님에게 이 스토리가 먹힐지 의문이 들었다. 톡톡하고 손끝으로 책상을 치는 소리만이 서재에 울렸고 이러다가 계획을 실행시키지도 못하고 쫓겨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앙리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려는 찰나 빅터가 일어났다. 


"돈이 필요하면 가져가도 상관없어. 이 방 어느 물건을 가져가서 팔아도 난 신경쓰지 않아."


큰 키에 햇빛이 가려져 그림자가 만들었다. 구두 소리가 앙리의 귓가에 다가왔지만 앙리는 그저 허리를 숙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가 없었다. 손질이 잘된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저 구두는 얼마짜리일까하고 생각하려던 순간 커다란 손이 다가와 턱밑을 감싸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앙리와 빅터의 눈에 서로의 모습이 새겨졌다. 앙리는 조심스럽게 침을 삼켰다. 훔쳐본 것만으로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빅터의 얼굴은 숨이 쉬어지지 않을만큼 잘생겼다. 살면서 저 사람만큼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있을까. 이제껏 여러 귀족들의 뒷통수를 많이 쳐봤지만 이 사람만큼 아우라에 압도되어 쉽사리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게 거짓을 고하는 것만큼은 용서치 않겠다."


손끝으로 앙리의 얼굴 근육이 굳어지는게 느껴져 빅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직 어리군. 하지만 아무리 어린 강아지라 할지라도 주의는 필요한 법이었다. 앙리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빅터가 말을 이었다.


"알았나, 클레르발?"

".... Yes, Young Master."


이채를 띠는 빅터의 눈동자에 홀린듯 앙리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만한 도련님과 수상쩍은 실험보조자,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묘한 기류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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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 ANDROID

프랑켄 2017. 5. 6. 16:37

[빅터앙리] ANDROID 



Written by. 玄月




['I-ROBOT ' 21C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인공지능과 인체로봇은 22C를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NW22' 칩의 개발로 인공지능은 3살 어린아이의 지능을 넘어 스스로 성장하여 가장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20대~30대의 절정기를 수십년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NW22'이 개발된지 50년 뒤, 사람처럼 움직일 수있는 로봇'I-ROBOT'이 만들어졌다. 'I-ROBOT'은 21C에 상영된 영화의 제목을 따온 것으로 S.E사가 개발한 인공관절과 고강도 금속으로 만들어진 피부를 가지고 NW사의 NW22시리즈 칩이 내장된 'I-ROBOT'은 걷기, 뛰기, 포옹 등과 같은 인간과 같은 행동이 가능할 수 있게 제작되었으며 NW사와 S.E사의 역사적인 합병으로 N.S사가 설립되고 난 이후 24C, 현재는 N.S사는 인간처럼 성장할 수 있는 로봇, 'ANDROID'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앙리는 읽던 책을 덮었다. 'ROBOT의 개발과 역사'라는 고리타분한 책을 앙리는 빅터의 서재에서 발견한 뒤로 벌써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앙리는 책을 들고 빅터의 서재로 향하였다. 빅터의 서재문을 연 순간 앙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어제 자신이 열심히 치웠지만 방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책부터, 방바닥 여기저기 뒹구는 나사들과 전선들이 여기가 사람사는 방인지, 로봇연구소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조만간 룽게를 불러서 함께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방 안에 들어가 책장에 책을 꽂았다. 책장에는 액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앙리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오만하게 보일정도로 자신만만한 빅터와 달리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제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간 꿈꿔왔던 꿈을 펼치기 위해 N.S사에 입사하였다. 안드로이드 개발팀으로 입사를 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학회에서 빅터를 만나게 되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로봇과 인체의 결합'이란 논문을 쓴 그 앙리 뒤프레가 맞냐고 여러 차례 확인한 빅터는 자신을 이끌고 제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죽은 사람의 모든 기억을 칩에 입력하여 안드로이드로 부활시키겠다는 꿈. 어떤 의미에서는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드는 꿈에 그 자리에서 정중히 그와의 공동연구를 거절했지만 그는 회사까지 찾아와 자신과 함께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끈질긴 그의 요청에 반쯤 포기해 부탁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 후 그와 함께 일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그가 다름아닌 자신이 일하는 N.S사의 후계자이며 NW시리즈의 개발자로 현재 ANDROID개발의 총책임자였다는 것이었다. 이 사진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왠지모를 빅터와의 신분적인 거리감을 느꼈을 때 찍은 것이었다. 앙리는 몸을 돌려 빅터의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는 또다른 액자가 놓여있었다. 그 사진에는 자신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있는 빅터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자신이 찍혀있었다. 빅터와 함께 연구를 하면서 이리저리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스킨쉽에 그만하라고 몇 번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빅터는 투덜거림은 한 귀로 흘려보내기 일쑤였고 자신 역시 이런 애정표현은 처음이어서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기억상으로 이 사진을 찍었을 때가 그런 스킨쉽이 가장 많았던 때였다. 그 때의 추억이 떠오르자 앙리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요즘따라 빅터의 스킨쉽이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스퀸쉽이 한달전이었으니 줄어들었다는 말보다는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는 거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져버렸다. 요즘 일이 많고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앙리는 빅터는 빅터의 방을 나왔다. 그 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며 하루종일 보고 싶었던 사람이 들어왔다.


"빅터, 다녀왔어?"

"잘있었어, 앙리?"


빅터는 미소를 지으며 앙리에게 다가왔다. 앙리가 그를 안기 위해 팔을 벌렸지만 빅터는 못봤는지 스쳐지나가며 자켓을 벗었다. 앙리는 무안해진 팔을 다시 모으며 자켓을 받아들며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어쩌다보니 일찍 퇴근했어."

"그럼 저녁은?"

"저녁은 줄리아랑 먹었어. 너는?"

"나는 오늘 저녁 생각이 없어서."

"다쳤던 사람이 잘먹어야지."

"내일은 꼭 챙겨먹을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앙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빅터는 가볍게 싱긋하고 웃고는 씻는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앙리는 빅터의 자켓과 가방을 정리하고 주방을 둘러보았다. 요즘따라 빅터는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바쁘니까 커피만 한 잔하고 휘리릭 나갔지만 저녁은 일이 있지 않으면 함께 했는데 요즘은 빅터가 항상 밖에서 식사를 해서 주방을 쓸 일도, 같이 마주앉아 식사하는 것도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자신 역시 식사를 거의 안했다. 정확히는 못하겠다고 해야하나. 하루에 죽 한끼하면 많이 먹은 거였다. 입맛이 없는 것도 있지만 그 이상 먹으면 먹은 것을 다 토해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빅터에게 줄만한 것이 뭐 없나하고 냉장고를 뒤적거리는데 벌써 다 씻고 나온 빅터가 앙리의 뒤에서 말했다.


"뭐하는거야, 앙리?"

"자네가 먹을만한 간단한 간식거리가 없나 싶어서."

"간식거리는 무슨, 내가 앤가?"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같이 뭘 먹은 적이 없잖아."

"간식은 됐어. 먹는다면 차라리 이걸 마시지."


빅터는 냉장고 한 켠에 놓인 술을 꺼내들었다. 앙리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벌써부터 술을 마시려고? 그것도 안주도 없이?"

"조금만 마실게. 오늘 숙부님이랑 한바탕해서 좀 마셔야될 것 같아."


빅터는 식탁에 앉아 잔을 꺼내들었다.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입안에 가득찬 잔소리를 삼키고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빅터가 잔에 가득찬 맑은 액체를 한모금 마신 뒤에야 앙리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또 왜 싸웠나?"

"뭐 뻔하지. 언제 NW사를 제대로 이어받을건지 그걸로 한바탕 했지. 엘렌한테 넘기라고 하니까 엘렌에게는 이미 지분의 반을 넘겨줬으니 나머지 반은 나보고 이어받으라잖아."

"회장님으로써는 당연하지. 조카남매가 같이 회사를 운영하는 걸 보고 싶어하셨잖나."

"내가 잘도 경영을 하겠다. 그냥 엘렌이 NW쪽을, 줄리아가 S.E쪽을 온전히 물려받아서 둘이 같이 운영하면 잘할텐데 왜 나를 끼어넣으려고 하시는지."

"맨날 있는 싸움이잖아. 새삼스럽게 술을 마시면서 풀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자네가 못봐서 그래. 요즘 싸움의 마무리는 뭐 하나가 깨져야한다니까. 예전에 담배를 피우실 때는 재떨이가 날아오더니만 요즘은 금연하신다고 재떨이를 치우셔서 컵을 던지시지 않나. 재떨이잡는게 겨우 익숙해졌는데 요즘은 컵으로 바뀌어서 힘들어. 컵손잡이 때문에 잡기가 힘들단 말이야."

"아직 정정하시니까 그렇게 던지실 수 있는거지. 어떤 의미로 회장님이 아직 건강하시다는 걸 보여주는거 아니겠나."

"농담하지마, 앙리. 요즘 그래서 숙부님 사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살떨린단 말이야. 진짜 조만간 칼을 던지셔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빅터의 투덜거림에 앙리는 키득거렸다. 빅터의 숙부이자 N.S사의 총수이신 슈테판 회장은 겉으로는 투덜거리고 망할놈의 조카라고 욕을 하셔도 속으로 빅터와 엘렌 남매를 딸인 줄리아만큼이나 아끼셨다. 빅터 역시 그걸 느끼기에 숙부님이랑 투닥거릴 때에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경향이 있었다. 엘렌이랑 줄리아는 슈테판 회장의 양날개로 현재 활동 중이었다. 엘렌은 대외협력 및 마케팅을, 줄리아는 I-ROBOT의 디자인 쪽으로 일을 하며 슈테판 회장을 돕고 있었다. 빅터는 NW시리즈의 개발자로 슈테판 회장이 총수의 자리를 가장 물려주고 싶어하지만 빅터 본인은 그걸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어 툭하면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싸우기 일쑤였다.


"자네이야기 들어보니까 엘렌이랑 줄리아랑 마지막으로 만나고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네. 조만간 두 사람이랑 만날 약속을 한 번 잡아야겠어."

"당분간은 안 돼, 앙리."

"왜?"

"자네가 크게 다치고 퇴원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밖에 나갈려고 하나?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로봇시리즈를 개발하게 되면서 두 사람 모두 바뻐. 나중에 내가 약속잡아줄테니까 당분간은 연락하지마, 응?"

"....알았어, 빅터."


빅터 말로는 한 달 전, 밤늦게 퇴근하던 앙리를 차가 보지 못하고 그대로 치고 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너무 크게 다친터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선고까지 들었고 빅터는 세상을 잃은 듯한 느낌으로 앙리가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달전, 앙리는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빅터의 집에서 수액을 맞고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상처는 수술로 흉조차 남지 않게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눈을 뜬 앙리를 보자 빅터는 이제서야 일어났냐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의 사고가 빅터에게는 큰 충격이 되어 앙리는 집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겉으로 괜찮아보여도 아직 덜 회복되었을 수 있으니 안정기가 될 때까지는 집밖에 나갈 생각도 말라고 말하는 빅터에 앙리는 알겠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달째 앙리는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긴채 집에만 있었다. 빅터 다음으로 친했던 엘렌과 줄리아, 그리고 룽게를 오랫동안 보지 못해 마음에 걸려했었다. 시무룩한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말을 이었다.


"내가 최대한 빨리 약속잡아줄게, 앙리. 너무 섭섭해하지마, 응?"

"안 섭섭해, 빅터.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너무 걱정되서 그런거니까. 이해하지?"

"물론이야, 빅터."

"그럼 이제 들어가서 자자. 내일은 휴일이니까 푹 자자고."


빅터와 앙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빅터는 잘자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고 앙리 역시 제 방 침대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



"빅터, 이것만 약속해줘.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앙리...."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앙리, 다시 생각해봐."

"어차피 널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행복한 인생도 없었을거야."

"앙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러니..."

"빅터... 너와 함께 새 세상을 상상할 수만 있어도 난 행복해."

"앙리, 제발 사실대로 말해줘, 제발!"


빅터가 울고 있었다.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왜 그렇게 울고 있는거야, 빅터?




앙리는 찜찜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요즘따라 잠자리가 불편했다. 어젯밤 꿈에도 빅터가 울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매일밤마다 이상한 장면들이 보였다. 빅터의 후배 윌터의 머리를 든 장의사의 모습, 피묻은 플라스크 조각을 들고 있는 빅터, 창살을 사이에 두고 울고 있는 빅터, 그리고 사형대. 끔찍한 악몽들이 매일같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었다. 그와중에 스토리까지 이어지니 이런 악몽은 또 처음이었다. 이렇게 불쾌한 악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고민하려던 찰나 앙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아무 의미없는 꿈이리라. 단지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런 것 뿐이야. 앙리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을 깰 겸 부엌으로 나가 컵을 꺼내 물을 들이켰다. 시원한 물의 청량감에 머리가 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빅터의 방문이 열리고 기분이 안좋은지 미간을 찌푸린채 빅터가 나왔다.


"어라, 빅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앙리는 깜짝 놀라 시계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빅터에 앙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빅터는 앙리에게서 물병을 받아내 새 컵을 꺼내 물을 들이키고 대답했다.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엘렌이 안오면 가만 안둔다길래 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아침 먹을래? 어제 저녁도 일찍 먹었잖아."

"아침... 뭐, 먹고 가지. 난 회의 자료 좀 챙기고 있을게."


빅터는 몽롱한 상태에서 대답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앙리는 들뜬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빅터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에 평소에는 입도 안대는 빵과 베이컨 등을 꺼냈다. 커피를 내리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듬뿍 넣어 샐러드를 만들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팬에서 노릇하게 구운 베이컨과 계란을 각자 접시에 담아 올리고 냉장고에서 과일잼을 꺼내 올리자 때마침 빵이 토스트에서 툭하고 튀어올라왔다. 오랜만의 빅터와의 식사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앙리는 의자에 앉아 빅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방에서 나온 빅터가 아직 졸린건지 하품을 하며 빅터는 테이블 앞에 앉았고 앙리는 그의 샐러드 접시에 샐러드를 듬뿍 올려주고 입을 열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 

"너무 많이 담는거 아니야?"

"오늘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니까 든든하게 먹어야지."

"이렇게 일찍 가는 거 싫은데..."

"투정부리지 말고."


딱잘라 말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뚱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먹었다. 테이블 위에는 나이프로 썰고 음식물을 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런 귀한 시간을 이렇게 소비한다는게 앙리는 영 내키지 않았다. 무슨 말을 꺼내는 게 좋을까하고 고민하는데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을 툭 내뱉었다.


"나 어젯밤에 꿈을 꿨어."

"...꿈?"


앙리는 제 혀를 깨물고 싶었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주제에서 이걸.... 앙리는 슬쩍 빅터를 보았다. 커피잔을 든 손을 멈추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빅터의 모습에 다른 주제로 빠져나가기는 글렀다는 걸 직감했다.


"그게... 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니면 꺼내지도 않았겠지. 무슨 꿈인데?"

"그냥 악몽을 좀..."

"악몽?"

"무슨 감옥같은데에 갇혀있었는데 창살을 사이에 두고 자네랑 나랑 손잡고 있었어. 자네는 울고있고 나는 그런 자네를 달래고 있고... 자네는 사실을 말하라고 하고, 난 괜찮다고하는데... 진짜 이상한 꾸...."


챙그랑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테이블 위로 울렸다. 앙리는 깜짝 놀라 말을 멈추었다. 테이블에는 커피잔이 뒹굴았고 안에 들어있던 커피가 쏟아져 있었다. 


"빅터, 괜찮아? 커피에 데인거 아니야?"

"괜찮아... 손이 미끄러워져서..."

"데이지는 않았어?"

"테이블에만 쏟았어. 놀라게해서 미안."


빅터는 급히 테이블을 닦아냈고 앙리는 깨진 유리조각을 치웠다. 문득 손에 들린 조각을 보니 깨진 컵은 다름아닌 빅터와 동거하게되면서 처음 산 머그컵이었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 괜스레 씁쓸해졌다. 그러나 앙리는 그런 마음을 다독이고 입을 열었다.


"여긴 내가 정리할게."

"아니야, 내가 정리할게."

"괜찮아. 자네는 이제 갈 준비해야지."

"그래도..."

"나도 정리하고 잠시 나갔다와야겠군."


순간 빅터의 손이 굳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앙리를 바라보았다.


"나가다니?"

"서점에 가보려고. 새로 나온 신간책 있는지 보고 나간김에 깨진 컵도 사오려고. 집에 있는 책들은 이미 다 읽어서..."

"안돼."


딱잘라서 말하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차근차근 대답했다.


"어디 멀리 가는거 아니잖아, 빅터. 바로 집 앞 서점에만 갔다올게."

"그 서점, 자네가 입원했을 때 없어졌어. 갈려면 시내까지 깊이 들어가야해. 가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하려고."

"잠깐만 다녀올게. 이렇게 집에만 있어서 제대로 걸어본지 오래란 말이야. 잠깐 나갔다오면서 다리운동도 하고... 운동하면서 회복하면 내 몸도 빨리 나을거 아니야."

"그래도 안돼."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크게 다쳤다지만 사람을 나가지도 못하게 막고. 보호하는것도 정도가 있지, 이정도면 과보호였다. 빅터는 원래 티는 안내지만 자신을 싸고 도는 경향이 있었지만 사고 이후 그 경향이 좀 심해졌다. 앙리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오랜만에 아침을 함께 보내는데 이런 작은 일로 빅터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책정도야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그만이었다. 집에 있는 유일한 PC는 빅터의 방에 있는 작은 노트북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마저 빅터가 안에 중요한 파일들이 있다면서 작동칩을 가지고 있어 PC를 쓸 수가 없었다. 그에 앙리는 빅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럼 오늘만이라도 자네 노트북 쓸 수 있게 해줘. 인터넷으로 주문할게."

"그것도 안돼."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답답한 마음에 결국 앙리는 언성을 높였다. 언성을 높인 앙리와 달리 빅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은 책이 뭔데? 내가 들어오는 길에 사서 올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왜 이렇게 나를 싸고 도는 건가? 내가 아무리 큰 사고를 당했다지만 한달동안 집에 갇혀 살아야될 이유는 없어!"

"갇혀 살다니. 말이 심하잖아, 앙리."

"자네 행동은 어떻고? 엘렌들이랑 연락하지 마라, 집에서 나가지도 마라, 인터넷도 하지 마라. 외부와 단절된 채로 이건 감금이나 다름없잖아!"

"그만해, 앙리."

"내게 뭐 숨기는 거라도 있는거야? 그게 아니면 왜 이러는거야?"

"그만해."

"자네가 독선적인 경향이 있는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잖아. 내 어디가 불안해서 이러는거야? 정말 내가 다칠까봐 불안한거야, 아님 내가 꿈에서 본 것 처럼 살인이라도 할 것 같아서 불안한...."

"그만해, 앙리 뒤프레!!"


빅터는 고함을 치며 앙리를 노려보았다. 한참 그를 바라보더니 빅터는 한숨을 쉬고 이마를 짚으며 돌아섰다.


"그만하자, 앙리.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빅터, 난 아직 자네의 대답을 듣지 못했어!"

"그만해, 앙리. 날 화나게 만들지 마. 난 이제 나갈 준비해야겠어."


빅터는 날카롭게 대답하며 그대로 뒤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앙리는 다리의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 많이 남은 아침식사가 식어가고 있었지만 앙리는 먹고 싶지 않았다. 몰아치는 섭섭한 마음에 앙리는 입술만 깨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걸까. 왜 저렇게 빅터는 자신을 안에 놔두고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은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면 무엇이 두려워 이러는 것일까... 고민하던 앙리는 욕실을 살폈다. 안에서는 샤워기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이에 앙리는 빅터의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빅터가 챙겨둔 서류가방이 있었다. 앙리는 서류가방을 뒤적거렸다. 뒤를 연신 확인하며 서류가방을 뒤지던 앙리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앙리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아닌 PC 작동칩이었다. 앙리는 작동칩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빅터가 없어진 걸 알게된다면 필시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순간 앙리의 눈에 서재 구석에 있는 시계가 보였다. 책상에 굴러다니는 드라이버로 시계의 뒷편을 뜯어내고 안에 있는 작동칩을 꺼내 빅터의 가방안에 넣었다. 그리고 가방과 시계를 원래 있던 자리에 놔두고 급히 방을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꺼내 펼쳤다. 책을 펼치자마자 빅터가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빅터는 앙리를 물그러미 쳐다보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앙리의 눈은 책을 보고 있었지만 온 신경이 빅터의 서재로 쏠렸다. 뭔가 달라진 것을 눈치채지는 않을까...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빅터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나왔다. 빅터는 현관으로 향하며 앙리에게 말했다.


"갔다올게, 앙리. 그리고 절대 밖으로 나가지마."

"알았어, 빅터."


순순히 대답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를 바라보았다. 앙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거짓웃음을 지으려니 입꼬리가 떨리는 것 같았지만 앙리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대답했다.


"안 나갈거야, 빅터.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아까전에 소리친 건 미안해, 앙리. 정말 걱정되서 그런거야."

"나도 알아."

"신간책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신간 의학 서적으로 사올까?"

"뭐... 의학이나, AI관련 정보 신간 있으면 사줘."

"알았어. 그럼 갔다올게."


빅터는 앙리에게 웃으며 집을 나섰다. 앙리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다 문이 닫히고나서 소리없이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앙리는 비틀거리며 소파에 앉아 축 늘어졌다.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앙리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앙리는 천천히 일어나 빅터의 방으로 향하였다. 서재는 빅터의 서류가방이 없어지고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앙리는 PC의 앞에 앉아 작동칩을 넣었다. 전원을 켜고 앙리는 마우스를 잡아 인터넷을 켰다. 너무 오랜만에 잡아서인지 마치 살아서 처음으로 PC를 써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앙리는 가볍게 웃었다. 검색창에 앙리는 더듬더듬 키워드를 쳤다. [VICTOR FRANKENSTEIN]. 빅터의 프로필 밑에 있는 뉴스 기사들을 천천히 훝어보았다. '새로운 NW시리즈의 개발', 'ANDROID의 개발 현황', 'N.S사의 총수자리를 거부하는 후계자', '칩거중인 N.S사의 후계자'.... 다 빅터가 이야기해주었던 것들과 관련된 기사들 뿐이었다. 딱히 크게 이상한 점이 없었다. 그외에 [ELLEN FRANKENSTEIN], [JULIA STEPHAN] 등 빅터의 관련 인물들에 대해 쳐보았지만 이렇다할 것들이 없었다. 그 때 앙리는 문득 떠오르는 키워드를 천천히 입력했다. [HENRY DUPRE]. 앙리는 떠오르는 키워드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HENRY DUPRE, 23xx. x. x.~ 23xx. x. x.] 앙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뭔가... 왜 사망일이 입력되어 있는거지... 앙리는 사망일로 적혀진 날짜를 계산했다. 불과 지금으로부터 1년전이었다. 이에 앙리는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1년전에 죽었다고 되어있는 것인가? 앙리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려 밑에 있는 뉴스기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앙리는 뉴스 기사들을 보고 떨리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앙리는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수많은 뉴스기사 중 하나를 클릭하였다.



-



빅터는 뻐근한 어깨를 주므르며 빌라 안에 들어섰다. 오늘 역시 힘든 하루였다. 아침회의는 역시나 N.S사의 후계 문제에 대한 회의였고 숙부님을 필두로 모두가 그에게 후계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압박했지만 그는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숙부님은 그게 꽤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엄청난 양의 서류를 주었지만 빅터는 오늘만큼은 그 서류를 나몰라라하고 퇴근해버렸다. 그의 손에는 새로나온 신간들이 가득했다. 앙리에게 아침부터 화를 낸 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려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꽤 많은 양을 책을 고르게 되었다. 빅터는 책들을 받고 미소를 지을 앙리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얼른 앙리에게 선물을 건네주고싶어 빅터는 빠르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서며 큰소리로 앙리를 불렀다.


"앙리!"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고 조용한 집안에 빅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이렇게 집안이 조용한거지. 혹시 자나... 빅터는 거실을 보았다. 거실에는 앙리가 멍하니 앉아있었다. 넋이 나간 듯이 멍하게 앉아있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픽하고 웃었다. 저렇게 무방비한 상태의 앙리는 실로 오랜만이어서 빅터는 그저 웃으며 앙리에게 다가갔다.


"앙리, 다녀왔어."


멍하니 있던 앙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빅터를 바라보았다. 앙리의 얼굴을 보는데 빅터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앙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에 빅터는 가방과 책들을 내려놓고 앙리를 바라보았다.


"앙리, 왜그래? 무슨 일있어?"


앙리는 빅터를 바라보다 그의 셔츠자락을 잡았다. 빅터는 움찔했지만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앙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빅터..."

"왜?"

"난.... 누구야?"


순간 빅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빅터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누구긴... 자네는 내 친구 앙리 뒤프레지."

"거짓말..."


앙리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빅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빅터 프랑켄슈타인. 난 누구야?"

"앙리, 오늘따라 왜 그래? 자네는 내 친구 앙리 뒤...."

"거짓말 하지마!!"


앙리는 빽하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앙리 뒤프레는 죽었잖아... 그것도 1년 전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앙리는 소파 옆에 숨겨두었던 PC를 꺼내 그의 앞에 던졌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PC 모니터에는 뉴스 기사들이 떠있었다. '앙리 뒤프레, 연구를 위해 20명 살해.', '살해된 이들 모두 머리가 잘려.', '협회 공식 선언, 앙리 뒤프레 영구 제명.', '앙리 뒤프레 사형 선언' 앙리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PC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게 뭐야? 난 여기있는데 앙리 뒤프레는 죽었어. 그것도 20명을 살해한 살인마로 사형선언을 받고 1년 전에 죽었어! 난 뭐야? 난 죽은 앙리 뒤프레의 망령이야? 내 정체가 도대체 뭐냐고!"


빅터는 천천히 떨어진 PC를 들어올려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무감각한 눈으로 기사들을 보던 빅터는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쯧하고 혀를 찼다.


"벌써 세 번째군."

"뭐?"

"네가 이런 질문을 한 횟수이자 널 리셋한 횟수야."


빅터는 PC를 휙하고 던졌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이 목 뒤를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밖으로 나가고나서 나한테 묻더군. 자신은 뭐냐고. 그래서 리셋해버렸어. 두 번째는 앙리 뒤프레의 주변인물들과 연락을 하고나서 자신이 무엇인지 물었어. 그때 역시 리셋해버렸지."

"그게... 그게 무슨..."


앙리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빅터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해서 세 번째 앙리 뒤프레. 네가 태어난거야. 근데 이번에는 아예 그런 쓸데 없는 행동이랑 쓸모없는 질문같은거 하지 못하게하려고 아예 메모리칩을 포맷시켜버렸어. 포맷을 했는데도 네가 제일 빨리 물어보는구나. 꿈을 꾸고 너 자신에 대해 스스로 호기심을 가질 줄이야."


말을 끊낸 빅터는 앙리를 쳐다보았다. 빅터와 눈을 맞춘 순간 앙리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평소의 빅터의 눈이 아니었다. 비록 예전처럼은 아니었지만 그는 애정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곤 했지만 지금의 눈은 아니었다. 아무런 애정도 없이 마치 타인을 보는 듯이 매마르고 차가운 눈빛에 앙리는 몸이 덜덜 떨렸다. 빅터는 그런 눈으로 앙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회에서 앙리 뒤프레는 20명이나 살해한 미친 살인마지만 아니야. 그건 잘못된 사실이야. 20명이나 죽인 건 장의사 프란츠놈이었어. 내 연구를 위해서는 죽은지 얼마안된 사람의 시신이 필요했어. 그래서 장의사에게 죽은지 얼마안된 사람의 시신을 가져오면 후하게 쳐주겠다고 했지. 그런데 설마 살인을 할줄이야... 내가 제시하는 돈에 눈이 멀어 그자는 사람들을 죽이고 돈을 받았지. 바보같이 난 그 사실을 몰랐는데 마지막 20번째 희생자로 윌터의 머리를 내밀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되었어. 이놈이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내게 돈을 받아냈구나. 나는 그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서 실험관으로 내려쳐 죽였어. 그 때 옆에 있던 앙리가 날 기절시키고 내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거야. 앙리에게 자수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고 결국 나대신 사형을 선고받고 죽었어."


끔찍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빅터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저렇게 태연하게 이야기 할 수가 있을까. 앙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지?"

"내가 말했잖아. 이게 '세 번째'라고. 세 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느낌이 들겠어?"


빅터는 코웃음을 치고 대답했다. 그에 앙리는 참을 수가 없어 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빅터는 태연하게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앙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궁금했겠지? 요즘따라 왜 스킨쉽을 하지 않는지?"


앙리는 움찔했다.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을 꿰뚫은 빅터의 질문에 앙리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헛웃음을 내며 대답했다.


"넌 진짜가 아니잖아. 진짜도 아닌게 어디서 진짜 앙리 행세를 하고 내게 사랑을 받으려고 들어?"

"그럼..... 그럼 난 뭐야..."


앙리는 빅터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사랑했던 그의 냉소적인 모습을 도저히 볼 용기가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빅터는 천천히 앙리의 턱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한마디씩 또박또박 대답했다.


"내가 만든 ANDROID. 내가 사랑한 앙리와 나의 연구결과물."


순간 앙리의 머릿속에 쿵하고 뭔가 치는 것만 같았다. 빅터의 멱살을 잡은 앙리의 손이 덜덜 떨렸다. 가장 알고 싶었던 진실이었지만 더 이상 들었다가는 머릿속이 폭발할 것 같았다. 쉽게 말하면 과부하가 될 것 같았다. 갑자기 휘몰아치듯 다가오는 현실에 앙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빅터는 앙리의 손을 떼내며 대답했다.


"난 앙리가 죽은 후에 그를 되살릴 방법을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이제까지 연구했던 죽은 사람의 모든 기억을 칩에 입력하여 안드로이드로 부활시키는 연구를 시행했지. 강한 전력으로 죽은 앙리의 뇌에 있는 기억을 전력으로 전환시키고 PC로 연결하여 그대로 칩에 넣었어. 그리고 앙리가 미리 만들어놓은 특수 I-ROBOT이자 초기 ANDROID에 삽입했지. 물론 그대로 삽입했다가는 앙리가 자신이 살인마로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기억할 것 같아서 조금 조작했지. 연구실에서 퇴근하다가 큰 사고를 당해 쓰러졌다. 상처는 요즘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다 치료했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그럼 꽤 그럴듯하잖아. 그렇게해서 네 전 모델들과 네가 이렇게 존재하게 된거지." 


말이 끝나자마자 빅터는 앙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앙리가 피할 틈도 없이 빅터의 입술이 앙리의 입술과 맞닿았다. 앙리는 화들짝 놀라 발버둥쳤지만 앙리의 턱을 붙잡은 빅터는 억지로 앙리의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빅터의 혀가 들어왔다. 치열을 훝고 도망치는 혀를 감아올리며 빅터의 키스에 앙리는 자신도 모르게 옅은 신음을 흘렸다. 창조주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첫키스는 씁쓸하면서 달콤했다. 그의 키스에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이 풀리고 서서히 눈이 감겼다. 앙리는 칩에 저장된 앙리의 기억으로 인해서인지 아님 제 본능에 인해서인지 모를 열망을 느끼며 빅터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 순간,


달칵.


앙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 커졌다.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빅터는 태연하게 앙리에게서 떨어져 방금전까지 키스하던 입술을 불쾌하단듯이 훔쳤다. 설명을 원하는 앙리의 눈을 바라본 빅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ANDROID를 만들면서 저주받은 사랑이 앙리를 망쳤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앙리를 잃었다는걸 결코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내가 해놓은 장치가 하나 있지. 키스를 하면 리셋버튼이 작동되는 것. 그리고 지금 키스로 네 리셋이 시작된거야."


빅터의 설명에 앙리의 눈동자가 미친듯이 흔들렸다. 안드로이드가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 앙리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을터였다. 앙리는 너무 놀라고 슬퍼 제대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빅터를 붙들던 한쪽 팔이 덜컹하고 힘을 잃고 떨어졌다. 다가오는 최후에 앙리는 창조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왜......"


이유라도 듣고 싶었다. 왜 자신이 이렇게 없어져야 하는지. 제대로된 질문이 아니었지만 그 속뜻을 간파한 빅터는 앙리와 눈을 맞추고 대답했다.


"앙리가 아닌 안드로이드는 필요없어. 이제 작별이야, 크리처(CREATURE)."


빅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앙리를 본따 만든 부드러운 갈색빛 눈동자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저 초기화모드 안드로이드에 지나지않는 크리처의 육신은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모두 잃고 쿵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쳤다. 빅터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크리처를 내려다보았다. 한참동안 크리처를 보던 빅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육신을 끌어안았다. 빅터는 크리처를 안은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너머로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았다. 그 때 한줄기의 노을이 빅터의 집으로 들어왔다. 붉은 노을색을 머금은 빛방울이 빅터의 볼을 타고 흐르며 반짝였다.




[빅터크리처] CODE NAME 'HENRY DU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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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바 제네바


Written by. 玄月




밤을 넘어 깊은 새벽이 된 시간. 구석진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 바 제네바에서 앙리는 혼자 남아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스터는 개인적인 일로 앙리에게 가게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비웠고 금요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일찍 가게를 떠났다. 앙리는 의자와 테이블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잔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앙리는 가게에서 일하는 시간 중에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때는 유일하게 이 때 뿐이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시작하게된 바텐더 아르바이트는 벌써 3년이 넘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냈지만 생활비는 혼자 힘으로 벌어야했기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다가 오게 된 곳이 바 제네바였다. 페이가 꽤 세길래 힘들고 고된 일인가 싶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마스터는 가끔 속을 알 수 없는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긴 했지만 좋은 사람이고 칵테일을 만드는 건 마치 시약만드는 법과 비슷해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잔뜩 취한 손님이나 질 안좋은 손님이 오면 마스터가 제재를 가했기에 난감한 상황을 만드는 손님들도 별로 없었다. 앙리는 잔을 정리하다 문득 바 앞에 있는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오늘 그 손님이 오지를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금요일 자정이 지나고 손님들이 어느정도 빠져나간 시간이 되면 그가 찾아왔다. 기다란 코트를 벗어 옆에 있는 의자에 대충 걸쳐놓고 칵테일을 주문했다. 칵테일을 만들고 있으면 그는  넥타이를 끌어내고 깔끔하게 입은 셔츠단추 두어개를 풀고 칵테일을 만드는 자신을 지켜보았다. 주문하는 칵테일은 손님의 기분에 따라 달랐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보드카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주문했었다. 만들어진 칵테일을 내놓으면 그는 칵테일의 색과 향을 위심히 관찰하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고는 했다. 술에 대한 지식도 많고 입맛도 까다로운 손님이었기에 처음에는 주문을 받을 때 많이 긴장했었다. 잘못 만들면 잔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 다른 손님들에게까지 인정받을정도로 실력이 늘어난 것도 그의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이야기하면 재미있었다. 직업이 의학쪽으로 관련이 있는건지 생명과 의술에 관하여 토론하면 나도 모르게 그의 말에 빠져들어 시간가는 줄을 모를정도였다. 가끔 공학 쪽이야기가 나오면 이해하느라 애를 먹긴 하지만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은 들리지 않는 걸보면 많이 바쁜 모양이었다. 이런 적이 없었던 사람인지라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앙리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잔까지 정리를 마친 앙리는 옷을 갈아입고 가게 열쇠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문에 걸려있는 'OPEN'팻말을 돌리려던 순간 벌컥하고 문이 열렸다.

"이런... 내가 너무 늦은 모양이군."

익숙한 체격과 익숙한 목소리. 앙리를 번쩍 고개를 들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였다. 그에 앙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따라 늦으셨네요."
"지금 주문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겠지?"

앙리는 시계를 보았다. 문을 닫아야하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단골손님에게 서비스로 추가주문 받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앙리는 문가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단골손님 한 분 주문받기에는 괜찮습니다."

앙리의 대답에 빅터는 미소를 지으며 가게에 들어섰다. 앙리는 행여 다른 불청객이 올까 문을 닫고 CLOSE로 팻말을 바꾸고 바를 제외한 나머지 불을 모두 껐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 앞치마를 입으며 말했다.

"원래 옷을 갈아입고 칵테일을 만들어야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가볍게 앞치마만 하겠습니다."
"늦은 내 잘못이니까 신경쓰지 말게."
"주문은 뭘로 해드릴까요?"

빅터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바를 쳤다. 그리고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마티니로 부탁하지."
"예?"

앙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 모습에 빅터을 보며 다시 말했다.

"마티니, 어렵겠나?"

마티니는 간단한 레시피이지만 누가 만들고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칵테일이었다. 가게마다 고유의 마티니를 가지고 있고 바 제네바에도 바 제네바의 마티니가 있었다. 앙리는 마티니 주문이 들어오면 항상 마스터에게 부탁했고 연습으로 몇 번 만들어본게 전부였다. 앙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빅터를 바라보고 대답했다.

"바 제네바의 마티니가 아니어도 괜찮으신가요?"
"상관없네."
"그럼 마티니로 드리겠습니다."

앙리는 진열장에서 술을 골랐다. 생각해보니 빅터에게서 진을 베이스로 하는 주문은 처음받아보는 것이었다. 더욱더 긴장한 앙리는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드라이 진과 드라이 베르무트를 정확한 양에 맞춰 넣고 쉐이킹하고 칵테일잔에 따른 뒤 그린 올리브를 넣었다. 간단해 보이는 레시피와 제조법이었지만 술의 비율과 쉐이킹 몇 번으로도 맛이 바뀌는 마티니인만큼 앙리는 긴장된 상태로 잔을 내놓았다.

"마티니입니다."

빅터는 차분히 잔을 들어 마티니를 보았다. 날카로운 빅터의 눈에 앙리는 절로 손에 땀이 찼다. 그리고 빅터가 마티니를 한 모금 들이켰다. 바에서는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 순간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웃었다? 잘했다면 잘했다는 칭찬, 못했으면 못했다는 잔소리 대신 처음보는 빅터의 반응에 어리둥절해진 앙리는 눈만 멀뚱하게 떴다. 마티니와 앙리를 번갈아보던 빅터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딱 자네같군."
"무슨 말씀 이신지?"
"클래식 마티니. 달지도, 쓰지도 않은 마티니 레시피의 정석, 그대로의 맛이야. 정도가 아니면 가지 않는 자네와 같은 맛이로군."

빅터는 말에 앙리는 더욱 혼돈스러웠다. 그래서 잘만들었다는 건가, 못만들었다는 건가. 감이 잡히지 않아 앙리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빅터는 남은 마티니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빈 잔을 앙리에게 건내며 말을 이었다.

"마티니가 바의 얼굴이라는건 자네도 알지?"
"물론입니다."
"조그마한 배율의 차이로 판가름나는 마티니를 자네는 딱 정석으로 만들어냈어. 자네의 이미지와 똑같아. 길이 아니다싶으면 절대로 다른 곳으로 가지않는 그 고집. 자네랑 이야기할 때마다 느낀 거였지만 자네의 그 모습이 술에까지 들어있는군. 자네도 제법이야. 고작 3년밖에 안됐으면서 술에 자기 자신을 넣을 줄도 알고."

빅터의 칭찬에 앙리는 환하게 웃었다. 그런 앙리의 모습을 보며 빅터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앙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빅터가 입을 열었다.

"추가 주문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그럼 마티니 한 잔 더 부탁하지."

빅터의 추가 주문에 앙리는 기쁜 마음으로 마티니의 배율을 맞췄다. 마치 합격을 받은 듯한 시험생의 마음같았다. 엄격한 교수님 앞에서 이론을 증명한 것 같은 짜릿한 기분에 앙리는 한껏 들떴다.

"아, 그리고."

빅터의 말에 앙리는 술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빅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티니 만들고나서 어스퀘이크도 부탁하지."
"어스퀘이크말인가요?"

빅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는 일단 마티니를 한 잔 만들어 빅터에게 건내고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어스퀘이크라... 빅터는 평소에 주문을 할 때면 무조건 한 잔씩만 주문했다. 칵테일을 다 마시지 않고 다른 칵테일을 마시는 건  칵테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평소에 하지 않은 방식이었는데 오늘따라 이상했다. 한 번도 주문하지 않은 진베이스 칵테일에 한 번에 두 잔씩 주문하고, 게다가 평소보다 훨씬 늦은 방문시간까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단 받은 주문부터 내야했다. 이 역시 진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었다. 드라이 진과 위스키, 압센트를 넣고 쉐이킹하여 만들어진 어스퀘이크를 빅터의 앞에 내밀었다.

"어스퀘이크 나왔습니다."
"고맙군."
"원래, 한 번에 두 잔씩 주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헌데 오늘은 왜?"
"내가 마시려는 게 아닌데?"
"예?"
"이건 내가 자네에게 사는 거니까."

빅터는 앙리가 내민 잔을 다시 앙리에게 주었다. 앙리는 그 잔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걸... 사신다고요?"
"응."
"저에게....?"
"그렇네. 무슨 문제라도?"
"어... 그게...."

어스퀘이크는 47도나 되는 무시무시한 도수를 자랑하는 술이었다. 술이 약한 사람이 먹으면 눈 앞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릴 정도라서 어스퀘이크(Earthquake)라고 불릴정도면 말다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겠지만 바텐더로 일하는 앙리의 주량은 혀를 찰정도로 작았다. 마스터에게서 칵테일을 배울 때 그렇게 주량이 작아서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들을 정도였다. 가끔 이렇게 손님들이 자신들이 사는 거라면서 칵테일을 건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영업중이라던가 마스터가 보고있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잔은 안드냐는 듯이 쳐다보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앙리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영업 시간에는...."
"어차피 정식 영업시간 아니지 않나?"
"마시면 마스터께 혼이...."
"마스터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줬다고 하면 그러려니 할테니까."

빅터가 잔을 들어올렸다. 앙리는 정말 이 상황을 어떻게 피해가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움직이지 않는 손을 억지로 움직여 잔을 들어올렸다. 그제서야 빅터는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올려 마티니를 마셨다. 빅터가 칵테일을 마실 때 슬쩍 버리려던 앙리의 계획은 마티니를 마시면서도 계속 앙리에게 꽂혀있는 빅터의 눈길에 무산이 되어버렸다. 마티니를 반쯤 마신 빅터가 말했다.

"안 마실텐가? 그럼 내가 꽤 민망해지는데..."

마시라는 무언의 압박에 앙리는 미칠 것 같았다. 독배를 든 느낌이 이런 것일까. 앙리는 자신을 향해 있는 빅터의 눈빛에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었다. 결국 앙리는 눈을 질끈 감고 술을 들이켰다. 식도를 태우는 강한 도수와 알코올에 앙리는 눈이 번쩍 뜨였다. 하필 어스퀘이크 양은 많기는 왜 이리 많은 건지.... 앙리는 꾸역꾸역 술을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마자막 한 모금까지 마시고 앙리는 천천히 잔을 내렸다. 입 안이 타는 것 같고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다행히 구토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취기가 확 돌았다. 얼굴에서 열이 화끈하고 느껴졌고 몸에서 천천히 힘이 빠졌다. 그러나 앞에는 빅터가 있었다. 손님 앞에 추태를 보일 수없다는 일념에 앙리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폈다.

"앙리, 괜찮나?"

걱정스럽게 묻는 빅터의 말에 앙리는 괜찮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한 쪽 다리의 힘이 풀썩 빠져버렸다. 간신히 바를 잡아 넘어질뻔한 위기를 이겨냈지만 서서히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앙리, 자네 취했는가보군."

빅터가 앙리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듬직한 빅터의 품에 앙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기댔다.

"죄....송....합니다.....이..렇...게 추태를...."
"쉬이... 괜찮아, 앙리. 이제 집에 가야지."

아, 맞다, 집.... 앙리는 끊어지려는 정신줄을 붙잡으려고 했다. 바를 다시 정리하고, 불도 끄고 문도 잠궈야하는데... 하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게다가 빅터의 품이 너무나 따뜻했다. 이대로 기대어서 잠들고 싶었다. 그 때 앙리의 폰이 울렸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 전화하는 사람이라면 마스터일 것이었다. 앙리는 눈을 꿈뻑거리면서 폰을 찾았다. 그러나 앙리의 폰은 이미 빅터의 손에 넘어간지 오래였다.

"여보세요."

빅터가 받으면 마스터가 놀랄텐데... 천천히 감기는 눈에 앙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받기 힘들정도로 술기운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간간히 마스터와 빅터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왜....전화 받아...]
"......취했어."
[야 임마! 애한테.....]
"뒷정리는 내가......"
[.......뭐하는 짓거리......]
"오늘만 빌릴게........ 형."
[미친 놈아! 그만......]

형이라니.... 누구를 말하는거지? 맑은 소리와 함께 전화가 꺼졌다. 그러나 다시 울리는 폰에 빅터는 받지도 않고 아예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앙리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조각이 되기에는 너무 부분부분 떠다녔다. 앙리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 모습을 본 빅터는 깊게 미소를 지었다.

"깼나, 앙리?"
"누..구....."
"아, 마스터."
"정리....마무리....."

어눌하게 말하는 앙리의 모습이 귀여워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제 딴에 뒷마무리를 지어야한다고 팔을 허우적거리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빅터는 앙리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졸리면 자, 앙리."
".....집에...."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고 가자, 응?"
"우리....집?"
"그래, 우리집....."
"안 돼... 폐..... 끼치면...."
"괜찮아, 앙리. 우리 집에서 자자, 응?"
"안되는데..."
"괜찮아."
"안 돼..."
"부담갖지 마, 앙리."

귓가에 나긋나긋하게 속삭이는 빅터의 설득에 앙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빅터는 깊게 미소를 짓고 앙리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3년이나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큰 형이 운영하는 바를 갔더니 처음보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한껏 긴장해서 칵테일을 내놓는데 나름 열심히 하려는 것도 보이고 손재주도 있어보여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형은 그 모습을 보더니 답지 않게 왜 그렇게 잘해주냐 물었고 그에 그저 호기심이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단순했던 감정은 호기심을 넘어갔다. 대화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차분함과 따스함, 그리고 환하게 웃는 미소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마다 그를 보기 위해 찾아갔다. 그는 그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이목을 끄는 사람이었고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한 사람이었다. 종종 질나쁜 놈들이 속셈이 보이는 레이디킬러 칵테일을 시켜 앙리에게 전해주는 일이 있었다. 그 때마다 형을 찔러 그 술잔을 막았고 형에게 알바생 간수 잘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형은 그저 그런갑다하면서 넘어갔겠지만 난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행여 누가 그를 채가면 어떻게 하나, 그가 누굴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일주일이 근심과 걱정이었고 금요일에 앙리가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어주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가 혼자 있는게 불안하다면 혼자가 아니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내가 그의 옆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을 노렸다. 형이 자리를 비우고 앙리 혼자 가게를 봐야하는 오늘을. 일부러 손님이 없을 폐장시간에 맞춰가 그에게 도수 강한 술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술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그는 이제 제 손에 들어왔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제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빅터는 천천히 앙리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때 앙리가 빅터의 품을 파고들었다. 빅터의 심장이 두근거렸고 빅터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앙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빅터는 앙리를 부축했다. 그리고 짐과 열쇠를 챙겨 앙리를 차로 데려갔다. 안전벨트까지 매어주고 나서 빅터는 바 제네바의 문을 잠그고 운전석에 올라앉았다. 옆에 얌전히 자고 있는 앙리의 모습을 바라보던 빅터는 앙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차를 몰았다 . 자신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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