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이 깔린 늦은 밤.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있었고 앙리에뜨 역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저녁에 빅터가 건내준 약효과가 생각보다 셌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감겨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잠들어있던 앙리에뜨가 살짝 움찔거렸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찬기에 앙리에뜨는 더듬거리며 이불을 끌어와 목까지 덮었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지려던 찰나 또다시 찬기가 가득한 뭔가가 어깨를 감싸았고 앙리에뜨는 몸을 웅크렸다. 정체불명의 찬기는 천천히 앙리에뜨의 머리와 몸을 쓸어내렸고 그에 앙리에뜨는 눈가를 찌푸리고 말했다.

"빅터.... 추워.... 그만해"

아직 잠에 취해있는 몸에 앙리에뜨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거부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에 뒤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강한 악력이 앙리에뜨의 어깨를 바술 기세로 잡더니 그녀를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캉하고 따뜻한 뭔가가 앙리에뜨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왔다.

"......빅터가 누구지, 앙리에뜨?"

나른하면서 스산한 목소리에 앙리에뜨는 화들짝 놀라 반쯤 떴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앙리에뜨가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있기 전, 뒤에 있는 누군가가 앙리에뜨를 거칠게 돌려눕혔다. 상대를 보는 순간 앙리에뜨는 숨을 들이켰다. 풀어헤친 머리, 우람한 체격, 거친 제스처, 그리고 때로는 짐승보다 날카롭고 악마보다 더한 잔혹함으로 물들어 빛나는 눈.

"하.......이..드?"

앙리에뜨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하이드는 비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앙리에뜨."
"하이드... 당신이 왜..."
"내가 왜? 여기 있는게 문제라도?"

하이드의 대답에 앙리에뜨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검게 때가 탄 가구들과 넝마가 되기 직전의 하얀 커튼이었다. 그 순간 앙리에뜨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프랑켄슈타인성의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보이는 가구들은 모르는 가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가구들... 그 가구들이 자리잡은 방을 빠져나오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쳤던가. 이곳은... 다름아닌 레드렛에 있던 앙리에뜨의 방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이런이런. 앙리에뜨. 지난 밤 레드렛에서 내가 너를 샀다는 걸 잊었나? 몸값도 이제껏 제시된 적이 없는 큰 값으로 지불했건만 그걸 잊어버린건가?"

하이드는 키득거리며 앙리에뜨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앙리에뜨의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둥근 곡선을 쓸어내렸다. 애무하듯이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하이드가 돌연 앙리에뜨의 목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숨통을 막혀버린 앙리에뜨는 그의 손을 떼내려 발버둥쳤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목을 더욱 세게 조르며 그녀와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앙리에뜨, 다시 한 번 묻지. 빅터가 누군가?"
"하,억!"
"감히 내 앞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불러?"
".....그....."
"말해봐, 앙리에뜨. 언제인거지? 언제 나 몰래 다른 손님을 받은거야!"

악에 받친 하이드가 있는 힘껏 앙리에뜨의 목을 졸랐다. 그에 앙리에뜨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있었고 목을 넘어가지못한 타액이 입가에 흘렀다. 더이상 숨을 쉬지못하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앙리에뜨는 버둥거렸다. 한참 앙리에뜨를 노려보던 하이드가 앙리에뜨의 눈이 돌아가기 직전에 그녀의 목에서 손을 뗐다. 앙리에뜨는 콜록거리며 부족한 산소를 들이마셨다. 방안은 헉헉거리는 앙리에뜨의 숨소리와 씩씩거리는 하이드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천천히 앙리에뜨의 숨소리가 가라앉았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앙리에뜨가 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이드가 앙리에뜨의 턱을 잡아 들어올렸다.

"마지막 경고다, 앙리에뜨. 넌 내 것이야. 나 이외에 다른 놈을 받는다면 그 땐 그놈은 물론, 너 역시 내 손으로 죽여버릴테다."

광기가 일렁이는 하이드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하이드는 앙리에뜨를 놓아주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그의 모습에 앙리에뜨의 몸이 덜덜 떨렸다. 두려움에 떠는 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에게서 등지고 눕자 하이드는 뒤에서 앙리에뜨를 끌어안았다.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어깨와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잊지마라, 앙리에뜨. 네 심장은 오직 나를 위해 뛰고 있다는것을, 네 몸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사내는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하이드의 말에 앙리에뜨는 그제서야 자신이 완전히 벌거벗은 몸이란 것을 깨달았다. 벗겨진 몸이 부끄러워 이불을 끌어당기자 하이드는 키득거렸다. 하이드는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벗은 앙리에뜨의 몸을 쓰다듬다가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까... 앙리에뜨 너는 몸에 문신이 없는것 같던데?"

하이드의 질문에 앙리에뜨는 움찔거렸다. 문신. 그건 창부의 표식이었다. 몸을 파는 이들은 몸 어딘가에 문신을 새겨놓았고 문신없이 몸을 파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문신이 없다는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앙리에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앙리에뜨가 잘게 떨자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괜찮아, 앙리에뜨.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귀네비어에게는 절대 말하지테니까."
"정말.... 말안할건가요?"
"물론.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 처음 여기로 온 날... 내 몸에 있던 상처를 문신으로 착각하더군요. 그래서 없어요."

처음 레드렛으로 팔려오게 된 날, 귀네비어는 어린 앙리에뜨가 입고 있던 옷을 벗기려 했었고 싫다고 반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손찌검뿐이었다. 결국 옷이 모두 벗겨진채 끌려간 곳은 늙은 노파가 머물고 있는 방이었다.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벌써 다른 아이의 몸에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귀네비어의 등장에 노파는 문신을 새기던 손을 내려놓고 앙리에뜨의 몸을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오른쪽 다리를 귀네비어에게 내밀었다.

"마담, 이 아이는 이미 문신이 있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아이는 오늘 새로온 아이이거늘."
"하지만 여기 이 다리를 보세요. 문신이 있지않습니까."

그녀가 내민곳은 예전에 개에게 물린 상처였다. 개에게 물려 피를 보이며 찢어진 흉칙한 상처가 서서히 아물면서 마치 장미모양과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노파가 조금이라도 눈이 좋았더라면 흉터라는걸 알았겠지만 다행히 장소가 어둡고 그녀는 노화로 눈이 반쯤 침침한 상태였다. 상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귀네비어는 쳇하고 혀를 차고 앙리에뜨의 옷을 던져주고 명령했다.

"반항하길래 문신없는 계집아이인줄 알았건만 헛수고한거였구만. 너, 당장 옷입고 홀부터 쓸어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밥은 없을 줄 알아!"

그렇게 앙리에뜨는 문신이 새겨지지 않은 채로 지낼 수 있었다. 문신이 있으면 도망치더라도 경찰들의 검문에 발각되어 다시 뒷골목으로 끌려와 몸을 팔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신이 없다는 것은 뒷골목에서 빠져나가 보통사람들처럼 살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앙리에뜨는 어차피 문신이 없어 언제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돈이 없다면 도망치다가 다시 몸을 팔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충분한 돈을 모으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받은 손님들은 으레 문신이 있는줄로만 알고 넘어갔던 터라 이렇게 들킨 건 처음이었다. 앙리에뜨의 대답을 듣던 하이드는 앙리에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그때 그 상처는 나은건가?"
"네."
"그럼 이제 이 몸은 아무런 상처도 문신도 없는 몸이겠군."

앙리에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이드는 앙리에뜨에게서 떨어졌다. 앙리에뜨는 그제서야 살포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편하게 쉴 수 있는건가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뒤에서 스릉하는 서늘한 소리가 들렸다.

"하이드?"

앙리에뜨는 의문어린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니, 정확히는 뒤를 돌아보려 했었다. 앙리에뜨의 머리를 베개로 박는 하이드의 손만 없었더라면...

"하, 하이드?!"

베개에 코가 막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앙리에뜨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만 굴려 하이드를 바라본 순간, 앙리에뜨는 소름이 돋았다. 앙리에뜨의 등 뒤에 타고 앉은 하이드는 손에 단도를 쥔 채 입가 가득 미소를 띄고 있었다.

"하, 하이드! 뭘하려고!!"
"아, 앙리에뜨.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하이드는 두려움이 가득한 앙리에뜨의 눈에 가볍게 키스하고 단도를 고쳐잡으며 말을 이었다.

"문신이 없으니 내 것이라는 표시를 네게 새겨줄려고. 그럼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을테고 너도 내게서 함부로 도망치지 못하겠지?"
"하이드, 무슨 소리를?!"

하이드의 발언에 사색이 된 앙리에뜨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몸을 짓누르는 하이드의 무게와 머리를 강하게 박아넣는 하이드의 거친 손길 뿐이었다. 버둥거리는 앙리에뜨를 여유있게 내려다보며 하이드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앙리에뜨, 이건 나름대로 정교한 일이야. 그렇게 움직이면 자칫 잘못했다가 목에 칼 박힌다고. 그러니 얌전히 있어."

하이드는 눈을 빛내며 단도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단도날에 앙리에뜨는 눈물어린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이드! 그만해요!! 제발! 하이드!! 그만!!"

그리고 그 순간, 차가운 단도가 등을 파고 들었다.



"아아아악!!!"

앙리에뜨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땀이 가득한 손으로 이불을 쥐어잡고 앙리에뜨는 부들부들 떨었다. 앙리에뜨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에 자그맣게 신음을 흘렸다. 앙리에뜨는 두려움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동빛 가구들과 책장을 메우고 있는 두꺼운 의학서적들, 그리고 달빛을 가려주는 보랏빛 커튼. 이곳은 프랑켄슈타인 성의 앙리에뜨의 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 꿈이 아닌가 싶은 두려움에 앙리에뜨는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앙리에뜨!!"

그 때 노크도 없이 방문이 벌컥 열리고 앙리에뜨를 부르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앙리에뜨는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머리에 등을 부딪쳤지만 몸을 지배하고 있는 두려움에 아픔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앙리에뜨가 덜덜 떨며 이불을 꼭 쥐고 있는데 침입자는 앙리에뜨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앙리에뜨, 놀라지 마. 나야, 빅터."
"빅.....터?"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앙리에뜨는 천천히 다가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밝은 달빛이 상대에게 비춰지는 순간 그제서야 앙리에뜨는 손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빅터...."
"그래, 앙리에뜨. 또 악몽을 꾼거야?"

빅터는 침대가에 앉아 앙리에뜨를 바라보았다. 걱정어린 빅터의 눈을 보는 순간 앙리에뜨는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고 급기야 빅터의 목에 팔을 감고 어깨에 기대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빅터.... 흐윽,빅터...."
"앙리에뜨, 쉬.... 울지마, 내 아가씨."
"빅터... 끅, 당신이.... 꿈인줄... 흡, 알았어."
"내가 왜 꿈이야? 난 언제나 자네 곁에 있을건데.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말아, 응?"

빅터는 덜덜 떨면서 울고 있는 앙리에뜨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리고 앙리에뜨의 고개를 들어올려 눈을 맞추었다. 눈가에 하나 가득 매달려있는 눈물을 훔쳐주고 빅터는 앙리에뜨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앙리에트... 다 꿈이야."
"빅터.... 흐읍, 여기.... 여기 꿈... 아니지?"
"꿈 아니야, 앙리에뜨. 많이 놀랐나보군."
"응..."
"더 이상 악몽안꾸게 여기서 나랑 같이 잘래?"
"빅터... 안불편하겠어?"
"불편하긴 뭐가. 침대 넓겠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자네 옆에 자는건데 내가 뭐가 불편하겠나? 자네야말로 늑대랑 자는건데 안 무섭겠어?"

빅터의 농담에 앙리에뜨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조용히 한숨 돌리고 말을 이었다.

"얼굴부터 몸까지 온통 땀범벅이군. 잠깐 있어봐."

빅터는 탁자 위에 올려둔 대야에 하나 가득 물을 붓고 하얀 수건과 함께 가져와 침대 옆 간이탁자에 올려두었다. 앙리에뜨의 옆에 자리 잡은 빅터는 수건을 적셔 앙리에뜨의 얼굴에 가득한 땀들을 훔쳐냈다. 그리고 서럽장을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앙리에뜨, 잠시 돌아볼래? 몸에 흐른 땀도 닦아낼겸 눕기 전에 붕대를 한 번 갈아주는게 좋겠어."
"뭐?"

붕대라는 말에 움찔하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에뜨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처에 땀이 들어가서 좋을거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우물쭈물거리는 앙리에뜨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에뜨와 눈을 맞추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 상처와 함께 새겨진 끔찍한 기억에 앙리에뜨는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에 빅터는 앙리에뜨의 손을 잡았다.

"무서워하지말아. 내가 곁에 있지않나."
"그렇지만...."
"자, 이렇게 계속 자네를 잡고 있을게. 그럼 덜 무섭지 않겠어?"

빅터는 앙리에뜨의 손을 잡고 있는 제 손을 들어보였다. 그제서야 앙리에뜨는 머뭇거리며 돌아앉아 천천히 상의를 끌어내렸다. 한 손만으로 상의를 벗는 앙리에뜨를 도와주고 빅터는 가위를 들어올렸다. 서늘한 가위날이 등 뒤에 닿자 앙리에뜨는 두 손으로 빅터의 손과 팔을 꼭 잡았다. 빅터는 그런 앙리에뜨의 손을 더욱 세게 잡고 붕대를 잘라냈다. 서걱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맴돌았고 빅터는 잘려진 붕대를 풀어냈다. 앙리에뜨의 하얀 등이 보이는 순간 빅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EDWARD HIDE] 아담하고 예쁜 등에 삐뚤빼뚤하고 흉측하게 새겨진 글자에 빅터는 소리없이 이를 갈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등과 상처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처음 이 상처를 보았을 때의 충격을 빅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상처를 처음 보게 되었던 날은 다른 날도 아닌 앙리에뜨에게 정식으로 고백을 했던 날이었다. 전쟁터에서 만난 친구이자 연구동료였던 앙리에뜨를 제네바로 데려오고 난 뒤,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앙리에뜨가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손짓과 미소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녀와 닿는 곳이 불에 닿은 것처럼 뜨겁게 느껴져 빅터는 자신이 드디어 미쳤는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빠르게 뛰는 가슴에 빅터가 어찌하지 못할 때, 완전히 그녀에게 빠지게 된 장소는 우습게도 마을주점이었다. 그날 역시 실험은 실패하였고 빅터는 밀려오는 실망감을 버티지 못해 앙리에뜨에게 아무 말도 없이 홀로 성을 뛰쳐나와 마을 주점으로 향했다. 독한 술을 얼마나 들이켰을까. 탁자에 기대어 겨우 상체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취한 무렵, 앙리에뜨가 빅터 앞에 나타났었다. 완전히 만취한 빅터를 찾아낸 앙리에뜨는 잔소리부터 내뱉는 엘렌과 룽게와 다르게 술 한잔을 들고 옆에 앉아 빅터의 모든 푸념을 들어주었고 이해한다고 말하며 토닥여주었다. 이해한다. 그 말 한 마디가 빅터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고 어두컴컴한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밝은 빛이 되었으리라는 걸 그녀는 모를테였다. 결국 그날부로 빅터는 앙리에뜨를 사랑한다는 제 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앙리에뜨는 계속해서 빅터의 사랑을 거절하였고 몇 번의 거절끝에 결국 빅터는 그녀에게 화를 냈었다. 자신이 쉽사리 연모한다는 말을 할만큼 쉬운 남자로 보이냐고, 이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대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창부로써의 과거.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앙리에뜨가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였다. 거리를 떠돌며 몸을 팔아 목숨을 부지했다던 그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며 빅터를 피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보름달이 아름답게 뜬 날, 빅터는 앙리에뜨의 앞에 무릎꿇고 정식으로 사랑하노라고 고백했다. 이미 자신은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으니 과거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인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앙리에뜨 뒤프레를 사랑하노라고. 그 말에 앙리에뜨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었다.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밝은 미소를 띄운 앙리에뜨는 빅터의 고백을 받아들였고 그 미소에 홀리듯이 빅터는 앙리에뜨에게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참아왔던 뜨거운 뭔가가 몸을 휘감았다. 그에 몸이 따르는데로 빅터는 그녀에게 키스하며 침대로 데려갔다. 하얀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히고 등에 있는 후크를 끌러내리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빅터의 손에 딱딱하고 끈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앙리에뜨 역시 무언가를 느꼈는지 갑자기 빅터를 밀어버렸다. 예상치못한 앙리에뜨의 저항에 힘없이 밀려났는데 순간 손에 묻어있는 것이 빅터의 눈에 들어왔다. 손에 흥건하게 묻어있는 피고름. 피고름을 보자마자 빅터는 싫다고 발버둥치는 앙리에뜨를 끌어당겼다. 앙리에뜨의 뜻을 존중한다면 그냥 그녀가 원하는대로 모른척하고 그냥 두는 것이 옳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손에 묻은 피고름양이 너무 많았다. 결국 빅터는 힘으로 그녀를 돌아세웠고 등을 본 순간 경악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상처는 피고름이 있었고고 딱지가 뜯겨나갔다가 다시 생기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갈색빛으로 탁해져있는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건 앙리에뜨의 반응이었다. 상처가 보이자마자 싫다면서 소리지르며 울고 상처에 손만 대도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이 자지러졌었다. 실제로 상처를 치료하다가 울다가 기절하기를 몇 번이나 했었는지 행여 앙리에뜨가 잘못될까 빅터는 그 때만 생각하면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정성들여 상처를 치료하였고 그 결과 지금은 붉은 자욱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육체적인 상처는 아물어가지만 정신적인 상처는 여전히 심각했다. 트라우마란게 쉽게 치료되지 않는 만큼 앙리에뜨는 상처를 치료할 때마다 이렇게 떨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정도 땀을 닦아냈다고 판단한 빅터는 손가락에 연고를 듬뿍 묻혀 상처로 가져다댔다.

"아.."
"미안해, 앙리에뜨. 아픈가? 내가 상처를 세게 눌렀나?"
"아니.... 괜찮아, 빅터... 신경쓰지마."

그러나 괜찮다는 말과 다르게 팔을 꽉 잡고 있는 앙리에뜨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에 빅터는 앙리에뜨의 허리를 끌어당겨 바투 안고 천천히 연고를 발랐다. 등전체를 연고로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약을 바르고 나서야 빅터는 붕대를 감아주었다. 행여 너무 조여서 상처가 숨을 못쉬거나 앙리에뜨가 아플까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고 붕대끝을 매듭묶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됐네, 앙리에뜨."
"고마워, 빅터."

앙리에뜨가 벗었던 상의를 입으려고 팔을 움직이는 순간 상처들이 따끔거렸다. 콕콕 쑤시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상처에 앙리에뜨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에게 유독 집착하던 그 사람을 그대로 닮아 상처들 역시 쉬이 낫지를 않았다. 그날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아프고 공포스러운 밤이었다. 하지말라고, 싫다고 발버둥쳐도 하이드는 키득거리며 칼로 등을 긁어내렸다.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 정신을 놓는게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이드는 절대 앙리에뜨가 기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기절할려고하면 냅다 뺨을 내려치고 상처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파고 들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기절하지도 못한 채 앙리에뜨는 등 뒤에 문신이 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이만 악물었다. 문신이 다 새겨지고 문신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등이 흠뻑 적셔져있자 하이드는 상처의 피를 핥으며 문신을 한글자씩 읽어주고 앙리에뜨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며 집착어린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입가에 피를 묻힌 채 광기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하이드의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와도 같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앙리에뜨는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그 날 이후, 앙리에뜨를 향한 하이드의 집착은 무서우리만치 독했다. 앙리에뜨의 옆에 있었던 이유로 남자하인들은 무차별적으로 하이드에게 두들겨 맞았고 그런 날이면 하이드는 제멋대로 앙리에뜨를 취하고 단도로 문신을 다시 새기며 자신 이외의 다른 남자와 같이 있지말라며 으르렁거렸다. 그럼 앙리에뜨는 공포와 두려움에 그러겠노라며 답하며 하이드에게 그만해달라고 애원하는것 외에는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계속되는 하이드의 잔혹한 행위에 귀네비어마저 그런 지독한 손님은 처음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앙리에뜨를 홀로 내버려두었고 앙리에뜨는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상처로 인한 고열로 끙끙 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나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하이드는 레드렛으로 찾아오지 않았고 하이드의 집착에 질릴대로 질린 앙리에뜨는 이 때가 기회라는 생각에 그날 밤, 간단한 소지품만 챙기고 급히 레드렛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수녀원에 몇 년간 머물며 의학을 배웠다. 하지만 언제 하이드가 이곳으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전 유럽을 뒤흔드는 전쟁이 터졌고 앙리에뜨는 하이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명령에 따라 이곳저곳을 옮기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전쟁의 최전방에 있게 되었다.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정신을 쏟아붓게 되니 저절로 하이드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어 잊어버리게 되었고 등 뒤에 있는 문신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졌다. 그렇게 최전방에서 생활하면서 빅터를 만나게 되었고 생명창조 연구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껏 만난 사람들 중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자신을 인간 앙리에뜨 뒤프레로써 대해주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마음이 설레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를 연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 함께 제네바로 가겠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네바에서의 연구는 계속 실패했지만 그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앙리에뜨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연모한다며 고백했다. 그 순간 기억 한 켠으로 미뤄놓았던 과거들이 떠올랐고 그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빅터는 계속해서 앙리에뜨에게 고백을 했고 화가난 빅터는 도대체 왜 받아들일 수 없는지 이유라도 설명해달라며 앙리에뜨를 붙잡았다. 단호한 빅터의 모습에 결국 앙리에뜨는 제 과거를 털어놓았다. 과거를 모두 털어놓고 그에게서 등 돌린 날, 앙리에뜨는 자괴감과 슬픔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빅터가 자신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주었다지만 그는 귀족이었다. 귀족들이 천민 중의 천민인 창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레드렛에서 충분히 겪었기에 빅터의 반응이 예상할 수 있었고 그런 빅터를 받아들이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경멸어린 시선을 받고 상처받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앙리에뜨는 빅터를 피했다. 차라리 그를 보지 않는다면 상처받지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름달이 뜬 날, 빅터는 앙리에뜨의 모든 과거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노라고 정식으로 고백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감동하여 고백을 받아들였고 생전 처음 사랑하는 이와 키스를 해보았다. 그리고 빅터에게 끌려 침대에 눕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으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린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등을 파고드는 빅터의 손에 앙리에뜨가 깊숙히 가둬놓은 하이드와의 과거들이 빗장을 풀어버렸다. 그 순간 앙리에뜨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빅터에게는 결코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빅터가 상처를 보게되었다. 그 순간 빗장이 완전히 열리고 상처가 새겨졌을 때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리고 트라우마로 정신없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빅터의 충격어린 눈동자였다. 애정을 담았던 눈빛이 한순간 충격으로 휩싸이던 그 때의 눈동자는 생각할 때마다 앙리에뜨의 가슴을 쑤셨다. 얼마나 실망했을까... 거리를 떠돌던 과거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끔찍한 문신을 가지고 있는 제 자신이 얼마나 더럽게 느껴졌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흉터가 없었다면..... 자신이 거리의 여인이 아니었더라면... 빅터 옆에 좀 더 당당하게 설 수 있지 않았을까... 순간 앙리에뜨는 울컥했다. 빅터와 함께 있기에는 제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게만 느껴졌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 없고 짐처럼 그에게 매달리고 어리광만 부리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앙리에뜨의 눈가에 또다시 눈물이 방울방울 맺했다. 울면 안되는데...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안되는데....

"앙리에뜨."

그 때 빅터가 앙리에뜨를 부르더니 앙리에뜨가 돌아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등 뒤에서 그녀를 꼭 껴안았다. 한 품에 온전히 들어갈만큼 넓고 따뜻한 빅터의 품에 앙리에뜨는 이게 어찌된 일인지 상황파악을 하려던 순간 빅터가 앙리에뜨의 붕대 위로 입술을 내렸다.

"빅터!"

화들짝 놀란 앙리에뜨가 빅터를 불렀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앙리에뜨를 더욱 꽉 껴안으면서 그는 앙리에뜨의 붕대 위에 입술을 눌렀다. 붕대 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앙리에뜨는 나즈막히 신음을 흘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안았을까. 빅터가 앙리에뜨의 붕대에서 입술을 뗐다. 그리고 그녀를 품 안에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

"울지 마, 앙리에뜨."
"빅터..."
"자네의 과거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도 말고, 자네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지도 말아. 난 앙리에뜨 뒤프레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과거 역시 사랑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빅터, 난 예전에....."
"쉬..... 앙리에뜨. 억지로 꺼내지 않아도 돼. 난 이미 자네의 과거에 대해 알고있고 그 과거 역시 사랑하고 있어. 왜냐하면 그 과거는 자네의 과거니까."
"빅터....."
"자네는 내게 있어 누구보다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야. 그러니 스스로를 그렇게 깎아내리지 말아."

빅터의 진심어린 고백에 결국 앙리에뜨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에 빅터는 앙리에뜨의 앞에 앉아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그녀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얼마나 토닥였을까. 훌쩍거림이 어느정도 줄어들고 나서야 빅터는 품에서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수건으로 눈물들을 훔쳐내며 말을 이었다.

"앙리에뜨, 자네가 이렇게 울보인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싫어?"
"아니. 자네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빅터는 앙리에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품에 안고 그대로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그러나 누워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는 빅터에 앙리에뜨는 바스락거렸다.

"빅터, 이렇게 자면 자네가 너무 불편하잖아, 이것 놔줘."
"전혀.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자는게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 벅찬 일인걸.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푹 자, 앙리에뜨."
"그렇지만..."
"요즘 악몽 꾸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오늘만큼은 모든 걱정거리 내려놓고 자. 내가 자네 곁에 계속 있을테니까."

다정하게 웃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에뜨는 자신도 모르게 볼이 빨개졌다. 그리고 앙리에뜨는 빅터의 품에 파고들어 그의 가슴에 귀를 댔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의 심장소리를 들고있자니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고 앙리에뜨는 조그맣게 말했다.

"빅터....잘 자...."
"잘 자, 앙리에뜨."

빅터는 앙리에뜨의 이마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앙리에뜨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앙리에뜨는 몇 번 뒤적거리다가 숨소리가 차분해지며 깊게 잠들었다. 빅터는 한참동안 잠든 앙리에뜨를 내려다보고 토닥였다. 행여 추울까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는데 문득 앙리에뜨의 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에 빅터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앙리에뜨가 아프지 않을정도로만 잘근거리며 빅터는 앙리에뜨의 체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던 빅터는 앙리에뜨가 움찔거리고나서야 천천히 입술을 뗐다. 하얀 피부 위로 빨갛게 피어오른 흔적이 퍽 마음에 들어 빅터는 가볍게 그 흔적을 혀로 핥아냈다. 그리고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등을 감싸안자 붕대 밑에 있는 상처가 느껴져 빅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앙리에뜨에게 말은 못했지만 처음 이 상처를 보는 순간 빅터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상처가 있는 등가죽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의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고 가만히 있을만큼 빅터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허나 그렇게 했다가는 앙리에뜨가 너무 아파하리란걸 알기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누르고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앙리에뜨는 이미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이렇게 온전히 제 품안에 있었다. 그것만해도 그 얼굴도 모르는 사내를 이긴 것 같아 빅터는 그나마 분노를 통제할 수 있었다. 빅터는 앙리에뜨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제 품에 안긴 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절대 뺏기지 않을 것이라고. 그 망할 사내건 신이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앙리에뜨를 뺏기지 않고 항상 그녀가 웃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각오를 다진 빅터는 그녀를 꼭 껴안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마을 구석, 주점은 밤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켜져 있었다. 손님이라고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앞에 독한 위스키를 놓고 얼음조차 넣지않고 위스키를 들이켰다. 평소 손님들이 술을 얼마나 마시던 크게 신경쓰지 않던 주인장이었지만 독한 술을 연신 들이키는 손님의 모습에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손님, 얼음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주인장의 말에 손님은 술잔을 들던 손을 멈추었다.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됐소, 필요없네."
"그렇지만....."
"그것보다 묻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사내는 품 안에서 신문을 꺼내들었다. 주인장은 신문사진 속 인물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사내는 눈을 빛냈다.

"뭔가 알고 있는가 모양이군."
"혹시 사진 속 대위를 찾고 계시나요?"
"그렇소."
"포기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손님. 이놈은 마녀의 자식이예요.."
"마녀의 자식?"
"저주받은 사람이지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저 숲 너머에 있는 성에서 시체를 가져다가 이상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혼자 지내는가?"
"아니요. 하인 한 명이랑 지냅니다. 그리고 최근에 어느 예쁜 아가씨를 데려와서 같이 살더군요. 조력자라고 데려는 왔는데 남녀사이 아무도 모르죠."

주인장은 이 이상 말하는것도 재수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주인장에게는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인장이 남녀사이를 모른다고 한 그 순간 사내의 눈이 꿈뜰거리며 들고있던 케인을 힘껏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거기서 끝이었다. 사내는 천천히 일어나 탁자 위에 금화 하나를 얹어놓았다. 뜻밖의 큰 돈에 주인장은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사내는 입을 열었다.

"오늘 나와 했던 대화는 모두 잊어주었으면 좋겠군."
"아이고, 물론입니다. 손님. 전 아무 것도 모릅니다."

굽신거리는 주인장의 모습에 사내는 비소를 지으며 주점을 나왔다. 그리고 손에 들려있던 신문에 불을 붙여 바닥에 던졌다. 사내는 저멀리 있는 프랑켄슈타인성을 바라보았다. 스산하게 보이는 성을 보고 사내는 히쭉 웃었다.

"이제 잃어버렸던 걸 찾으러 가볼까?"

사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불붙인 신문만이 타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베르사유 협약의 주연들이 있었다. 그리고 주연들 뒤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대위가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고 그 뒤 사진마저 잘린 구석에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린 앙리에뜨 뒤프레가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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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앙리]손

프랑켄 2015. 1. 26. 22:17
[빅터앙리]손
 
 
Written by. 玄月
 
 
 
추위를 머금은 바람이 부는 겨울날. 새하얀 눈은 백성들의 짚지붕은 물론 높디높은 궁궐의 기와지붕까지 덮었다. 구중궁궐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자전 역시 기와지붕부터 정자까지 모두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않고 조용한 세자전 안에 누군가 발을 들였다. 연노란색의 의관에 눈처럼 하얀 앞치마를 한 청년이 손에 쟁반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행여 쟁반 위에 눈이나 이물질이 들어갈까 하얀 천까지 올려놓고 조심조심 세자전에 올라갔다. 그는 세자전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콜록거리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고 기침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방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저하, 소신 앙리이옵니다."

들라. 낮은 목소리에 앙리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빅터는 여전히 기침을 하며 상체를 들었다. 그러자 앙리는 화들짝 놀라 쟁반을 탁자에 두고 빅터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저하! 몸도 안좋으신 분이! 어서 누우십쇼."
"이정도는 괜찮네."
"괜찮으시긴요! 얼굴이 사색이 되신채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믿을 것 같습니까?"
"계속 누워있다간 내가 시체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앉아있겠네."

쓴웃음을 짓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앙리는 한숨을 푹 쉬고 대답했다.

"그럼... 조금만 이십니다?"
"알겠네, 알겠어."

앙리는 걱정스럽게 빅터를 바라보다 탁자 위로 눈을 돌렸다. 쟁반 위에 있는 하얀 천을 걷어내자 약사발이 보였다. 솜씨좋게 우린 탕약은 미세한 약재 찌끄러기 하나 없을 정도로 정갈하게 걸러져 하얀 사발 안에 담겨져 있었다. 앙리는 조심스럽게 약사발을 빅터에게 건냈다.

"탕약입니다. 식기 전에 드십쇼."
"필요없다니까 왜또..."
"아직도 기침을 그리 심하게 하시면서 필요없으시다니요. 어서 드십쇼."

단호한 표정으로 약사발을 내미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앙리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약사발을 받아들였다. 천천히 탕약을 들이키려는 순간 혀끝에 닿는 쓴 맛에 빅터는 얼굴을 찡그리고 급히사발을 내려놓았다.

"너무 쓰잖나."
"쓴 약이 몸에 더 좋은 겁니다, 세자 저하."
"그래도 이건 좀..."
"어린아이도 아니시면서 먹는 것 가지고 투정부리시는 거 아닙니다."

빅터의 투정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결국 앙리가 보는 눈앞에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약을 들이켰다. 그제서야 앙리는 환하게 웃으며 빅터에게서 사발을 받았다. 입 안에 맴도는 쓴 맛에 한껏 인상을 찌푸린 빅터의 입에 작은 다과를 넣어주고 나서야 앙리는 의자를 끌고 와 빅터의 옆에 편안하게 앉았다.

"잘 하셨습니다."
"이런 일로 칭찬하지 마. 오히려 기분 나빠."
"의관으로서 드리는 칭찬입니다."
"그게 더 기분 나빠."

투털거리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고아보여 빅터는 멍하니 앙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잠시의 평화는 빅터의 기침소리에 깨져버렸다. 또다시 콜록거리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저하!"
"난...괜찮아, 쿨럭!"
"어서 누우십쇼!"
"괜찮다고..."

빅터는 뭐라 변명해보려고 했지만 보기 드물게 화난 표정인 앙리의 모습에 하던 말조차 못이어하고 결국 침대 위에 다시 누웠다. 그제서야 앙리는 표정을 풀고 걱정스럽게 이불을 빅터의 목까지 끌어당겨 올려주고 말했다.

 


"이번 감기가 왜 이리 심하신지... 이러다 옥체가 더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지, 뭐."
"제 의술의 실력이 미약해서 저하께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자네가 있으니까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있는거지. 자네라도 없었으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걸세."
빅터가 키득거리며 말했지만 앙리는 여전히 표정을 피지 못했다. 빅터를 바라보던 앙리는 결국 쟁반을 챙겼다.

"어디 가나?"
"좀 더 효력이 좋은 약을 챙겨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가지마, 앙리."

빅터는 급히 상체를 들고 앙리의 손목을 잡았다. 빅터는 앙리의 손을 잡고 깜짝 놀랐다. 손이 너무나 차가웠다. 이에 빅터는 제가 아픈 것도 잊고 상체를 들었다.

"자네 손이 왜 이리 차갑나?"
"아, 별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사람 손이 이렇게 차가운데!"
"정말 별 거 아닙니다. 놔주십쇼. 옥체가 더 안좋아지시기 전에 약을 챙겨오겠습니다."
"의관이라는 사람이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못챙기는데 누굴 챙겨!"

씩씩거리는 빅터의 모습에 앙리는 어찌할 바를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앙리의 손을 잡고있는 빅터의 눈에 탁자 위에 놓여있는 쟁반과 약사발이 보였다. 차가운 손과 약사발. 그에 빅터의 눈이 반짝였다. 빅터는 앙리의 손을 억지로 끌어 침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약따위 필요 없네, 앙리. 그냥 내 옆에 있어주게."
"저하..."
"보나마나 내가 아까 마신 약을 다린다고 손이 이 모양이 되었겠지. 사람들 눈이 있으니 약방 안에서도 못하고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찬바람 맞아가면서 약을 다린거 아닌가."

빅터의 말에 앙리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작은 것 하나만 보여도 큰 그림을 그리는 빅터의 능력에 다시 놀라면서 한편으로 이런 것 하나 제대로 숨기지 못한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빅터는 그런 앙리의 모습을 바라보다 앙리의 다른 한 손까지 잡아올려 제 뺨에 대었다.

"저하!"

앙리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려 했지만 빅터는 더욱 힘을 주고 앙리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 따뜻한 온기에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저하, 어서 놔주십쇼! 찬기에 몸 상하시면 어쩌시려고!"
"그냥 열내릴려고 물수건 대신 자네 손 올렸다고 생각해."
"이렇게 열을 내리는 법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무엇보다 일개 의관이 감히 저하의 옥체에 손을..."
"누가 일개 의관인가?"
"예?"
"자네는 내 직속 의관일세. 한 나라의 세자의 의관을 어느 누가 일개라고 표현하나? 게다가 의관이 모시는 사람의 열을 내릴려고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손을 얼려와서 직접 열을 내려주는데 나라에서 충신 칭호를 내려도 모자를 판국인데 누가 왕족의 몸에 손을 댔다고 손가락질하겠나." 

황송하여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조차 못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빅터는 말을 이었다.

"난 자네가 내 옆에만 있어도 병이 낫는 것 같아.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주게."
"저하..."
"대답은?"
"명...받들겠습니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앙리의 모습에 빅터는 그제서야 앙리의 손을 놔주었다. 빅터는 침상에 기대 앙리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게."
"예. 오늘은 내의원에서 특별히 어의대감이 오셔서 수업해주셨습니다. 오늘 어의대감이 수업해주신 내용은..."

그렇게 오늘도  봄을 닮은 앙리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조용한 세자전에 온기를 주며 울려퍼졌다.




-------




소쩍새가 우는 봄날의 밤. 앙리는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필사하고 있었다. 이곳은 대국인만큼 서가의 규모도 훨씬 크고 희귀한 책 또한 많이 있었다. 기나긴 시간을 하랄없이 보내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 앙리는 서가에서 여러 권의 책을 빌려와 천천히 읽고 필사해갔다. 방 한켠에 쌓여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후일에 돌아가면 유용하게 쓰일 내용들이 많아 앙리는 볼 때마다 뿌듯해지는 한편 마음이 서늘해졌다. 또다시 심장을 옥죄이는 생각에 앙리는 잠시 붓을 내려놓았다. 언제쯤이면 돌아갈 수 있을까... 그 분을 믿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약속을 반드실 지키실 분이었지만 단지 그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앙리는 손을 들어 천천히 제 입술을 쓸었다. 복사꽃나무 아래에서 언젠가 반드시 만날거라고 서로의 입술로 주고받은 언약. 그 언약 하나만이 자신이 이곳에서 제정신으로 버티고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앙리가 한참 과거를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문이 쾅하고 열리면서 앙리의 회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뭘하고 있었나, 앙리?"

문으로 시선을 돌리니 문에 기대어있는 빅터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약간 흐트러진 옷차림에 앙리는 의문이 들었지만 제 얼굴 위에 유리가면을 씌우고 허리숙여 인사했다.

앙리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향을 맡기만해도 취할 것 같은 독한 술냄새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앙리는 제 얼굴 위에 유리가면을 씌우고 허리숙여 인사했다.

"필사 중이었습니다, 폐하."

앙리의 말을 들은 빅터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는 천천히 탁자로 다가오더니 책과 필사한 것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또 필사 중이신가? 꽤나 열심히 하는군. 이런 걸해서 뭐에 쓸려고 하나?"
"의관인만큼 새로운 의학지식을 익히기 위해 필사 중이었습니다."
"의관이라..."

빅터는 앙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앙리는 움찔하고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앙리의 발걸음은 다리에 닿는 침상에 멈췄다. 그와 동시에 빅터는 눈을 빛내며 앙리의 양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앙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빅터는 앙리와 눈을 맞추며 빅터는 말을 이었다.

"과거에는 의관일지 몰라도 지금은 내 비()지."

팔을 잡고 있는 빅터의 악력이 세지자 앙리는 옅게 고통어린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빅터는 아랑곳하지않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소국에서나 의관이었어. 그것도 일개 소국의 태자의 개인 의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대국의 비지. 그것도 황제가 총애하며 마음만 먹는다면 귀비까지도 될 수 있는 그런 비란 말이야."

형형하게 빛나는 빅터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앙리는 손을 들어 빅터의 가슴을 밀며 말했다.

"그만하십쇼. 지금 취하셨습니다."
"하, 또 거부하는건가!"

빅터는 제 가슴에 올려진 앙리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앙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손으로 내게 교태어린 손짓만 한다면 자넨 뭐든 가질 수 있어. 높은 직책과 금은보화는 물론, 소국에서 탐내는 땅마저 자네의 소유가 될 수 있어."


빅터는 앙리의 손을 가져가 앙리의 손바닥에 새겨진 손금을 혀로 핥았다. 예상치 못한 빅터의 행동에 앙리는 깜짝 놀라 팔을 빼려고 했지만 빅터는 손을 잡고 있는 힘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손바닥은 항상 날 밀어내는데만 쓰고."


그리고 그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그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 손가락은 절대 날 잡지 않아. 허구헌 날 붓이나 침이나 잡고 있고 잠자리에서조차 날 잡지 않고 이불보만 쥐고 있는 미운 손가락이란 말이야.”

 

빅터는 앙리의 손에 깍지를 끼고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 손은 단 한 번도 스스로 날 잡아본 적이 없어. 항상 이렇게 내가 먼저 쥐어야만 잡히는 손이지. 내가 한 번 손짓만 하면 모두가 내 발밑에 원하는 걸 바쳤는데 자네는 절대 안 그래. 내가 끊임없이 나를 봐달라고 한 번이라도 손길을 내달라고 애원하고 윽박질러도 절대 주지 않아.

 

앙리는 밀어내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울 것 같은 그의 표정에 앙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빅터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를 아득하고 갈고는 앙리의 턱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 눈 역시 날 바라보고 있지 않아. 항상 땅바닥이나 아니면 창 밖 너머를 바라보기만 해.”

 

빅터는 대뜸 앙리를 침상 위로 밀어버렸다. 힘없이 밀린 앙리가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자 빅터는 그의 상체를 타올랐다. 그리고 앙리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억센 힘에 옷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찢어지자 앙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앙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빅터를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마십쇼, 폐하!”

그래, 이래야만 자네는 날 똑바로 쳐다봐. 결국 날 이렇게 만든 건 자네야, 앙리. 자네가 날 이렇게 몰아세운거야.”

 

앙리는 항변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건 빅터의 강압적인 입맞춤뿐이었다. 빅터를 밀어내려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힘에 빅터는 밀릴 생각도 없었고 그에 앙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창밖에서 소쩍새의 울음소리 들려왔다. 소국에서 행복했던 시절, 그 분께서 소쩍새의 전설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다른 이에게 시집보내고 상사병에 죽은 청년이 소쩍새가 되었노라고. 그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제 울음소리 같이 느껴져 앙리는 결국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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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 ㄹㅋ님의 리퀘

 

             +

 

트친 ㅂㄹ 님과 ㅇㄴ 님이 요즘 공동으로 연성하시는 썰 베이스로 연성해보았습니다.~~ㅋㅋㅋ

 

 

구도는  윗글은 ㄹ빅ㅇ앙, 밑에 글이 ㄱ빅ㅇ앙~

 

ㅂㄹ님이랑 ㅇㄴ님 완전 영업킹이셔요ㄷㄷㄷㄷㄷ

두분의 열정적인 영업에 본의아니게 덕통사고88ㅁ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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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엠마] 무제

 

 

설정오류주의

캐릭터붕괴주의

 

 

Written by. 玄月

 

 

 

어두운 런던의 밤거리어 짙은 안개가 꼈다. 사람 한 명없는 거리는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었고 낮과 달리 으스스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 거리의 침묵을 한 여인이 깨부쉈다. 엠마는 차분한 발걸음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지킬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지만 돌아오는건 다음에 와달라는 매몰찬 축객령뿐이었다. 벌써 며칠째 이유도 모르고 그를 보지 못한 아쉬움과 섭섭함에 엠마는 마차를 부를테니 잠시 기다리라는 폴의 청도 거절한 채 그의 집을 나왔다. 아버지께서 아시다가는 다 큰 숙녀가 이 시간에 위험한 밤길을 혼자 다니냐고 노발대발 하시겠지만 마차를 타고 오기에는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헨리가 나를 보고 싶지 않은걸까? 이래뵈도 약혼녀인데... 조금쯤은 힘든 일을 털어놔도 되지 않을까? 또다시 밀려오는 섭섭함에 엠마는 심호흡을 했다. 그에게 섭섭해서는 안된다. 그래, 난 그의 약혼녀야. 그를 끝까지 믿고 지지해줘야해. 내가 정한 내 사랑이니까. 다시금 지킬에 대한 마음을 잡은 엠마는 거리를 걸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심란해서 미쳐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어두컴컴하고 음산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도 전인 아주 어린시절, 말 안들으면 유령이 나타난다는 유모의 협박이 은근슬쩍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은 유령을 믿기에는 너무나 커버렸지만 그래도 무서운 게 없지는 않았다. 안그래도 요즘 살인마가 돌아다닌다는 끔찍한 소문이 돌고 있는 판국에 폴의 청을 듣지 않고 뛰쳐나온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엠마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차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였으니 조금만 빨리 걷는다면 곧 저택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발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엠마의 자그마한 소원은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사그러졌다.

"이봐, 아가씨~"

남자의 목소리에 엠마는 흠칫했다. 그러나 크게 티를 내지 않고 못들은 척 길을 걸었다. 그러자 뒤에서 휘파람이  부는 소리와 낄낄거리는 기분나쁜 소리가 들리더니 터벅터벅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엠마는 숨을 들이마셨다. 어째서 저 남자들이 자신을 따라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이유여서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고 엠마는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제 귀족들의 거주지역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주변에 경비를 서는 고용인들도 있으니 안전했다. 하지만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 소리에 엠마의 긴장 역시 서서히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어느덧 거리의 끝이 보였다. 엠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 모퉁이만 돌면 귀족 거주지역이다. 그럼 이제 곧 안전하게 될 거...

"이봐, 아가씨. 내 말 안들려?"

엠마의 안도는 갑자기 눈 앞에 튀어나온 한 남자로 인해 박살났다. 분명 뒤에서 아직 발소리가 들렸는데 어떻게 앞지른거지? 눈을 굴려보니 옆으로 어두컴컴한 골목이 있었다. 엠마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혼자다니는 건 위험한 판단이었다.

"아가씨,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비켜주세요."
"여기서 돌면 바로 귀족나리들 거주지역인데, 혹시 귀족이신가봐?"
"여러분께서 아실 바가 아닙니다. 비켜주세요."

엠마는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를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뒤에서 다가오는 두 명의 남자들로 인해 더이상 물러날 수가 없었다.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며 남자들은 기분나쁜 웃음을 짓고 말했다.

"이런 늦은 밤에 귀족이 혼자다니실리가 만무하지."
"옷은 꽤 좋아보이는데?"
"옷차림만 봐서는 모르지. 혹시 몰라, 어느 귀족나리의 첩일지도?"
"무례하시군요!"

엠마는 남자들의 발언에 발끈하여 그들을 노려보았다. 엠마의 날카로운 눈에 남자들은 키득거리며 저들끼리 말을 주고 받았다.

"어이쿠, 무서워라."
"이야, 눈빛으로 사람 죽이시겠네."
"이 거만한 눈빛보면 귀족이신 것 같기도 하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계집애같기도 하고."
"그거야 확인하는 방법이 있지."

한 남자가 낄낄거리다가 갑자기 엠마의 손목을 잡았다. 무례한 남자의 손에 엠마는 화들짝 놀라 남자의 팔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이것 놓으세요!"
"이렇게 앙칼진 것보니 귀족인 것 같긴 하네."
"귀족인 것 같으면 당장 놓으세요! 경찰을 부르겠어요!"
"여기에 누가 있다고 경찰을 부를 수 있겠어? 여긴 당신이랑 우리뿐이야."
"이것 놔요! 놓으라고요!"
"조용히 하라고, 아가씨. 이 밤에 위험하게 혼자 돌아다닌게 잘못이야."

남자가 킬킬거리며 엠마를 끌어당겼다. 엠마는 완전 사색이 되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 어떤 것도 예상되지 않는 상황에 엠마는 덜컥 겁이 났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혀졌다. 머릿속으로 소중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누가 도와줘요, 제발... 무서워요.... 어머니, 아버지... 헨리....

"으아악!"

갑자기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엠마는 손목이 자유로워진  느낌에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엠마의 손목을 잡고 있던 남자가 제 팔을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었고 일행은 험악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을 보기 위해 눈을 돌리기도 전에 누군가 자신의 앞에 섰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털가죽 코트에, 굉장히 큰 풍체를 가진 남자는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내리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남자의 팔을 내려칠 때 쓴 듯한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넌 뭐야?"

다른 남자가 인상을 쓰고 다가왔다. 험악한 분위기에 불구하고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던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스산하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엠마는 물론, 다른 사람들마저 흠칫했다. 단 한 마디의 말이었지만 피해야한다는 느낌을 주는 목소리에 남자들은 움찔하며 몸을 사렸다. 남자들의 행동을 무표정하게 보던 남자는 말을 이었다.

"내가 누군들 뭔 상관이야. 그저 지나가던 행인으로 하지."
"그럼 가던 길이나 가시지 뭔 참견이야!"
"물론 가던 길 그대로 갈 생각이었지. 남자 셋이서 여자 하나 데리고 뭔 짓을 하려는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남자는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짐승처럼 푸른 안광이 번쩍이는 남자의 눈빛에 사내들은 뱀 앞에 놓인 쥐마냥 부들부들 떨었다.

"그냥 내 눈에 거슬려."

진심으로 거슬린다는 듯이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사내들은 본능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모습마저 짜증나고 눈에 거슬리는지 남자는 반짝하고 눈을 빛내더니 사내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눈앞에서 당장 꺼져. 지금 죽기 싫으면."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내들은 괴음을 내지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엠마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남자에게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엠마의 목소리에 남자가 엠마에게 돌아섰다. 남자의 얼굴이라도 보고 감사를 표하고 싶어 엠마는 천천히 허리를 폈다.

"덕분에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신사분께서......헨리?"

엠마는 아차싶어 제 입을 손으로 가렸다. 남자는 언뜻보면 헨리와 쌍둥이라고해도 믿을정도로 똑닮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싸늘한 분위기와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은 결코 헨리의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눈이 기분나쁘다는 듯이 비틀리더니 남자는 나직히 입을 열었다.

"헨리?"
"아, 잊어주세요. 제 약혼자와 많이 닮으셔서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킬박사, 그 의사랑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줄이야. 굉장히 불쾌하군."
"헨리를 아시나요?"

엠마는 화들짝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쯧하고 혀를 차더니 대답했다.

"내가 아는 헨리는 단 한명뿐이지. 성쥬드 병원의 의사, 헨리 지킬. 그리고 당신은 의사의 약혼녀, 엠마 커룹이 되시겠군."
"네, 제가 헨리 지킬의 약혼녀인 엠마 커룹입니다. 본의아니게 먼저 이름을 밝히게 되었지만 신사분의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하이드, 에드워드 하이드."

엠마는 천천히 머릿속의 기억들을 꺼내보았다. 지킬의 가족은 물론 친구, 지인들까지 모두 생각해보았지만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도움을 주신 것 자체는 감사한 일이었다. 엠마는 허리굽혀 인하며 말했다.

"오늘 도와주신 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엠마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지체되면 아버지께서 크게 걱정하실 것이고 외간남자와 단둘이 있는 건 사교계에서 무슨 책을 잡힐지 모를 일이었다. 그 때 뒤에서 하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겁도 없는 아가씨군. 아까 그런 일을 당할 뻔했으면서 또 혼자 길을 가시겠다? 학습능력이 부족하신가보군."

하이드의 무례한 언사에 엠마는 발끈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 냉소를 짓고 있는 그는 천천히 엠마에게 다가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리된 거 집 앞까지는 모셔다 드리지."
"괜찮습니다. 이 모퉁이만 지나면 귀족들의 거주지역입니다. 그럼 안전할테니 걱정마시죠."

엠마의 대답을 듣더니 하이드가 키득거렸다. 그리고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택에만 고이고이 길러지는 온실 속의 화초들이 할 법한 소리로군. 요즘 소문 못들었나? 요즘 이 근방에 미친 놈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길가다가 그 놈이라도 만나면 어쩌시려고 이러시나? 혼자 갔다가 그 놈한테서 칼맞아 죽을 수도 있어. 귀족들은 안 죽일거라 생각하나? 귀족도 사람이야, 칼맞으면 죽는 사람. 적어도 나같은 인간 한 명정도 있으면 그런 놈이 들러붙지는 않겠지."

하이드가 엠마 옆에 서자 그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이드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여자 혼자서 밤길을 걷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고 아까전에도 큰 일을 당할 뻔했는데 두 번 그러지 않으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하이드가 옆에 있다면 누가 자신을 건드릴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하이드가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이 위압감을 이기고 덤빌 만큼 간 큰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근처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엠마가 앞서서 걷기 시작하자 하이드는 천천히 뒤를 따라갔다. 어째서 뒤에서 따라 걷는거지? 엠마는 갸우뚱하고 뒤돌아섰다.

"어째서 뒤에서 따라오시나요? 옆에서 같이 가지 않으시고?"
"댄버스경의 외동따님께서 외간남자랑 같이 나란히 걷는다는 소문이 들린다면 말많은 사교계가 퍽도 가만히 있겠군. 뒤에서 따라가줄테니 앞서 가시오."

엠마는 그를 바라보다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멍청한 여자. 하이드는 씩하고 웃었다. 이런 핑계같지도 않은 핑계가 먹힐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하이드는 품에 들어있는 칼을 힐끗 보았다. 날이 잘갈린 칼이 지금이라도 당장 누굴 찔려달라는 듯이 시퍼렇게 빛났다. 너에게 있어서 저 여자는 어떤 존재일까? 저 여자를 죽이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킬?

"죄송하지만 하이드씨의 성함은 처음 듣는군요. 헨리와 어떤 관계이신가요?"

엠마의 질문에 하이드는 칼을 감추었다. 비록 시선은 앞을 향해 있지만 경계어린 자세로 질문하고 있는 엠마의 모습에 하이드는 쯧하고 혀를 차고 대답했다.

"내가 일일이 대답해줄 의무는 없다고 보는데."
"저는 이제 곧 지킬의 성을 가지게 될텐데 후에 엠마 지킬로써 헨리의 지인분인 하이드씨가 누구인지, 지킬과 어떤 관계인지도 모른채 뵙게되는 무례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관계이신가요?"

당돌하게도 이 아가씨는 제 뒤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제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앞서가면서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엠마의 모습에 하이드는 귀찮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료요. 연구 동료지."
"연구라고 함은 지금 헨리가 하고 있는 연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소."
"그렇군요."

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가 지금 하고 있는 선악을 분리하는 연구라면 헨리가 혼자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새로이 연구원을 들였나 모양이었다.  엠마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자신을 뒤따라오는 하이드는 모습은 지킬은 닮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겉모습은 지킬을 많이 닮았다. 큰 키에 넓은 품을 가졌고 지킬이 항상 단정하게 묶고 있는 머리를 푼다면 딱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몇 가지 다른 게 있었다. 헨리의 목소리는 항상 다정했고 말투는 신분고하를 따지지 않고 정중했다. 하지만 하이드는 목소리는 거칠고 냉랭했고 말투는 비방과 냉소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눈이였다. 지킬의 눈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의 눈을 보면 바로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정도로 따뜻했다. 하지만 하이드는 정반대였다. 만일 눈빛으로 사람을 얼릴 수 있다면 하이드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북극의 빙하도 그의 눈빛만큼 차갑지는 않을 것 같았다. 평소라면 저런 사람을 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그가 하는 행동들은 타인에게서 상처입기 싫어서 오히려 거칠게 구는 사람같기도 했고 관심받기를 원하여 더 말썽을 부리는 어린아이같기도 했다. 무례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그의 행동도, 툭툭 내뱉는 그의 말투도 계속해서 신경쓰이게 했다. 결국 엠마는 하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이드씨, 뒤에서 걷지 마시고 저랑 같이 걸으시는 건 어떨까요?"
"뭐?"
"뒤에서 혼자 걸으면 외로운 것 같아서요. 같이 걸어요." 
"말했잖소. 같이 걸었다가는..."
"소문이 나봤자 얼마나 난다고요. 약혼자의 집에 들렸다가 약혼자의 친우가 약혼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런 걸로 이상한 소문이 난다면 저랑 어터슨경은 이미 소문날데로 나야 될걸요. 이런 경우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해진답니다."
"이봐..."
"오히려 뒤에서 걷는게 더 이상해요. 그러니까 함께 걸어요."

아예 하이드의 옆에 온 엠마에 하이드는 눈가를 찌푸렸다. 엠마가 가까이 다가온 곳은 하이드가 칼을 넣어둔 곳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다면 칼을 꺼낼 때 꽤 불편해질텐데... 하지만 엠마는 이런 하이드의 속셈도 모르고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조금 더 서두를까요? 더 어두워지면 하이드씨가 돌아가실때 힘드실 것 같아요."

엠마의 말에 하이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에는 두 사람의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귀족들의 거주지역이 가까워지는지 거리를 밝히는 불빛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이드는 소리없이 혀를 찼다. 밝은데서 살인을 하기에는 좀 재미없는데...

"저, 하이드씨?"
"뭐야?"
"요즘... 지킬은 잘 지내나요?"

하이드는 엠마를 내려다보았다. 미소를 띄고 있기는 하지만 눈이 가라앉아있는 엠마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보였다. 하이드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한테 왜 물어보지? 직접 그 의사를 찾아가면 되잖아."
"찾아갔어요, 매일. 하지만... 그가 만나주질 않는걸요."

뭔가 많이 서운한지 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엠마의 모습에 하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내뱉었다. 

"널 이렇게 냉대하는데 왜 그 의사가 좋은거지?"
"지금만 이런거예요. 그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니까요."

뭔가가 떠올랐는지 엠마는 어린 소녀와 같이 볼에 홍조를 띄운채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하이드씨의 말처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왔어요. 내 의사표현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그런 내가 헨리를 만나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처음으로 나에게 선택을 할 수 있게 손을 내민 사람이예요."

엠마는 제 손을 하이드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약지에 끼여있는 반지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이드는 그 반지를 보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반지는 그가 처음 내게 프로포즈했을 때 주었던 거예요. 그는 이 반지를 보여주면서 자신과 결혼해주겠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를 사랑했고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모두가 반대를 외쳤죠.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괴짜다. 별별 소리가 다 들리는데 그 와중에 그가 조용히 말해줬어요.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고. 나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며 거절하신다면 아무 말없이 물러나겠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망설임없이 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어요. 아버지가 권하는 신랑감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그를 택했어요. 나를 온전히 사랑해줄 수 있고, 나의 선택을 존중해줄 수 있는 그를."

하이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식없는 밝은 미소. 지금 그녀가 웃는 모습을 말하자면 오직 이걸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엠마를 보고있자니 뭘 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녀는 누구보다 쉬운 상대였다. 손으로 입을 막고 품에 있는 칼로 찔러 소리소문없이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쉬운 상대였다. 하지만 뭔가 어려웠다. 함부로 칼을 꺼낼수도,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막을 수도 없었다. 마치 손이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것마냥 쉽사리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자아가 훨씬 강해서 지킬이 막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아, 벌써 다왔네요."

하이드가 내면의 소용돌이에 주춤거리는 사이 엠마는 저택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하이드와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정말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어요."
".......별로."
"다음에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 오늘 데라다주신 답례로 식사라도 같이 해요. 혼자가 외로우시면 헨리랑 같이 오세요."
"......그럴 일 전혀 없을 겁니다."

지킬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하이드는 얼굴을 찌푸리고 몸을 돌렸다. 엠마는 그의 뒤에서 소리쳤다.
 
"언제든지 오셔도 상관없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나 하이드는 대답없이 멀어졌다. 엠마는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떠나는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외롭게 보였다. 언제라도 헨리랑 같이 만나서 더 이야기나누면 좋겠는데... 하이드가 주택 사이로 사라져서도 엠마는 그곳을 힐끗거리면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하이드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품안에 들어있는 칼을 꺼내들었다.  칼은 피 한방울 없이 깨끗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이라도 저택으로 들어가서 죽여버릴까? 그러나 하이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야. 그녀는 마지막 순서로 두자. 단지 그녀는 마지막 메인디쉬로 아껴두는거야. 그래서 남겨두는 거야. 하이드는 칼을 갈무리해 제 품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 먹잇감을 향해 유유히 떠났다.  
 
 
 

 

  
그 다음날 아침,  성 쥬드 병원의 이사이자 베싱스트로크의 14번째 주교가 공원에서 살인된 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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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ㅈㅇ님의 리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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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메이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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