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이 깔린 늦은 밤.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있었고 앙리에뜨 역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저녁에 빅터가 건내준 약효과가 생각보다 셌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감겨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잠들어있던 앙리에뜨가 살짝 움찔거렸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찬기에 앙리에뜨는 더듬거리며 이불을 끌어와 목까지 덮었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지려던 찰나 또다시 찬기가 가득한 뭔가가 어깨를 감싸았고 앙리에뜨는 몸을 웅크렸다. 정체불명의 찬기는 천천히 앙리에뜨의 머리와 몸을 쓸어내렸고 그에 앙리에뜨는 눈가를 찌푸리고 말했다.
"빅터.... 추워.... 그만해"
아직 잠에 취해있는 몸에 앙리에뜨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거부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에 뒤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강한 악력이 앙리에뜨의 어깨를 바술 기세로 잡더니 그녀를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캉하고 따뜻한 뭔가가 앙리에뜨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왔다.
"......빅터가 누구지, 앙리에뜨?"
나른하면서 스산한 목소리에 앙리에뜨는 화들짝 놀라 반쯤 떴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앙리에뜨가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있기 전, 뒤에 있는 누군가가 앙리에뜨를 거칠게 돌려눕혔다. 상대를 보는 순간 앙리에뜨는 숨을 들이켰다. 풀어헤친 머리, 우람한 체격, 거친 제스처, 그리고 때로는 짐승보다 날카롭고 악마보다 더한 잔혹함으로 물들어 빛나는 눈.
"하.......이..드?"
앙리에뜨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하이드는 비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앙리에뜨."
"하이드... 당신이 왜..."
"내가 왜? 여기 있는게 문제라도?"
하이드의 대답에 앙리에뜨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검게 때가 탄 가구들과 넝마가 되기 직전의 하얀 커튼이었다. 그 순간 앙리에뜨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프랑켄슈타인성의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보이는 가구들은 모르는 가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가구들... 그 가구들이 자리잡은 방을 빠져나오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쳤던가. 이곳은... 다름아닌 레드렛에 있던 앙리에뜨의 방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이런이런. 앙리에뜨. 지난 밤 레드렛에서 내가 너를 샀다는 걸 잊었나? 몸값도 이제껏 제시된 적이 없는 큰 값으로 지불했건만 그걸 잊어버린건가?"
하이드는 키득거리며 앙리에뜨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앙리에뜨의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둥근 곡선을 쓸어내렸다. 애무하듯이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하이드가 돌연 앙리에뜨의 목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숨통을 막혀버린 앙리에뜨는 그의 손을 떼내려 발버둥쳤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목을 더욱 세게 조르며 그녀와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앙리에뜨, 다시 한 번 묻지. 빅터가 누군가?"
"하,억!"
"감히 내 앞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불러?"
".....그....."
"말해봐, 앙리에뜨. 언제인거지? 언제 나 몰래 다른 손님을 받은거야!"
악에 받친 하이드가 있는 힘껏 앙리에뜨의 목을 졸랐다. 그에 앙리에뜨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있었고 목을 넘어가지못한 타액이 입가에 흘렀다. 더이상 숨을 쉬지못하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앙리에뜨는 버둥거렸다. 한참 앙리에뜨를 노려보던 하이드가 앙리에뜨의 눈이 돌아가기 직전에 그녀의 목에서 손을 뗐다. 앙리에뜨는 콜록거리며 부족한 산소를 들이마셨다. 방안은 헉헉거리는 앙리에뜨의 숨소리와 씩씩거리는 하이드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천천히 앙리에뜨의 숨소리가 가라앉았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앙리에뜨가 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이드가 앙리에뜨의 턱을 잡아 들어올렸다.
"마지막 경고다, 앙리에뜨. 넌 내 것이야. 나 이외에 다른 놈을 받는다면 그 땐 그놈은 물론, 너 역시 내 손으로 죽여버릴테다."
광기가 일렁이는 하이드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하이드는 앙리에뜨를 놓아주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그의 모습에 앙리에뜨의 몸이 덜덜 떨렸다. 두려움에 떠는 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에게서 등지고 눕자 하이드는 뒤에서 앙리에뜨를 끌어안았다.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어깨와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잊지마라, 앙리에뜨. 네 심장은 오직 나를 위해 뛰고 있다는것을, 네 몸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사내는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하이드의 말에 앙리에뜨는 그제서야 자신이 완전히 벌거벗은 몸이란 것을 깨달았다. 벗겨진 몸이 부끄러워 이불을 끌어당기자 하이드는 키득거렸다. 하이드는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벗은 앙리에뜨의 몸을 쓰다듬다가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까... 앙리에뜨 너는 몸에 문신이 없는것 같던데?"
하이드의 질문에 앙리에뜨는 움찔거렸다. 문신. 그건 창부의 표식이었다. 몸을 파는 이들은 몸 어딘가에 문신을 새겨놓았고 문신없이 몸을 파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문신이 없다는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앙리에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앙리에뜨가 잘게 떨자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괜찮아, 앙리에뜨.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귀네비어에게는 절대 말하지테니까."
"정말.... 말안할건가요?"
"물론.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 처음 여기로 온 날... 내 몸에 있던 상처를 문신으로 착각하더군요. 그래서 없어요."
처음 레드렛으로 팔려오게 된 날, 귀네비어는 어린 앙리에뜨가 입고 있던 옷을 벗기려 했었고 싫다고 반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손찌검뿐이었다. 결국 옷이 모두 벗겨진채 끌려간 곳은 늙은 노파가 머물고 있는 방이었다.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벌써 다른 아이의 몸에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귀네비어의 등장에 노파는 문신을 새기던 손을 내려놓고 앙리에뜨의 몸을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오른쪽 다리를 귀네비어에게 내밀었다.
"마담, 이 아이는 이미 문신이 있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아이는 오늘 새로온 아이이거늘."
"하지만 여기 이 다리를 보세요. 문신이 있지않습니까."
그녀가 내민곳은 예전에 개에게 물린 상처였다. 개에게 물려 피를 보이며 찢어진 흉칙한 상처가 서서히 아물면서 마치 장미모양과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노파가 조금이라도 눈이 좋았더라면 흉터라는걸 알았겠지만 다행히 장소가 어둡고 그녀는 노화로 눈이 반쯤 침침한 상태였다. 상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귀네비어는 쳇하고 혀를 차고 앙리에뜨의 옷을 던져주고 명령했다.
"반항하길래 문신없는 계집아이인줄 알았건만 헛수고한거였구만. 너, 당장 옷입고 홀부터 쓸어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밥은 없을 줄 알아!"
그렇게 앙리에뜨는 문신이 새겨지지 않은 채로 지낼 수 있었다. 문신이 있으면 도망치더라도 경찰들의 검문에 발각되어 다시 뒷골목으로 끌려와 몸을 팔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신이 없다는 것은 뒷골목에서 빠져나가 보통사람들처럼 살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앙리에뜨는 어차피 문신이 없어 언제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돈이 없다면 도망치다가 다시 몸을 팔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충분한 돈을 모으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받은 손님들은 으레 문신이 있는줄로만 알고 넘어갔던 터라 이렇게 들킨 건 처음이었다. 앙리에뜨의 대답을 듣던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그때 그 상처는 나은건가?"
"네."
"그럼 이제 이 몸은 아무런 상처도 문신도 없는 몸이겠군."
앙리에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이드는 앙리에뜨에게서 떨어졌다. 앙리에뜨는 그제서야 살포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편하게 쉴 수 있는건가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뒤에서 스릉하는 서늘한 소리가 들렸다.
"하이드?"
앙리에뜨는 의문어린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니, 정확히는 뒤를 돌아보려 했었다. 앙리에뜨의 머리를 베개로 박는 하이드의 손만 없었더라면...
"하, 하이드?!"
베개에 코가 막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앙리에뜨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만 굴려 하이드를 바라본 순간, 앙리에뜨는 소름이 돋았다. 앙리에뜨의 등 뒤에 타고 앉은 하이드는 손에 단도를 쥔 채 입가 가득 미소를 띄고 있었다.
"하, 하이드! 뭘하려고!!"
"아, 앙리에뜨.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하이드는 두려움이 가득한 앙리에뜨의 눈에 가볍게 키스하고 단도를 고쳐잡으며 말을 이었다.
"문신이 없으니 내 것이라는 표시를 네게 새겨줄려고. 그럼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을테고 너도 내게서 함부로 도망치지 못하겠지?"
"하이드, 무슨 소리를?!"
하이드의 발언에 사색이 된 앙리에뜨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몸을 짓누르는 하이드의 무게와 머리를 강하게 박아넣는 하이드의 거친 손길 뿐이었다. 버둥거리는 앙리에뜨를 여유있게 내려다보며 하이드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앙리에뜨, 이건 나름대로 정교한 일이야. 그렇게 움직이면 자칫 잘못했다가 목에 칼 박힌다고. 그러니 얌전히 있어."
하이드는 눈을 빛내며 단도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단도날에 앙리에뜨는 눈물어린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이드! 그만해요!! 제발! 하이드!! 그만!!"
그리고 그 순간, 차가운 단도가 등을 파고 들었다.
"아아아악!!!"
앙리에뜨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땀이 가득한 손으로 이불을 쥐어잡고 앙리에뜨는 부들부들 떨었다. 앙리에뜨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에 자그맣게 신음을 흘렸다. 앙리에뜨는 두려움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동빛 가구들과 책장을 메우고 있는 두꺼운 의학서적들, 그리고 달빛을 가려주는 보랏빛 커튼. 이곳은 프랑켄슈타인 성의 앙리에뜨의 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 꿈이 아닌가 싶은 두려움에 앙리에뜨는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앙리에뜨!!"
그 때 노크도 없이 방문이 벌컥 열리고 앙리에뜨를 부르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앙리에뜨는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머리에 등을 부딪쳤지만 몸을 지배하고 있는 두려움에 아픔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앙리에뜨가 덜덜 떨며 이불을 꼭 쥐고 있는데 침입자는 앙리에뜨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앙리에뜨, 놀라지 마. 나야, 빅터."
"빅.....터?"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앙리에뜨는 천천히 다가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밝은 달빛이 상대에게 비춰지는 순간 그제서야 앙리에뜨는 손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빅터...."
"그래, 앙리에뜨. 또 악몽을 꾼거야?"
빅터는 침대가에 앉아 앙리에뜨를 바라보았다. 걱정어린 빅터의 눈을 보는 순간 앙리에뜨는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고 급기야 빅터의 목에 팔을 감고 어깨에 기대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빅터.... 흐윽,빅터...."
"앙리에뜨, 쉬.... 울지마, 내 아가씨."
"빅터... 끅, 당신이.... 꿈인줄... 흡, 알았어."
"내가 왜 꿈이야? 난 언제나 자네 곁에 있을건데.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말아, 응?"
빅터는 덜덜 떨면서 울고 있는 앙리에뜨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리고 앙리에뜨의 고개를 들어올려 눈을 맞추었다. 눈가에 하나 가득 매달려있는 눈물을 훔쳐주고 빅터는 앙리에뜨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앙리에트... 다 꿈이야."
"빅터.... 흐읍, 여기.... 여기 꿈... 아니지?"
"꿈 아니야, 앙리에뜨. 많이 놀랐나보군."
"응..."
"더 이상 악몽안꾸게 여기서 나랑 같이 잘래?"
"빅터... 안불편하겠어?"
"불편하긴 뭐가. 침대 넓겠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자네 옆에 자는건데 내가 뭐가 불편하겠나? 자네야말로 늑대랑 자는건데 안 무섭겠어?"
빅터의 농담에 앙리에뜨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조용히 한숨 돌리고 말을 이었다.
"얼굴부터 몸까지 온통 땀범벅이군. 잠깐 있어봐."
빅터는 탁자 위에 올려둔 대야에 하나 가득 물을 붓고 하얀 수건과 함께 가져와 침대 옆 간이탁자에 올려두었다. 앙리에뜨의 옆에 자리 잡은 빅터는 수건을 적셔 앙리에뜨의 얼굴에 가득한 땀들을 훔쳐냈다. 그리고 서럽장을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앙리에뜨, 잠시 돌아볼래? 몸에 흐른 땀도 닦아낼겸 눕기 전에 붕대를 한 번 갈아주는게 좋겠어."
"뭐?"
붕대라는 말에 움찔하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에뜨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처에 땀이 들어가서 좋을거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우물쭈물거리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에뜨와 눈을 맞추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 상처와 함께 새겨진 끔찍한 기억에 앙리에뜨는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에 빅터는 앙리에뜨의 손을 잡았다.
"무서워하지말아. 내가 곁에 있지않나."
"그렇지만...."
"자, 이렇게 계속 자네를 잡고 있을게. 그럼 덜 무섭지 않겠어?"
빅터는 앙리에뜨의 손을 잡고 있는 제 손을 들어보였다. 그제서야 앙리에뜨는 머뭇거리며 돌아앉아 천천히 상의를 끌어내렸다. 한 손만으로 상의를 벗는 앙리에뜨를 도와주고 빅터는 가위를 들어올렸다. 서늘한 가위날이 등 뒤에 닿자 앙리에뜨는 두 손으로 빅터의 손과 팔을 꼭 잡았다. 빅터는 그런 앙리에뜨의 손을 더욱 세게 잡고 붕대를 잘라냈다. 서걱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맴돌았고 빅터는 잘려진 붕대를 풀어냈다. 앙리에뜨의 하얀 등이 보이는 순간 빅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EDWARD HIDE] 아담하고 예쁜 등에 삐뚤빼뚤하고 흉측하게 새겨진 글자에 빅터는 소리없이 이를 갈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등과 상처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처음 이 상처를 보았을 때의 충격을 빅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상처를 처음 보게 되었던 날은 다른 날도 아닌 앙리에뜨에게 정식으로 고백을 했던 날이었다. 전쟁터에서 만난 친구이자 연구동료였던 앙리에뜨를 제네바로 데려오고 난 뒤,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앙리에뜨가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손짓과 미소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녀와 닿는 곳이 불에 닿은 것처럼 뜨겁게 느껴져 빅터는 자신이 드디어 미쳤는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빠르게 뛰는 가슴에 빅터가 어찌하지 못할 때, 완전히 그녀에게 빠지게 된 장소는 우습게도 마을주점이었다. 그날 역시 실험은 실패하였고 빅터는 밀려오는 실망감을 버티지 못해 앙리에뜨에게 아무 말도 없이 홀로 성을 뛰쳐나와 마을 주점으로 향했다. 독한 술을 얼마나 들이켰을까. 탁자에 기대어 겨우 상체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취한 무렵, 앙리에뜨가 빅터 앞에 나타났었다. 완전히 만취한 빅터를 찾아낸 앙리에뜨는 잔소리부터 내뱉는 엘렌과 룽게와 다르게 술 한잔을 들고 옆에 앉아 빅터의 모든 푸념을 들어주었고 이해한다고 말하며 토닥여주었다. 이해한다. 그 말 한 마디가 빅터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고 어두컴컴한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밝은 빛이 되었으리라는 걸 그녀는 모를테였다. 결국 그날부로 빅터는 앙리에뜨를 사랑한다는 제 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앙리에뜨는 계속해서 빅터의 사랑을 거절하였고 몇 번의 거절끝에 결국 빅터는 그녀에게 화를 냈었다. 자신이 쉽사리 연모한다는 말을 할만큼 쉬운 남자로 보이냐고, 이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대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창부로써의 과거.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앙리에뜨가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였다. 거리를 떠돌며 몸을 팔아 목숨을 부지했다던 그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며 빅터를 피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보름달이 아름답게 뜬 날, 빅터는 앙리에뜨의 앞에 무릎꿇고 정식으로 사랑하노라고 고백했다. 이미 자신은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으니 과거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인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앙리에뜨 뒤프레를 사랑하노라고. 그 말에 앙리에뜨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었다.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밝은 미소를 띄운 앙리에뜨는 빅터의 고백을 받아들였고 그 미소에 홀리듯이 빅터는 앙리에뜨에게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참아왔던 뜨거운 뭔가가 몸을 휘감았다. 그에 몸이 따르는데로 빅터는 그녀에게 키스하며 침대로 데려갔다. 하얀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히고 등에 있는 후크를 끌러내리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빅터의 손에 딱딱하고 끈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앙리에뜨 역시 무언가를 느꼈는지 갑자기 빅터를 밀어버렸다. 예상치못한 앙리에뜨의 저항에 힘없이 밀려났는데 순간 손에 묻어있는 것이 빅터의 눈에 들어왔다. 손에 흥건하게 묻어있는 피고름. 피고름을 보자마자 빅터는 싫다고 발버둥치는 앙리에뜨를 끌어당겼다. 앙리에뜨의 뜻을 존중한다면 그냥 그녀가 원하는대로 모른척하고 그냥 두는 것이 옳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손에 묻은 피고름양이 너무 많았다. 결국 빅터는 힘으로 그녀를 돌아세웠고 등을 본 순간 경악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상처는 피고름이 있었고고 딱지가 뜯겨나갔다가 다시 생기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갈색빛으로 탁해져있는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건 앙리에뜨의 반응이었다. 상처가 보이자마자 싫다면서 소리지르며 울고 상처에 손만 대도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이 자지러졌었다. 실제로 상처를 치료하다가 울다가 기절하기를 몇 번이나 했었는지 행여 앙리에뜨가 잘못될까 빅터는 그 때만 생각하면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정성들여 상처를 치료하였고 그 결과 지금은 붉은 자욱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육체적인 상처는 아물어가지만 정신적인 상처는 여전히 심각했다. 트라우마란게 쉽게 치료되지 않는 만큼 앙리에뜨는 상처를 치료할 때마다 이렇게 떨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정도 땀을 닦아냈다고 판단한 빅터는 손가락에 연고를 듬뿍 묻혀 상처로 가져다댔다.
"아.."
"미안해, 앙리에뜨. 아픈가? 내가 상처를 세게 눌렀나?"
"아니.... 괜찮아, 빅터... 신경쓰지마."
그러나 괜찮다는 말과 다르게 팔을 꽉 잡고 있는 앙리에뜨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에 빅터는 앙리에뜨의 허리를 끌어당겨 바투 안고 천천히 연고를 발랐다. 등전체를 연고로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약을 바르고 나서야 빅터는 붕대를 감아주었다. 행여 너무 조여서 상처가 숨을 못쉬거나 앙리에뜨가 아플까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고 붕대끝을 매듭묶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됐네, 앙리에뜨."
"고마워, 빅터."
앙리에뜨가 벗었던 상의를 입으려고 팔을 움직이는 순간 상처들이 따끔거렸다. 콕콕 쑤시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상처에 앙리에뜨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에게 유독 집착하던 그 사람을 그대로 닮아 상처들 역시 쉬이 낫지를 않았다. 그날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아프고 공포스러운 밤이었다. 하지말라고, 싫다고 발버둥쳐도 하이드는 키득거리며 칼로 등을 긁어내렸다.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 정신을 놓는게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이드는 절대 앙리에뜨가 기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기절할려고하면 냅다 뺨을 내려치고 상처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파고 들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기절하지도 못한 채 앙리에뜨는 등 뒤에 문신이 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이만 악물었다. 문신이 다 새겨지고 문신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등이 흠뻑 적셔져있자 하이드는 상처의 피를 핥으며 문신을 한글자씩 읽어주고 앙리에뜨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며 집착어린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입가에 피를 묻힌 채 광기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하이드의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와도 같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앙리에뜨는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그 날 이후, 앙리에뜨를 향한 하이드의 집착은 무서우리만치 독했다. 앙리에뜨의 옆에 있었던 이유로 남자하인들은 무차별적으로 하이드에게 두들겨 맞았고 그런 날이면 하이드는 제멋대로 앙리에뜨를 취하고 단도로 문신을 다시 새기며 자신 이외의 다른 남자와 같이 있지말라며 으르렁거렸다. 그럼 앙리에뜨는 공포와 두려움에 그러겠노라며 답하며 하이드에게 그만해달라고 애원하는것 외에는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계속되는 하이드의 잔혹한 행위에 귀네비어마저 그런 지독한 손님은 처음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앙리에뜨를 홀로 내버려두었고 앙리에뜨는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상처로 인한 고열로 끙끙 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나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하이드는 레드렛으로 찾아오지 않았고 하이드의 집착에 질릴대로 질린 앙리에뜨는 이 때가 기회라는 생각에 그날 밤, 간단한 소지품만 챙기고 급히 레드렛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수녀원에 몇 년간 머물며 의학을 배웠다. 하지만 언제 하이드가 이곳으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전 유럽을 뒤흔드는 전쟁이 터졌고 앙리에뜨는 하이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명령에 따라 이곳저곳을 옮기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전쟁의 최전방에 있게 되었다.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정신을 쏟아붓게 되니 저절로 하이드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어 잊어버리게 되었고 등 뒤에 있는 문신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졌다. 그렇게 최전방에서 생활하면서 빅터를 만나게 되었고 생명창조 연구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껏 만난 사람들 중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자신을 인간 앙리에뜨 뒤프레로써 대해주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마음이 설레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를 연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 함께 제네바로 가겠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네바에서의 연구는 계속 실패했지만 그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앙리에뜨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연모한다며 고백했다. 그 순간 기억 한 켠으로 미뤄놓았던 과거들이 떠올랐고 그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빅터는 계속해서 앙리에뜨에게 고백을 했고 화가난 빅터는 도대체 왜 받아들일 수 없는지 이유라도 설명해달라며 앙리에뜨를 붙잡았다. 단호한 빅터의 모습에 결국 앙리에뜨는 제 과거를 털어놓았다. 과거를 모두 털어놓고 그에게서 등 돌린 날, 앙리에뜨는 자괴감과 슬픔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빅터가 자신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주었다지만 그는 귀족이었다. 귀족들이 천민 중의 천민인 창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레드렛에서 충분히 겪었기에 빅터의 반응이 예상할 수 있었고 그런 빅터를 받아들이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경멸어린 시선을 받고 상처받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앙리에뜨는 빅터를 피했다. 차라리 그를 보지 않는다면 상처받지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름달이 뜬 날, 빅터는 앙리에뜨의 모든 과거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노라고 정식으로 고백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감동하여 고백을 받아들였고 생전 처음 사랑하는 이와 키스를 해보았다. 그리고 빅터에게 끌려 침대에 눕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으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린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등을 파고드는 빅터의 손에 앙리에뜨가 깊숙히 가둬놓은 하이드와의 과거들이 빗장을 풀어버렸다. 그 순간 앙리에뜨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빅터에게는 결코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빅터가 상처를 보게되었다. 그 순간 빗장이 완전히 열리고 상처가 새겨졌을 때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리고 트라우마로 정신없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빅터의 충격어린 눈동자였다. 애정을 담았던 눈빛이 한순간 충격으로 휩싸이던 그 때의 눈동자는 생각할 때마다 앙리에뜨의 가슴을 쑤셨다. 얼마나 실망했을까... 거리를 떠돌던 과거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끔찍한 문신을 가지고 있는 제 자신이 얼마나 더럽게 느껴졌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흉터가 없었다면..... 자신이 거리의 여인이 아니었더라면... 빅터 옆에 좀 더 당당하게 설 수 있지 않았을까... 순간 앙리에뜨는 울컥했다. 빅터와 함께 있기에는 제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게만 느껴졌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 없고 짐처럼 그에게 매달리고 어리광만 부리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앙리에뜨의 눈가에 또다시 눈물이 방울방울 맺했다. 울면 안되는데...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안되는데....
"앙리에뜨."
그 때 빅터가 앙리에뜨를 부르더니 앙리에뜨가 돌아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등 뒤에서 그녀를 꼭 껴안았다. 한 품에 온전히 들어갈만큼 넓고 따뜻한 빅터의 품에 앙리에뜨는 이게 어찌된 일인지 상황파악을 하려던 순간 빅터가 앙리에뜨의 붕대 위로 입술을 내렸다.
"빅터!"
화들짝 놀란 앙리에뜨가 빅터를 불렀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앙리에뜨를 더욱 꽉 껴안으면서 그는 앙리에뜨의 붕대 위에 입술을 눌렀다. 붕대 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앙리에뜨는 나즈막히 신음을 흘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안았을까. 빅터가 앙리에뜨의 붕대에서 입술을 뗐다. 그리고 그녀를 품 안에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
"울지 마, 앙리에뜨."
"빅터..."
"자네의 과거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도 말고, 자네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지도 말아. 난 앙리에뜨 뒤프레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과거 역시 사랑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빅터, 난 예전에....."
"쉬..... 앙리에뜨. 억지로 꺼내지 않아도 돼. 난 이미 자네의 과거에 대해 알고있고 그 과거 역시 사랑하고 있어. 왜냐하면 그 과거는 자네의 과거니까."
"빅터....."
"자네는 내게 있어 누구보다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야. 그러니 스스로를 그렇게 깎아내리지 말아."
빅터의 진심어린 고백에 결국 앙리에뜨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에 빅터는 앙리에뜨의 앞에 앉아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그녀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얼마나 토닥였을까. 훌쩍거림이 어느정도 줄어들고 나서야 빅터는 품에서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수건으로 눈물들을 훔쳐내며 말을 이었다.
"앙리에뜨, 자네가 이렇게 울보인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싫어?"
"아니. 자네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빅터는 앙리에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품에 안고 그대로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그러나 누워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는 빅터에 앙리에뜨는 바스락거렸다.
"빅터, 이렇게 자면 자네가 너무 불편하잖아, 이것 놔줘."
"전혀.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자는게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 벅찬 일인걸.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푹 자, 앙리에뜨."
"그렇지만..."
"요즘 악몽 꾸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오늘만큼은 모든 걱정거리 내려놓고 자. 내가 자네 곁에 계속 있을테니까."
다정하게 웃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자신도 모르게 볼이 빨개졌다. 그리고 앙리에뜨는 빅터의 품에 파고들어 그의 가슴에 귀를 댔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의 심장소리를 들고있자니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고 앙리에뜨는 조그맣게 말했다.
"빅터....잘 자...."
"잘 자, 앙리에뜨."
빅터는 앙리에뜨의 이마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앙리에뜨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앙리에뜨는 몇 번 뒤적거리다가 숨소리가 차분해지며 깊게 잠들었다. 빅터는 한참동안 잠든 앙리에뜨를 내려다보고 토닥였다. 행여 추울까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는데 문득 앙리에뜨의 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에 빅터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앙리에뜨가 아프지 않을정도로만 잘근거리며 빅터는 앙리에뜨의 체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던 빅터는 앙리에뜨가 움찔거리고나서야 천천히 입술을 뗐다. 하얀 피부 위로 빨갛게 피어오른 흔적이 퍽 마음에 들어 빅터는 가볍게 그 흔적을 혀로 핥아냈다. 그리고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등을 감싸안자 붕대 밑에 있는 상처가 느껴져 빅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앙리에뜨에게 말은 못했지만 처음 이 상처를 보는 순간 빅터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상처가 있는 등가죽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의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고 가만히 있을만큼 빅터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허나 그렇게 했다가는 앙리에뜨가 너무 아파하리란걸 알기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누르고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앙리에뜨는 이미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이렇게 온전히 제 품안에 있었다. 그것만해도 그 얼굴도 모르는 사내를 이긴 것 같아 빅터는 그나마 분노를 통제할 수 있었다. 빅터는 앙리에뜨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제 품에 안긴 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절대 뺏기지 않을 것이라고. 그 망할 사내건 신이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앙리에뜨를 뺏기지 않고 항상 그녀가 웃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각오를 다진 빅터는 그녀를 꼭 껴안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마을 구석, 주점은 밤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켜져 있었다. 손님이라고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앞에 독한 위스키를 놓고 얼음조차 넣지않고 위스키를 들이켰다. 평소 손님들이 술을 얼마나 마시던 크게 신경쓰지 않던 주인장이었지만 독한 술을 연신 들이키는 손님의 모습에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손님, 얼음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주인장의 말에 손님은 술잔을 들던 손을 멈추었다.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됐소, 필요없네."
"그렇지만....."
"그것보다 묻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사내는 품 안에서 신문을 꺼내들었다. 주인장은 신문사진 속 인물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사내는 눈을 빛냈다.
"뭔가 알고 있는가 모양이군."
"혹시 사진 속 대위를 찾고 계시나요?"
"그렇소."
"포기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손님. 이놈은 마녀의 자식이예요.."
"마녀의 자식?"
"저주받은 사람이지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저 숲 너머에 있는 성에서 시체를 가져다가 이상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혼자 지내는가?"
"아니요. 하인 한 명이랑 지냅니다. 그리고 최근에 어느 예쁜 아가씨를 데려와서 같이 살더군요. 조력자라고 데려는 왔는데 남녀사이 아무도 모르죠."
주인장은 이 이상 말하는것도 재수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주인장에게는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인장이 남녀사이를 모른다고 한 그 순간 사내의 눈이 꿈뜰거리며 들고있던 케인을 힘껏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거기서 끝이었다. 사내는 천천히 일어나 탁자 위에 금화 하나를 얹어놓았다. 뜻밖의 큰 돈에 주인장은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사내는 입을 열었다.
"오늘 나와 했던 대화는 모두 잊어주었으면 좋겠군."
"아이고, 물론입니다. 손님. 전 아무 것도 모릅니다."
굽신거리는 주인장의 모습에 사내는 비소를 지으며 주점을 나왔다. 그리고 손에 들려있던 신문에 불을 붙여 바닥에 던졌다. 사내는 저멀리 있는 프랑켄슈타인성을 바라보았다. 스산하게 보이는 성을 보고 사내는 히쭉 웃었다.
"이제 잃어버렸던 걸 찾으러 가볼까?"
사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불붙인 신문만이 타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베르사유 협약의 주연들이 있었다. 그리고 주연들 뒤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대위가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고 그 뒤 사진마저 잘린 구석에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린 앙리에뜨 뒤프레가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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